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어른 행세] "교과서는 거의 안 봐" 아이가 수상한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임은희 2026. 5. 1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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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후보에 바란다] 좋은 교사가 좋은 학교를 만든다... 교사 1인당 학생수 5명의 기적

[임은희 기자]

달래와 쑥을 캐는 학교

"엄마! 학교에서 달래 캐왔어. 뿌리 안 상하게 캐는 법이랑 씻는 법 배웠어. 다음엔 쑥 캐올게."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작은 아이가 뿌리까지 고스란히 붙어있는 달래를 흔들며 집에 왔다. 아이가 들고 온 달래를 씻어 달래간장을 만들며 입학 후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뭘 배우고 있는 거지?'

"학교 잘 다녀왔어? 오늘은 어땠어?"
"짝토론 수업시간에 질문하는 법을 배웠어. 토론의 기본은 좋은 질문이래."
"그다음에 토론을 하는 거야?"
"아니, 문제를 발견하는 법을 배울 거래."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뭘 배웠다고? 과목 이름이 짝토론? 질문하는 법을 배운다고? 학생이 어떤 대답을 하건 교사들은 '왜'라고 묻고 학생들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질문에 대답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선생님들 바쁘실텐데 대단하네. 교과서 진도는 나가고 있는 거야?"
"영어는 안 보고, 과학, 국어는 조금 보고, 사회는 지도만 봐, 수학은 발표가 많아. 교과서는 거의 안 봐."

달라도 너무 다른 학교

큰 아이가 다녔던 중학교와 너무 다른 수업 방식에 작은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궁금해서 검색을 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2024년 4월에 IB 후보학교로 지정된 곳이었다. IB(국제 바칼로레아, International Baccalaureate)는 IBO(스위스에 위치한 국제 바칼로레아 기구)에서 운영하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교육과정으로 만 3~19세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토론 중심 수업, 과정 중심 평가를 진행한다.

어느 날 아이가 <학문적 진실성 서약서>라는 것을 들고 왔다. 정당한 방법으로 참고문헌을 이용하고, 표절을 포함한 부정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였다.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과제를 수행하겠다는 서약서에는 보호자 사인란도 있었기에 함께 서약서를 낭독하고 사인했다.
 학문적 진실성 서약서. 입학생들이 제출해야 하는 서약서로 학생과 보호자 모두 서명하여 제출해야 한다.
ⓒ 임은희
평가과정도 독특하다. 이수 여부만 성취도란에 'P'로 표기하는 일반 중학교와는 달리 내부적으로 학생 수준에 따라 8단계로 나눈다. 구술시험이 꽤 많은 편인데 아이말로는 시험 때마다 촬영을 한단다. 결과에 이의제기를 할 경우 녹화영상을 다시 보며 재채점을 진행한다. 서술형 시험 내용은 학생들만 열람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공개해 동급생들의 글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일반 과제는 집에서 할 수 있지만 평가를 위한 과제는 집으로 가지고 올 수 없다

지난 4월, 아이네 학교는 1박 2일 수련회를 다녀왔다. 수련회를 포기한 학교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학생들이 교사에게 수련회를 가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물었고, 교사는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교과서 내용만 가르치면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봐도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학교는 그런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토론을 하고, 함께 운동을 하고, 여행을 떠나며 학교 밖에서 배우기 어려운 것들을 배운다. 그것이 학교의 진정한 목적이고 우리가 너희를 가르치는 이유다."-중1 아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교사의 말-

학생들의 질문에 성의껏 답변하고, 모든 학습에 '왜'를 붙이며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도 고마운데 안전을 이유로 신체활동과 야외활동을 제한하지도 않는다. 틈만 나면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 학교 근처의 문화유산을 탐방하고, 관련 문학작품을 읽고, 쓰레기를 줍는다. 꽃이 피면 밖으로 나가 교내 정원에 핀 꽃들을 감상한다. 학생들은 나무에 붙은 매미껍질들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상상하며 달래와 쑥을 캔다.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인 큰 아이는 작은 아이와 달리 일반 중학교를 졸업해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반 중학교의 교육과정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교사들 수준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일반 학교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들이 IB학교에서는 가능하다.

평범한 보호자의 입장에서 자세한 부분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일반 학교에서는 안 되는 것들이 IB학교에서는 된다는 점이다. 근무년수를 채우면 흩어지는 공립학교 교사들로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교과서에 나와있는 내용을 이론으로만 하고 지나가는 일반학교와 교과서 진도보다는 교사가 필요에 의해 선택한 학습방식으로 수업하는 IB학교의 차이는 매우 컸다.

