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이 잔혹한 '길들이기'에 열광할까

박재우 2026. 5. 11. 16:2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뷰] 영화 <직장상사 길들이기>

[박재우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국내 극장에서 개봉해 마니아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샘 레이미의 신작 <직장상사 길들이기>(원제: Send Help)가 최근 OTT 플랫폼을 통해 전격 공개되었다. 극장 개봉 당시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이 안방극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영화가 던진 권력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시의성을 얻게 됐다.

원제가 고립된 자의 절박한 구조 신호라면 한국식 제목인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일종의 '복수 가이드북'처럼 읽힌다. 배급사의 이러한 선택은 영민했다. 원제가 가진 고립의 공포보다 수직적 위계에 짓눌린 한국 대중의 '권력 전복'에 대한 열망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다. 두 제목의 간극은 단순한 번역의 차이가 아니다. 대중은 이제 선량한 피해자의 생존기보다 오만한 권력을 발밑에 두고 '길들이는' 지배의 쾌락을 원한다. 이 제목은 영화가 다루는 권력의 본질을 '생존'이 아닌 '지배'의 관점으로 재정의하며 관객을 유인했고 OTT 공개 직후 다시금 입소문 흥행의 중심에 섰다.

폭발하는 비행기, 무너지는 위계
 영화 <직장상사 길들이기> 스틸컷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의 무대는 숨 막히는 오피스에서 통제 불능의 무인도로 이동하며 권력 자본의 성격을 단숨에 바꾼다. 오피스는 자본과 계급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권력은 부모님의 후광으로 CEO 자리를 꿰찬 '낙하산'이라는 신분과 골프 실력 같은 사회적 기표에서 나온다. 주인공 린다(레이첼 맥아담스 분)는 업무적으로는 뛰어난 전략가임에도 "사교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약속된 승진에서 누락되고 그 자리는 무능한 상속자 브래들리(딜런 오브라이언 분)의 인맥으로 채워진다. 이는 단순히 '갑질'의 문제가 아니다. 2026년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공정성 담론'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이들의 운명을 가른 것은 방콕행 전용기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브래들리와 그의 일행은 린다가 과거에 촬영했던 생존 예능 오디션 영상을 노트북 화면에 띄워놓고 그녀의 행색을 비웃으며 집단으로 조롱한다. 린다는 눈물을 흘리며 작업 중이던 문서를 저장도 하지 않은 채 닫아버리는데 이는 그녀가 사회적 계약을 내면에서 파기한 결정적 순간으로 묘사된다.

바로 그 순간, 악천후를 만난 비행기는 급격히 추락한다. 아수라장이 된 기내에서 동료 직원 도노반(제이비어 새뮤얼 분)은 린다의 좌석을 뺏기 위해 그녀의 목을 조르며 본색을 드러내고 린다는 포크로 그를 찔러 저항하며 이미 야생의 생존 본능을 일깨운다. 폭발적 감압으로 다른 일행들이 기체 밖으로 튕겨 나간 뒤, 바다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것은 역설적으로 가장 유능한 생존 기술을 가진 린다와 가장 무능한 상속자 출신 CEO 브래들리뿐이다. 무인도에 도착한 순간, 브래들리의 직급과 자본은 거친 파도에 씻겨 나간다. 오직 린다의 '실질적 생존 기술'만이 유일한 권력이 된다. 시스템이 보장하지 못한 공정을 야생의 필연이 대신하는 순간이다.

현실 역전의 판타지

이 영화는 마크 밀로드 감독의 <더 메뉴>와 놀라운 평행이론을 형성한다. <더 메뉴>의 셰프 슬로윅(랄프 파인즈 분)이 요리라는 절대적 전문성을 무기로 무능한 미식가들을 심판하듯, 린다는 자신의 '생존 기술'을 유일한 기축 통화로 만들어 브래들리를 압박한다.

