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100곳 시대…콜마·오리온 새 얼굴
공시대상기업집단이 처음으로 100개를 넘어섰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 기업집단을 뜻한다. 지정 기업은 공시·신고 의무를 지고,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도 받는다. 자산총액이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0.5% 이상이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상출집단)으로 묶여 상호출자·순환출자·채무보증 제한까지 적용된다. 올해 특징은 방산 질주, 플랫폼 진입, K뷰티·K푸드 약진, 인수합병을 통한 순위 상승이다. 실적은 개선됐지만 상위 5개 집단이 순이익의 70% 이상을 차지해 ‘부의 쏠림’은 여전하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동일인 지정도 논란거리다.

방산·플랫폼·M&A가 판 흔들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월 29일 발표한 올해 지정된 대기업집단은 102개다. 지난해 92개보다 10개 늘었다. 공정위가 대기업집단을 지정한 이후 처음으로 ‘100개 시대’가 열렸다. 소속 회사는 3538개로 지난해보다 237개 증가했다. 자산총액은 3669조5000억원이다. 1년 전보다 367조7000억원(11.1%) 늘었다.
신규 지정 집단은 11곳이다. 라인, 한국교직원공제회, 웅진, 쉴더스, 대명화학, 토스, 한국콜마, 희성, 오리온, QCP그룹, 일진글로벌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대기업집단이었던 영원은 자산총액이 5조원 아래로 내려가 지정에서 빠졌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47개로 1개가 늘었다. 올해 기준선은 자산총액 12조원이다. 교보생명보험과 다우키움이 새로 올라섰고, 이랜드는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하향 조정됐다.
자산 기준 10대 그룹은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한화, 롯데, 포스코, HD현대, 농협, GS 순이다. 1~4위는 그대로였다. 변화의 핵심은 5위다. 한화가 지난해 7위에서 두 계단 뛰며 롯데와 포스코를 제쳤다. 기존 삼성·SK·현대차·LG·롯데 중심의 5대 그룹 구도가 삼성·SK·현대차·LG·한화 체제로 바뀌었다. 롯데는 6위, 포스코는 7위로 각각 한 계단 밀렸다.
한화의 약진은 방산 호황과 맞닿아 있다. 자산총액도 125조7410억원에서 149조6050억원으로 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동 갈등, 각국의 국방비 확대가 한국 방위 산업 수요를 키웠다. 한국항공우주산업도 62위에서 53위로 올랐다. LIG는 69위에서 63위로 상승했다. 방산이 재계 순위를 바꾸는 주력 산업으로 부상했다는 평가다.
플랫폼과 금융투자업의 부상도 두드러졌다. 토스는 올해 처음 자산총액 5조원을 넘기며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간편송금에서 출발해 은행, 증권, 결제, 보험 비교 등으로 사업을 넓힌 결과다. 라인도 신규 지정됐다. 다우키움은 증권 시장 활황에 힘입어 상출집단으로 올라섰다. DB와 대신 등 증권업 관련 소속회사를 둔 집단도 순위가 상승했다.
한류 산업도 대기업집단 지도를 바꿨다. 한국콜마는 K뷰티 열풍과 제약·바이오 사업 성장에 힘입어 새로 지정됐다. 오리온은 제과류 해외 매출 확대가 자산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해 하이브가 엔터테인먼트업 주력 집단으로 대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K뷰티와 K푸드가 새 축으로 등장한 셈이다.
대규모 인수합병은 순위 상승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웅진은 프리드라이프 인수로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재진입했다. 교보생명보험은 SBI저축은행 인수로 상출집단으로 올라섰다. 태광은 애경산업 인수로 59위에서 48위로 뛰었다. 소노인터내셔널은 티웨이항공 인수 영향으로 64위에서 52위까지 올랐다.
대기업 성적표 개선됐지만
5대 그룹이 순이익 70% 차지
대기업집단의 경영 성적표는 1년 전보다 좋아졌다.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전체 공시대상기업집단 매출액은 2095조2000억원이다. 지난해 발표보다 87조5000억원(4.4%) 늘었다. 당기순이익은 156조8000억원으로 43조8000억원 증가했다. 증가율은 38.8%다. 반도체 업황 회복, 금융 시장 활황, 방산 수출 확대가 동시에 반영됐다.
매출 증가액이 가장 큰 집단은 SK였다. 지난해 발표보다 34조3000억원 늘었다. AI 반도체 수요 확대와 D램·낸드 등 주요 제품 가격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삼성 역시 반도체 업황 개선 효과로 24조9000억원 증가했다. 쿠팡도 9조1000억원 매출이 늘었다. 로켓배송을 중심으로 한 커머스 사업 성장과 고객 기반 확대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실적 개선의 과실이 최상위 집단에 더 집중됐다는 점이다. 올해 상위 5개 집단은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한화다. 이들 집단은 전체 공시대상기업집단 자산총액의 48.4%를 차지했다. 매출액 비중은 51.4%다. 자산과 매출은 절반 안팎인데 당기순이익 비중은 70.5%다. 지난해 발표한 65.5%보다 높다. 2024년 64.8%와 비교하면 2년 만에 5.7%포인트 상승했다.
상위 10개 집단으로 범위를 넓혀도 쏠림은 여전하다. 상위 10개 집단은 전체 자산의 63%, 매출의 66.6%, 순이익의 75%를 차지했다. 상출집단의 비중은 더 압도적이다. 올해 상출집단은 전체 공시대상기업집단 자산총액의 88.8%, 매출액의 90.4%, 당기순이익의 93.9%를 차지했다. 47개 집단이 대기업집단 전체 수익 창출 구조를 좌우하는 셈이다.