경쟁보다 '함께'가 우선인 학교
 2026년 5월 1일 기준으로 서울의 IB학교는 인증 4개교, 후보 11개교, 관심 91개교로 총 106개교다. 이중 월드스쿨 자격을 획득한 인증학교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2개교로 총 4개교다.
ⓒ 서울시교육청
작은 아이는 장애통합교육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소리를 많이 지르고 다른 학생들을 때리던 학생이 있었는데 같은 중학교로 진학했다. 햇수로 10년째 지켜보는 셈이다.

"예전보다 소리를 덜 질러. 때리지 말라고 하면 이제 때리지 않아. 8단계 평가에서는 낮은 단계를 받고 있지만 장애가 없는 학생들도 낮은 단계를 받거든. 그런 걸 보면 다들 각자의 속도대로 성장한다는 걸 느껴."

같은 반의 휠체어를 탄 학생은 수련회 때 별도의 차량으로 이동하고 단독 방을 배정받았다. 불만을 표출하는 학생은 없었냐는 말에 아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휠체어는 계단이나 경사가 심한 곳은 이용하기 어려워. 일반 버스뿐만 아니라 저상 버스도 타기 어렵잖아. 그러니 휠체어 탑승이 편리한 별도의 차량을 이용하는 건 당연한 거야. 숙소는 학교처럼 배리어프리가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모두에게 똑같이를 강요할 수 있겠어. 그건 공정이 아냐. 우리도 그 정도는 알아."

경쟁보다 협력, 다양성 존중, 야외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성장한 것은 학생들뿐만이 아니었다. 2026년 4월 학교는 IBO로부터 IB MYP(middle years programme) 월드스쿨 공식 승인을 획득했다.

교사의 행복이 곧 학생의 행복
 지난 4월, 학생들은 교사와 함께 교내에 핀 꽃들을 감상하며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교사 1인당 학생수 5명인 학교는 안전한 야외활동이 가능하다. 계절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야외 활동을 진행한다.
ⓒ 임은희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중학교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12.8명인데(OECD 교육지표 2025) 아이가 재학 중인 학교는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5명에 불과하다. 수학 구술 평가를 위해 교사는 학생 한 명당 약 10분 정도의 시간을 쓴다. 무용은 춤에 어울리는 얼굴표정까지 지도하며 세심하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고, 체육 역시 야구공 던지는 자세를 1대 1로 교정해 준다고 들었다. 교사의 1인당 학생수가 감소하면 수업 준비와 학생 관찰, 다면 평가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고 안전한 야외 활동도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 아이의 학교는 1940년대에 개교한 공립학교로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툴을 활용하며 최신식 교육을 진행하고, 안전한 야외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열의를 가진 훌륭한 교사들 덕분이다.

좋은 학교는 결국 좋은 교사가 만든다. 아무리 좋은 교육 철학도 교사들이 과도한 업무에 지쳐있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교실에서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 중심 평가를 요구하고 야외 활동까지 책임져 달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가 아닐까.

서울시 교육청 예산의 약 67.9%(7조 4292억 원)가 인건비라지만(2026년 서울시교육청 자료 참고)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교육환경에 걸맞은 교사수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IB 인증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이 교육청이 추구하는 교육형태라면 교사수는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 학생수 감소에 맞춰 교사수는 줄이고 필요인력은 기간제 교사로 대체하는 '가성비 전략'은 미래교육을 위한 환경 구축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교사는 최저입찰을 통해 구입하는 공공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6월 3일에 치러질 서울시교육감 후보들의 공약을 보니 교사들에 관한 것은 교권침해 방지대책 정도가 전부라 아쉬웠다. 인건비를 파격적으로 편성하고, 정규직 교사 채용 비중을 늘려 1인당 학생수를 감소시키면 어떨까. 교사들이 학생들 개개인의 역량 강화를 위한 탐구형 수업과 서·논술형 평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하는 공약이 교육 환경 개선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과도한 경쟁 속에서 학생의 마음을 중요시 여겨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상담인력을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쉽게 다치지 않는 교육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학생의 마음은 교사가 지킬 수 있는 영역이다.

《 group 》 그럭저럭 어른 행세 : https://omn.kr/group/2025_adult
쩨쩨하고 궁핍하지만, 울고 웃고 버티며 오늘도 그럭저럭 어른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삶을 글로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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