린다의 지배는 <더 메뉴>처럼 철저히 설계된 전문성의 폭력이다. 그녀는 맨손으로 불을 피우고, 섬의 식물과 열매를 가려내 조리하고, 급기야 멧돼지를 직접 사냥해 고기를 손질한다. 슬로윅이 프라이빗 아일랜드의 정교한 주방에서 코스 요리로 손님들을 압도했다면, 린다는 아무것도 없는 야생에서 맨몸의 기술로 브래들리를 제압한다. 슬로윅의 전문성이 문명의 정점에서 빚어낸 폭력이라면, 린다의 전문성은 문명 이전의 원초적 숙련에서 나온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고 믿던 자본의 수혜자에게 "당신이 가진 돈으로 불 하나 피울 수 있는가"라는 린다의 질문은 <더 메뉴>의 셰프가 던진 냉소적인 조롱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자본이 숙련도를 지배한다. 플랫폼 자본은 개인의 기술을 착취하고, AI는 숙련노동을 대체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 역전을 과감히 상상한다. '실질적 숙련도'가 자본을 인질로 잡는 이 판타지가 스크린 위에서만큼은 설득력을 얻는 것은, 현실 속 사람들이 그 역전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드러낸다.

고어 미학과 카타르시스
 영화 <직장상사 길들이기> 스틸컷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권력의 이동이 정점에 달하는 결말부에서 샘 레이미 감독의 잔혹한 장기가 폭발한다. 브래들리가 권력의 상징으로 휘두르던 골프채는 린다의 손에 들려 그의 머리를 박살 내는 처형 도구가 된다. 사회적 위계의 상징이 물리적 파괴의 수단으로 변모할 때, 관객은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샘 레이미는 마치 내가 인물의 눈을 통해 직접 보는 듯한 시점 연출과 컴퓨터 그래픽 대신 현장에서 직접 구현한 생생한 특수 분장 및 소품을 동원해 이 고어 미학을 피비린내가 진동할 정도로 실감 나게 구현한다.

이 고어 미학이 '직장상사 길들이기'라는 제목에 반응한 대중들의 잠재된 분노와 결합한다. 우리는 린다의 잔혹함에 눈을 가리면서도 한편으론 속 시원한 해방감을 느낀다. 각자도생의 시대, 법과 상식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갑질'의 문제를 샘 레이미의 방식대로 가장 원초적으로 해결해 버리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신고해도 무시되는 억압을 경험한 관객들에게 린다의 골프채는 판타지의 문을 연다. 그 판타지가 잔혹할수록 현실의 억압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언한다.

영화의 마지막, 린다는 섬에서의 만행을 숨긴 채 '위대한 생존자'이자 성공한 작가로 변신해 다시 권력의 정점에 선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증오하던 브래들리와 똑같은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시스템을 전복한 자가 새로운 시스템이 된다는 것,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냉혹한 통찰이다. 린다는 브래들리를 처단했지만 그가 보여주었던 권력의 논리는 이제 린다 안에서 되살아난다. 결국 이 영화는 괴물을 무찌르는 영웅의 서사가 아니라 시스템이 어떻게 새로운 괴물을 잉태하는가에 대한 신랄한 보고서이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린다의 복수에 환호했지만 동시에 그녀가 저지른 살인과 기만의 공범이 된다. 그리고 그 공범 의식은 단일한 감정이 아니다. 골프채가 내려치는 순간 느낀 쾌감, 그 뒤에 밀려오는 불편함, 불편함을 합리화하려는 충동, 그리고 합리화에 실패했을 때의 당혹감. 이 감정들은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동시에 뒤엉켜 가슴 속에 자리 잡는다.

이제 당신에게 묻는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당신의 감정은 어디에 머물렀는가? 아마 대부분은 하나의 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린다의 골프채에 쾌감을 느끼다가도 문득 자신이 브래들리의 자리에 있는 상황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잠재적 가해자의 욕망과 구조받지 못한 피해자의 공포는 한 사람 안에 얼마든지 공존한다. 그 두 감정이 뒤엉킨 채로 엔딩 크레딧을 응시하는 것, 어쩌면 그 양가성이야말로 샘 레이미가 이 영화를 통해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 현대인의 초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4indie)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