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K원전 백년대계 위한 4가지 체크리스트

2026. 5. 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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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두 사람이 좁은 계단에서 무거운 소파를 옮길 때, 앞사람과 뒷사람이 “내 방식이 맞다”며 실랑이를 벌이면, 소파는 계단 중간에서 꼼짝도 못 한다. 지금 대한민국 원전 수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꼭 이 형국이다.

지난해 체코 원전 수주는 쾌거였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감사원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기관 정기감사 결과는 뼈아프다. 2016년 도입된 이원화 체계 아래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수원은 767명에 달하는 원전 수출 인력을 중복 운영하면서 협력은 외면했다. 한수원이 체코 입찰을 위해 요청한 UAE 실사업 자료를 한전은 ‘영업비밀’이라며 거절했다. UAE 원전 비용 분쟁으로 모기업과 자회사가 국제 중재 소송까지 벌였다. 정부가 2016년 MOU 체결을 지시했음에도 9년째 단 한 건도 체결되지 않았다.

국제 경쟁 지형은 가혹하다. 2009년 이후 신규 발주 원전 73기 중 러시아와 중국이 48기, 즉 66%를 수주했다. 로사톰은 건설·금융·연료·운영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에너지 동반자 관계를 판다. 사우디아라비아·베트남 등 후보국들이 파트너를 저울질하는 지금, 내부 균열이 드러나는 순간 사업권은 경쟁국으로 넘어간다.

체코의 성과를 이어가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첫째, 기능에 따른 역할 분리가 출발점이다. 건설·운영 기술과 실적은 한수원에, 금융 조달과 국제 브랜드는 한전이 우위에 있다. 두 강점을 어떻게 결합해 원전 수출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키울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는 본질이 아니다. 체제 개편은 기관 간 이해다툼의 산물이 아니라, 전략적 판단의 결과여야 한다.

둘째, 공기업 배임 문제를 법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국익을 위한 정보 공유나 조건 양보가 담당 임직원의 배임 혐의로 돌아올 수 있다. 실제로 한수원은 UAE 중재 신청 과정에서 배임 우려를 의사결정의 핵심 근거로 삼았다. 국익을 위한 협력이 개인의 형사 책임으로 돌아오는 구조에서 진정한 팀 코리아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승인한 원전 수출 협력 행위에 대해 배임 책임을 묻지 않는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국책은행 수출금융 확대, 발주국 엔지니어 초청 인력 양성, 경영평가에 협업 성과 반영 등 국가 차원의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 넷째, SMR 시장 선점을 위한 연구개발 및 실증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장기 경쟁력의 핵심이다.

경쟁국들은 지금도 우리의 균열을 기회로 삼고 있다. 소모적 논쟁을 멈추고 진정한 팀 코리아로 거듭나야 한다. 체코 수주는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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