형식보다 실제 영향력 따져
올해 대기업집단 지정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쿠팡이었다. 공정위는 쿠팡의 동일인을 기존 법인에서 김범석 쿠팡Inc 의장으로 변경했다. 쿠팡이 2021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처음 지정된 이후 이어진 동일인 논란이 5년 만에 자연인 지정으로 결론 난 것이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 또는 법인을 뜻한다. 동일인이 정해져야 기업집단의 범위와 규제 대상이 정해진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친족과 계열회사, 임원, 비영리법인 현황 등을 제출해야 한다. 자연인이 동일인이 될 경우 법인일 때보다 규제는 더 강화된다.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 즉 사익편취 행위 규제가 적용되는 대기업집단은 동일인이 자연인인 경우로 한정된다.
공정위는 올해 현장점검에서 김 의장의 동생 김유석 씨가 국내 계열사 경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해 예외 요건을 벗어났다고 봤다. 공정위는 김 씨가 부사장급으로 쿠팡 내 최상위 등급에 해당했고 등기임원 수준의 보수와 처우를 받은 것으로 파악했다. 또 물류·배송 정책 관련 정기·수시 회의를 수백 차례 주재하고,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대표이사 등을 불러 주간 실적과 배송 정책 변경 등을 논의했다고 봤다. 형식상 등기임원인지보다 실제 영향력을 따진 판단이다.

동일인 제도 평가는 엇갈려
전문가들은 올해 대기업집단 지정 결과가 한국 산업의 변화와 대기업 지정 제도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고 본다. 우선 한국 산업의 변화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방산은 국제 정세 변화가 수요를 밀어올렸고, 플랫폼은 이용자 기반과 데이터가 시장 지배력을 키웠다. K뷰티와 K푸드는 한류 소비 확산을 기반으로 해외 매출을 늘렸다. 금융투자업은 주식 시장 활황과 자산 가치 상승의 영향을 받았다.
공정거래 분야 전문가인 김형석 더킴로펌 대표변호사는 “방산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글로벌 안보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수출 확대가 핵심 동인이지만, 정부 정책과 지정학 변수에 종속적”이라며 “플랫폼 기업의 대기업집단 진입은 시장 지배력과 데이터·네트워크 효과가 임계점을 넘은 것으로 방산은 사이클, 플랫폼은 구조 전환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집단 최상위 그룹 쏠림 현상에 대해서는 우려가 크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상위 5대 그룹이 순이익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은 실적 개선이 ‘경기 회복’이라기보다 ‘쏠림 심화’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김형석 변호사도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자본 집약적 산업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이 재편되며 대규모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를 감내할 수 있는 소수 그룹으로 자원이 집중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기업 규모가 크다고 규제하는 대기업집단 지정제가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언급되기도 한다. 자산총액 5조원 기준은 제조업 중심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 공장과 설비, 토지가 기업의 규모와 지배력을 보여주던 때에는 자산 기준이 비교적 명확했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평가다. 가령 플랫폼 기업의 핵심 자산은 데이터, 알고리즘, 이용자 네트워크며 콘텐츠 기업은 지식재산권과 팬덤이 경쟁력으로 꼽힌다. 자산은 작아도 시장 영향력이 클 수 있고, 반대로 자산은 커도 경쟁 압력이 큰 기업도 있다는 설명이다.
동일인 제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재계 일각은 자연인 중심 동일인 제도가 낡았다고 본다. 친족 범위 공시와 지정자료 제출 부담이 지나치고, 외국 국적 창업자나 해외 상장기업에는 적용이 복잡하다는 이유다.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공정위가 필요한 경우 직접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반대로 현행 동일인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김우찬 교수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은 늘어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며 “사익편취 거래 규제 대상 집단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동일인 판단 기준의 정교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새겨들을 만하다. 김형석 변호사는 “기업 입장에서 가장 큰 부담은 규제 자체보다 예측 불가능성”이라며 “동일인 지정 여부에 따라 친족 범위 공시, 사익편취 규제, 상호출자 제한 등 적용 법조가 달라지는데, 그 입구의 판단이 흔들리면 기업은 컴플라이언스 체계 전체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9호(2026.05.13~05.19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c) 매경AX.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격전지’ 부산북갑 하정우 37% 선두...한동훈·박민식 단일화 변수- 매경ECONOMY
- 미스터비스트가 픽한 ‘K푸드’…4개월 만에 200만개 팔았다- 매경ECONOMY
- 마이크론·릴리 제쳤다…SK하이닉스, 글로벌 시총 14위- 매경ECONOMY
- 빚투 하다하다...“17억 빚투로 하이닉스 몰빵” 인증글 난리- 매경ECONOMY
- 고환율 타고 ‘K-가성비’에 눈뜨다…외국인 ‘쇼핑 관광’ [스페셜 리포트]- 매경ECONOMY
- 통합 재건축 첫발…개포 마지막 금싸라기 [감평사의 부동산 현장진단]- 매경ECONOMY
- 3년 전 가격 그대로...이문동 ‘래미안라그란데’ 2가구 줍줍 나온다 [호모 집피엔스]- 매경ECONOMY
- “예금으론 노후 불안해”…퇴직연금 주식으로 대이동- 매경ECONOMY
- “가장 핫한 종목만”...키움운용, 회심의 ETF 내놓는다- 매경ECONOMY
- 현대오토에버 상한가 ‘불기둥’ 왜? [오늘, 이 종목]- 매경ECON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