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도 산업도 ‘K자’…대만 전철 밟나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6. 5. 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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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7천피 시대’ 열었지만

한국 반도체 산업이 유례없는 ‘하이퍼 불(Hyper Bull·초강세장)’에 올라탄 가운데 우리 증시와 수출은 초유의 호황을 맞았다. 지난 5월 6일 코스피는 6000선을 넘어선 지 70일 만에 7000 시대를 열었다. 수출 역시 지난 4월까지 11개월 연속 해당 월 기준 사상 최대 기록을 이어갔다. 중동 전쟁 충격이 반영될 것이란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다만, 일각에서는 반도체 의존도 심화에 따른 부문별 양극화와 원화 약세 등 한국 경제의 ‘대만화(Taiwanization)’를 우려하는 시선도 고개를 든다. 대만은 한국을 훌쩍 웃도는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쏠림에 따른 낮은 노동소득 분배와 임금 양극화, 부진한 소비, 높은 부동산 가격 등 그늘도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고환율과 K자형 양극화를 함께 겪는 한국 경제가 저출생·고령화, 산업 공동화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대만 전철(前轍)을 밟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코스피가 7300선을 돌파하는 등 급등세를 보이면서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된 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등 지수가 표시돼 있다.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0%대 오름세를 보였다. (뉴시스)
증시도 수출도 사상 최고치

韓 성장률 전망도 줄줄이 올려

지난 5월 6일 코스피는 7384.56에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장 시작과 동시에 7000선을 돌파해 오전 9시 6분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고 오후 한때 7426.60까지 올랐다. 올 들어 열네 번째 사이드카이자, 매수 사이드카로는 일곱 번째다. 지수 상승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했다. 삼성전자는 14.4% 오른 26만6000원에 마감하며 시가총액 1555조1101억원, 1조달러를 돌파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 시총 ‘1조달러’ 반열에 올랐다. SK하이닉스도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한국 수출도 4월 호조를 이어갔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 4월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48% 증가한 858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달 사상 최대치였던 866억달러에는 못 미쳤지만, 11개월 연속 해당 월 기준 최대 기록을 이어갔다. 무역수지도 237억7000만달러 흑자로 2개월 연속 200억달러를 웃돌았다. 지난해 2월 이후 15개월 연속 흑자다. 중동 전쟁과 통상 불확실성 속에서도 한국 수출이 사상 최대 수준을 사수한 것은 반도체 덕분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4월 반도체 수출은 319억달러로 1년 전보다 173.5% 급증해 두 달 연속 300억달러를 넘어섰다.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와 가격이 동시에 뛰면서 DDR4 D램 가격은 1년 새 870%, 낸드플래시 가격은 766% 치솟았다.

한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을 웃돌자 국내외 기관도 잇따라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영국 리서치 회사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올해 한국 성장률을 2.7%로 직전 전망(1.6%)보다 1.1%포인트 올렸다. JP모건체이스는 3%, BNP파리바는 2.7%, 씨티는 2.9%로 직전(2.2%·2%· 2.2%)보다 각각 0.8%포인트, 0.7%포인트, 0.7%포인트씩 올렸다.

국내 연구·조사기관도 연간 성장률을 상향 조정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9월 전망치(1.9%)보다 0.8%포인트 높인 2.7%로 내놨다. 메리츠증권은 기존 2.1%에서 2.6%로, KB증권은 2.1%에서 2.7%로, 삼성증권은 2.3%에서 2.7%로 각각 올렸다. NH투자증권은 2.2%에서 2.5%로, 하나증권은 2%에서 2.4%로, 현대차증권은 1.9%에서 2.3%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눈부신 성장에 가려진 그늘도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 의존도 심화다.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 쏠림은 올 들어 더 심해졌다. 산업통상부 수출입 통계를 보면, 지난해 4월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20.1%였는데 올 4월 37.1%로 뛰었다. 반면, 같은 기간 자동차 비중은 11.2%에서 7.2%로, 일반기계는 7.4%에서 4.9%로 뚝 떨어졌다.

15대 주력 품목을 들여다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15대 품목 가운데 4월 수출이 증가한 품목은 반도체, 컴퓨터, 석유제품, 석유화학, 선박, 무선통신기기, 바이오헬스, 섬유 등 8개다. 자동차(-5.5%), 일반기계(-2.6%), 디스플레이(-2.7%), 자동차부품(-6%), 철강(-11.6%), 2차전지(-6.5%), 가전(-20%) 등 7개 품목은 감소했다.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은 각각 39.9%, 7.8% 늘었지만 수출 물량은 줄었다. 유가 급등에 따른 단기 효과가 컸다는 분석이다. 선박과 바이오헬스는 증가세를 보였지만, 수출 비중은 각각 3.4%, 1.9% 수준에 머물렀다.

증시도 마찬가지다. ‘7천피’를 달성한 지난 5월 4일 코스피에서 상승 종목은 200개, 하락종목은 679개에 달했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가운데 하락 종목이 상승 종목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이 같은 괴리는 ETF 등 패시브 펀드 수급 때문으로 풀이된다. 개인투자자들이 코스피200, 반도체, 레버리지 ETF를 대거 사들이면 유동성공급자(LP)는 ETF를 매도하는 대신, 위험을 줄이려 기초지수 편입 종목이나 선물을 매수한다. 반도체 ‘투톱’ 주가가 급등하면 코스피200 등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ETF는 추적오차를 줄이려 두 종목 비중을 늘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다른 종목은 기계적으로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다.

