유배지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한 예술가
[문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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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교 이광사 유배지 조선 후기 명필 이광사는 신지도에서 약 10여 년간 유배 생활을 하며 글씨와 학문에 몰두했다. 바닷바람이 스치는 섬마을에는 지금도 그의 흔적과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 ⓒ 문운주 |
차창 밖으로는 윤슬 반짝이는 남해 바다가 펼쳐지고, 크고 작은 섬들이 겹쳐 지나간다. 예전에는 배를 타야 닿을 수 있었던 섬이다. 이제는 다리로 이어졌지만, 신지도로 들어서는 길에는 여전히 섬으로 향하는 설렘이 남아 있다.
신지도는 완도군 신지면에 속한 섬으로, 명사십리해수욕장을 품은 남해안 대표 휴양지다. 연륙교로 연결된 지금도 섬 특유의 느린 풍경과 여유가 느껴진다. 인근 약산도·고금도와 함께 강진 마량에서 완도로 이어지는 해상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먼저 친구의 시골집에 들렀다.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며 손봤다는 집은 깔끔하게 개조돼 있었다. 유자농장 옆에 자리한 2층 주택이다. 이른바 '세컨드하우스'라 불릴 만한 공간이다. 친구는 한 달에 보름 정도는 이곳에 머물 계획이다고 했다. 집 안팎에선 어딘가 여유로운 노후의 풍경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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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교이광사 문화의 거리 원교 서결문 조형물. 유배의 섬 신지도에서 조선 후기 명필 이광사의 글씨와 삶을 다시 만난다. |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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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교이광사 문화의 거리 거리 담장 곳곳에 새겨진 원교의 글씨. 유배의 섬 신지도에는 지금도 조선 후기 명필 이광사의 필체와 시간이 길처럼 이어져 있다 |
| ⓒ 문운주문운주 |
1705년에 태어난 그는 조선 후기 호남을 대표하는 명필이자 양명학자다. 나주괘서사건에 연루돼 신지도로 유배돼 15년을 머물렀다. 유배 생활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조선적 서체인 '동국진체'를 완성했으며, 서예 이론서 <원교서결>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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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교와 추사 시대도, 세대도 달랐던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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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교이광사 한때 원교의 글씨를 혹평했던 추사 김정희도 훗날 그의 필력을 다시 인정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서예사의 두 거장이 신지도 골목에서 다시 마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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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배길에 대흥사를 찾은 추사 김정희는 친구인 초의선사를 만나, 원교가 쓴 '대웅보전' 현판을 보고 크게 호통쳤다고 한다. 당대 최고 명필끼리의 자존심과 예술관 충돌이 담긴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7년 뒤 귀양에서 풀려나 다시 대흥사를 찾았을 때, 추사는 태도를 바꿨다. 스스로 떼어내라 했던 원교의 현판을 다시 달게 한 것이다. 젊은 날의 고집은 세월 속에서 존중으로 바뀌었고, 대웅보전 현판은 그렇게 두 거장의 이야기를 함께 품게 됐다.
원교에게 신지도는 정치적 유배지였지만, 또 다른 예술의 공간이기도 했다. 섬의 고요함과 바닷바람 속에서 그는 글씨를 다듬고 사유의 시간을 보냈다. 문화마을을 걷다 보면 유배의 외로움보다는 묵묵히 붓을 들었던 한 선비의 숨결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원교 이광사 문화의 거리 곳곳에는 원교와 관련된 조형물과 벽면에 새겨진 현판 글씨 등이 설치돼 있어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어 신지초등학교 뒤편에 자리한 원교 이광사 유배지를 둘러본 뒤, 다음 목적지인 신지도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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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지명사십리 한낮 풍경. 끝없이 펼쳐진 은빛 백사장과 잔잔한 남해 바다 위로 초여름 햇살이 내려앉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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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지 명사십리 은빛 모래사장 너머로 잔잔한 남해가 펼쳐진다. 신지 명사십리의 푸른 바다는 섬과 하늘을 한 폭의 풍경처럼 이어준다. |
| ⓒ 문운주 |
미네랄이 풍부한 바닷물과 햇볕에 데워진 부드러운 모래는 명사십리만의 자랑이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단순한 피서지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휴양지라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친환경 해변에만 주어지는 국제 인증 '블루플래그'를 6년 연속 받은 곳답게 해변은 깨끗하고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바다와 모래, 송림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은 완도를 대표하는 남해안 휴양지다운 모습이다.
햇빛은 송림 사이로 스며들어 솔방울과 솔잎 위에 반짝이고, 숲길에는 은은한 솔향기가 감돈다. 그 숲길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바람은 나무 사이를 스쳐 지나가고, 밀려왔다 사라지는 물결은 일정한 리듬으로 귓가를 채운다.
숲길을 지나 이번에는 바닷물이 철렁이는 모랫길 위를 걸었다. 발밑의 모래는 부드럽게 내려앉고, 윤슬 반짝이는 바다는 끝없이 펼쳐진다. 파도와 바람, 숲과 모래가 이어지는 길 위에서는 걷는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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