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이 다른 욕조와 침대... 악으로 똘똘 뭉친 공간

김은진 2026. 5. 1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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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인권유린의 현장에서 독재에 맞선 역사의 산실로, 남영동 민주화운동기념관 방문기

[김은진 기자]

지난 9일, 6·15경기중부평화연대(집행위원장 신영배) 일행과 함께 남영동을 찾았다. 2025년 6월 항쟁 제38주년을 기념하여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개관했다. 기념관은 남영역에 내려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다.

참혹한 고문의 현장, 남영동 대공분실

1976년 10월 남영역 인근 갈월동 98번지에 지상 5층 규모의 검은색 벽돌 건물이 들어섰다.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간첩을 취조한다는 명분으로 내무부 장관 김치열이 발주하고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그러나 대공업무 외에도 독재 정권에 맞서는 무고한 시민들을 연행해 잔인한 고문과 폭행을 가하는 인권유린의 장소로 쓰였다.

인근에 공장과 주택이 있었으나 "○○해양연구소"로 위장 간판을 달고 있었다. 푸른 테니스 코트에서 종종 경기가 벌어지는 이곳을 주변 사람들은 참혹한 폭행이 자행되는 곳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현재 마당에 대공분실 후문의 철문이 전시되어 있다.

일행은 옛 대공분실 건물 뒤쪽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옆에 1970년대 담장이 남아있다. 오래된 시멘트 벽 위에 가시 철망이 설치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건물 기둥에 우리나라 헌법이 적혀 있었다. 그중 아래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건 이곳에서 자행된 일들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 헌법 제 12조 2항

벽을 돌자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작은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성인 서너 명이 겨우 탈 수 있을 정도로 작았고 옆에 나선형 철제 계단이 있었다. 건물 곳곳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더 고통스럽고 절망스럽게 할 것인지 치밀하게 연구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 첫 번째가 이 나선형 계단이다. 계단의 폭은 매우 좁아 추락의 위험이 있어 보였고 회전 반경도 작았다. 눈을 가린 피의자를 위층으로 끌고 올라갈 때 위치나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구조라고 한다.
▲ 남영동 민주화운동기념관(M2) 3층 특수조사실 독재 정권하에서 시민들을 고문했던 현장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서재순 해설사가 설명하는 모습
ⓒ 김은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도착했다. 이곳은 특수조사실로 '수괴급'이라 불리던 피의자를 조사했던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고문 기구들이 놓여 있었고 영상을 통해 고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마주하게 된 기구는 칠성판이었다.

칠성판은 시신을 받치기 위해 관바닥에 까는 나무판으로 이곳에 사람을 묶어 놓고 구타했다고 한다. 멍석말이로 사람을 때리고 바비큐 구이처럼 책상 사이에 나무를 걸쳐놓고 사람을 매달아 놓는 도구도 있었다.

당시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이야기는 고 김근태 의원의 증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죽지 않을 만큼의 고통으로 육체를 파괴하고 정신도 짓밟으려 했던 그는 사악한 각종 방법으로 민주 투사들을 고문했다. 밖으로 나오니 이근안의 다른 피해자들의 진술이 적힌 책들이 있었다. 그들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고문의 상처를 책으로 펴내 부조리한 권력의 민낯을 세상에 알렸다.

특수고문실 옆에 전망 좋은 테라스가 있었고 소파가 길게 놓여 있었다. 국가의 안보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국민을 억압하고 아무 죄책감 없이 고문을 자행했던 끔찍한 상황이 그려졌다. 권력을 추종하고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아 안락한 시간을 누린 자들의 행태가 역겨웠다.