반도체 쏠림·고환율, ‘대만화’ 우려도

금리 인상 땐 취약층 부담↑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가 반도체 쏠림과 고환율에 노출된 대만을 닮아간다는 진단도 내놓는다.

대만 경제는 반도체와 수출 등 국부에 모든 자원을 쏟아부은 구조다. 의도된 통화 약세와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수출 주도 성장이 경제 동력이다. 대만처럼 정책적으로 의도된 통화 절하(切下)는 ‘양날의 검’으로 평가된다.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의도된 통화 절하는 수입 물가를 높이고 자산 구매력을 낮춰 가계 실질 부를 줄인다. 그 대신, 수출 기업에는 가격 경쟁력이라는 보조금을 줘 저소득 가구에서 수출기업으로 사실상 소득 이전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

아시아 대부분 제조업 국가는 자국 통화 약세를 유도했고 수출 기업이 벌어들인 달러로 외환보유고를 쌓아 다시 수출 산업을 키우는 성장 모델을 펴왔다. 문제는 이 모델이 성공하려면 수출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다시 국내 설비투자, 고용, 임금으로 환류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대만은 이 연결고리가 사실상 와해됐다는 평가다. 제조업 상당 부분이 중국 본토와 미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 산업 공동화가 가파르게 진행됐다. 겉으로 보면 대만은 AI 반도체 호황에 올라타 높은 성장률을 누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반도체 초호황 과실은 가계 소득과 소비로 확산하지 못했다. 문홍철 DB증권 애널리스트는 “대만 경제는 겉보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대부분 제조업이 중국 본토로 빠져나가 산업이 공동화됐고 반도체에 과집중된 수출 구조”라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대만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8.7%에 달했지만, 반도체와 비반도체 산업 간 격차는 오히려 확대됐다. 특히, 2024년 이후 수출이 40% 증가할 동안, 소비는 거의 늘지 않았다. 지난해 3분기 대만 GDP 대비 수출 비중은 75%까지 상승한 반면, 민간소비 비중은 44%로 낮아졌다. 이는 반도체 산업이 자본 집약적이고 소수 IT 대기업 중심으로 운영돼 기업 이익이 노동소득으로 폭넓게 배분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대만의 월평균 임금은 6만4000대만달러(약 290만원)로, 한국(420만원)의 70% 수준에 그쳤다.

최근 한국 경제 역시 대만과 겹치는 대목이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 소장은 “대만은 TSMC 등 반도체 산업이 경제를 지탱하지만, 이면에는 극심한 쏠림이 있다”라며 “한국도 반도체 산업 성장의 온기가 국민 대다수에게 전달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증시 또한 지수 상승 기여도의 절반 가까이를 2~3개 종목이 차지한다”고 진단했다.

한국 수출 호황의 체감도가 낮은 것도 반도체 중심 성장의 파급 경로가 과거 제조업 호황기와 달라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과거에는 수출 증가가 생산 확대 → 고용 증가 → 가계소득 개선 → 소비 확대로 이어지는 경로가 비교적 선명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은 자본집약도가 높고 생산 과정의 수입 의존도도 커 전후방 연관 효과가 제한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산업연관표 기준 반도체의 취업유발계수는 2.4명으로 전산업 8.2명, 서비스업 10명은 물론 제조업 평균 5.1명에도 크게 못 미친다. 반도체 부문 취업자 수도 8만5000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0.3% 수준에 불과하다.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최근 30%대 후반까지 올랐지만, 고용과 소득 기여도는 오히려 약해졌다는 평가다.

공급망 다변화와 노란봉투법 등 대내외 여건 악화에 따른 산업공동화도 우려를 낳는다. 최근 한국 경제가 반도체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1400원 후반대에 머무는 것도 수출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다시 국내 설비투자 등으로 환류되는 흐름이 약화한 결과로 분석된다. 관세 전쟁과 중국발 공급 과잉(대외 요인), 규제를 비롯한 역(逆)인센티브 구조(국내 요인)가 맞물려 우리 기업 상당수는 해외로 생산기지를 줄줄이 옮기는 중이다. 2028년까지 미국에 총 21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하는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앞서 조 바이든 행정부 때도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시설투자가 줄줄이 해외에서 이뤄졌다. 수출 기업 환전 감소는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다.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글로벌 대기업은 미국·유럽에서 대규모 설비투자, 인수합병, 연구개발 투자를 벌이면서 수출로 번 달러를 한국으로 들여오지 않고 현지에 재투자한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초호황으로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 논의를 앞당기는 역설적 상황도 펼쳐진다. 당연직 금융통화위원인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최근 “금리 인하를 멈추고 인상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AI 투자 확대로 성장률 둔화 우려는 줄었고 확장재정까지 더해져 통화당국 입장에서는 물가 대응을 위해 긴축으로 기울 여지가 생겼다. 문제는 반도체 초호황 과실은 소수에 집중되지만, 금리 인상 부담은 모든 경제 주체에 포괄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미 고물가와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소비 여력이 약해진 중산층·저소득층이 반도체 호황 때문에 금리 부담만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조용구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5월 점도표에는 현재 기준금리(연 2.5%)보다 0.25%포인트 높은 연 2.75%에 과반수의 점이 자리할 것”이라며 “8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9호(2026.05.13~05.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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