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죽음을 맞이한 곳
▲ 남영동 민주화운동기념관 509호 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사망한 장소
ⓒ 김은진
5층에는 15개의 조사실(건축 당시 총 18개의 조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 긴 복도를 따라 서로 마주 보지 않게 지그재그로 조사실이 배치되어 있었다. 벽이 두껍고 조사실마다 폭 30cm의 수직창이 이중으로 설치되어 있다. 창틀의 너비를 빼면 실제 빛이 들어오는 폭은 약 20c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창의 폭을 좁게 한 이유는 사람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의자와 책상은 모두 바닥에 고정되어 있고, 전등은 철망으로 막아 자해할 수 없게 했다. 벽에는 흡음판을 설치되어 고문으로 인한 소리가 건물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신경 썼고 대신 옆 피해자들에게는 고통받는 소리가 들리도록 했다.

509호 앞에 섰다. 바로 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욕조는 다른 곳에 비해 길이가 짧고 깊이가 깊어 고문을 위한 욕조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에 이불과 베개가 놓인 침대가 있었는데 고문으로 눕지도 잠도 잘 수 없는데 그렇게 침대를 놓아둠으로 결의를 접고 빠르게 굴복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악으로 똘똘 뭉친 공간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군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한다. 박종철 군은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박종운 군의 소재를 추궁받던 중이었다. 경찰 대공수사관들은 결박당한 두 다리를 들어 올려 물고문을 가했다.

사망 후에도 조사관들은 고문에 의한 사망이 아닌 의료 사고 등으로 조작하려 했다. 전두환 정권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변명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이 사건으로 직선제 개헌과 정권 타도를 외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고 6월 항쟁 기폭제가 되었다.

다음 전시실에서 박종철 열사 추모행렬 있는 사진을 보았다. 들불처럼 일어난 사람들, 1987년에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타오르는 마음이 서울 도심에 가득했다.

"종철아 잘가그래이... 아버지는 아무 할말이 없대이."

박종철 열사의 운구차에 매달았던 문구가 보였다. 일행 중 신영배 6.15경기중부 평화연대 집행위원장이 먹먹한 목소리로 낭독했다.
▲ 1987년 6월 항쟁의 시발점이 된 박종철 열사의 죽음 전국적으로 고문추방 운동이 일어났고 직선제 개헌과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 김은진
함께 간 일행 중에는 80~90년대 학생으로 노동자로 시민으로 거리 투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붉어진 눈시울을 누르고 울렁이는 마음을 추슬렀다.

그날이 오면

1층으로 다시 내려와 '기억의 통로'라는 작품을 마주했다. 사람이 엎드린 형상의 얇은 스테인리스 조각품이 나란히 열을 이루고 있었다. 박종철 열사를 비롯하여 고문 피해자 400여 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 기억의 통로 사람이 엎드린 형상의 얇은 스테인리스 조각품이 나란히 열을 이루고 있었다. 박종철 열사를 비롯하여 고문 피해자 400여 명을 상징하는 것
ⓒ 김은진
희생자를 기리는 통로를 지나며 그들의 넋을 어루만지듯 작품을 쓰다듬었다.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짧은 풍경 소리처럼 들렸다.

M1관에서 서재순 해설사가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노래 중에 떠오르는 곡이 있는지 물었다.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던 노래다. 이렇게 대공분실이 민주화 기념관으로 바뀐 걸 보면 그날이 온 걸까.

시민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있기에 계속 노력하고 있고 혹여 민주주의가 위협 받는다면 또다시 일어설 것이다. 12.3계엄 때 그랬듯이. 전시관에서 아픈 역사 지나오느라 한낮의 봄볕에도 서늘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밖으로 나와 6·15경기중부평화연대 일행과 인왕산으로 향했다. 푸른 5월의 산하에는 열사들의 못다 한 청춘을 대신하듯 아카시아꽃이 만발해 있었다.

※ 남영동 민주화운동기념관 안내
기념관은 새로 지은 M1과 기존 대공분실인 M2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M2 건물 입장을 위해선 사전 예약이나 현장 접수를 해야 하며,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 관람시간: 화요일 ~ 일요일 10:00 ~ 18:00 (입장 마감: 17:00)
· 휴관일 :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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