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왜 왔나 싶었는데... 함께 싸우며 알았다, 진짜 동지란 걸"
[문진석 기자]
4월의 마지막 날, 며칠간의 반짝 추위가 지나가고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청와대 사랑채 앞 차도 한켠에는 못해도 백 명은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노동절 하루 전인 4월 30일 오후 5시, 세계노동절 청년·학생·비정규직 전야제 '전쟁, 침탈, 혐오 역행하는 시대, 전진하는 우리'는 학생들이 노동절 집회를 위해 자리를 맡아 두었던 그 청와대 앞에서 1980년대 말에 시작된 노동 운동의 전통을 계승했다.
그곳에는 하청노동자와 성소수자를 위해 연대하자는 문구가 쓰인, 노동조합원이나 시민단체 회원임을 알 수 있는 조끼를 입은 사람들,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촉구하는 피켓을 든 사람들, 그리고 정당의 로고가 그려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군데군데 중장년 세대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들 대부분은 20대에서 30대의 청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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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세계노동절 청년·학생·비정규직 전야제 '전쟁, 침탈, 혐오 역행하는 시대, 전진하는 우리'는 학생들이 노동절 집회를 위해 자리를 맡아 두었던 그 청와대 앞에서 1980년대 말에 시작된 노동 운동의 전통을 계승했다.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과 활동가들이 연설을 듣고 있다. |
| ⓒ 문진석 |
하지만 그는 얼마 전 일어난 BGF 로지스 CU 진주물류센터 화물연대 조합원 사망 사건을 언급하며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현실을 지적했다. "얼마 전 원청 교섭을 요구하던 화물노동자가 대체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노동 존중을 말하면서 현장을 억압하는 정부를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올해 3월 노란봉투법이 마침내 시행된 후 1000개가 넘는 하청 노조가 370개가 넘는 원청 기업들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으나, 이들 중 많은 기업들이 교섭을 회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BGF 로지스 역시 화물연대와의 교섭에 응하지 않다가 조합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후에야 교섭이 성사되었다. 화물연대의 주장에 따르면 연좌농성 중이던 소속 조합원들이 농성 현장에서 완전히 빠지지 않은 상황에서 BGF 로지스 측의 대체 차량이 출차를 시도했다고 한다.
63년 만에 원래 이름을 되찾은 첫 노동절이 지난 지 이미 열흘도 넘었고, 20년 가까운 노력 끝에 통과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시행된 지도 약 두 달이 지났다. 그러나 오복영 지회장의 말을 되새기듯, 그날 거리에 나섰던 이들의 목소리는 이대로 끝나지 않았다. 그곳에서 만났던 학생 활동가들은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가? 약 일주일이 지나서 이들이 피부로 느끼는 노동 이슈에 관해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 봤다.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와 아르바이트
노동의 꿈과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예술독서회 소속 신민섭 청년 활동가는 대학생 활동가의 입장에서 가장 크게 와 닿는 이슈로 학교 내 청소와 경비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를 꼽았다. "학내 청소 경비 노동자분들의 경우에는 보통 직고용되어 있지 않고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죠. 용역업체가 바뀌면 고용이 위태로워지는 경우도 많고, 실질적 고용주인 학교에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어요."
노란봉투법이 통과된 이후,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4월 사립대학인 인덕대학교와 성공회대학교가 원청으로서 사용자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 소재 15개 대학교는 청소와 경비 등을 담당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노조가 조직화되지 못한 성균관대학교의 청소, 경비 노동자들은 민주 노조가 자리를 잡은 다른 학교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으로 통제가 심한 환경에서 일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신 활동가는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다고 한다. 노동자와 학생 간의 연대, 흔히 노학연대라고 불리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일'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 같은 노력이 시혜적 접근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데다, 괜히 노동자들의 근무 여건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까 봐 걱정했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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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노동절 청년·학생·비정규직 전야제에 참여한 노동 운동가들이 학생 활동가들 사이에 앉아서 연설을 듣고 있다. |
| ⓒ 문진석 |
서울예술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사회주의자연대 소속 김지현 활동가는 외국인 인구가 전체의 13%가 넘는 경기도 안산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안산이 도시의 다문화적 특성을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노포비아를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작년 11월에 한창 극우 단체에서 대한민국 여기저기에서 혐중 시위를 벌일 때, 안산 지역도 포함되어 있었어요"라고 그는 회상했다. "중국인 이주민이 한국인 주민을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음모론 현수막이 걸려 있는 걸 보고 경악했던 기억도 있고요."
김 활동가의 말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단지 거리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노동 현장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지난 4월 화성 일차전지 제조 공장 화재 참사의 책임자로 지목된 아리셀 박순관 대표가 항소심에서 당초 1심의 징역 15년에서 대폭 감형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일을 꼬집었다.
2024년 6월 벌어진 이 화재로 인한 희생자 23명 중 18명은 이주노동자였고, 전체 희생자 중 단 세 명만이 아리셀에 정직원으로 고용된 상태였다. 아리셀 측은 이 사고로 희생된 이주노동자 유족들에게 1차 합의안에서 희생자의 일실수입을 국적과 비자에 따라 차등 계산하려고 했다가 이후 내국인 기준 최저임금이라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유족들 중 한 명이 폭로한 바 있다.
"다들 끔찍하다고 느끼죠." 그는 친구들의 이주노동자 이슈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에 답하며 말했다.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고 제가 말을 하면 '그거 너무 안 된 일이다' 라고 얘기는 하는데, 레거시 언론에서는 잘 다루지 않기 때문에 체감하는 정도가 다를 것이다, 혹은 이제 너무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까 잘 모른다 이런 느낌이 있죠."
또한 그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들이 아직도 레거시 언론에 만연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SBS가 지난 4월 29일 보도(<"우리는 왜 고유가 지원금 안 줘"…이민자 단체 '우르르'>)를 예로 들었다. "발화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은연 중에 방향성이 설정되는 게 언론인데, SBS라는 대형 언론사에서는 이주노동자를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가지고 징징대는 대상으로 설정하고 기사를 쓴 거죠."
연대를 통한 운동의 확장
신민섭 활동가는 노란봉투법의 통과가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기업과 교섭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여 투쟁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노동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는 단순히 입법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지속적인 투쟁과 단결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 활동가로서 실제 노동 현장의 문제와 직면해 있는 노동조합과 사회운동단체, 인권단체와 연대하지 않고는 투쟁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제가 연대라는 걸 통해서 중요하게 느낀 것은, 연대를 통한 운동의 확장의 가능성이 아닌가 싶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학내 청소노동자 처우개선 같은 의제가 있다면 학생 단체에서는 노학연대를 통해 대학 내 구성원으로서 같은 권리보장 차원에서 접근할 수도 있고, 노동조합에서는 노동권 보장, 노동권 신장 그런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고요. 청소노동자분들은 보통 여성분들이 많으니까 여성 인권 단체와 여성 인권 신장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학교 밖 노동 이슈에 있어서도 학내 단위들이 연대 정신과 더불어서 예비 노동자성을 가지고 접근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김지현 활동가는 이주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연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진보정당이나 노동조합 내부에서마저 존재하는 차별적 인식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본인의 투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이주노동자의 상황이 안 좋은 것은 어떻게든 정주민 노동자의 노동 실태라든지 노동 환경 자체도 그 밑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놓은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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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노동절 청년·학생·비정규직 전야제 '전쟁, 침탈, 혐오 역행하는 시대, 전진하는 우리'에 참가한 학생들과 활동가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
| ⓒ 문진석 |
시민들의 연대를 통한 노력으로 63년 만에 노동절의 이름을 되찾고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것은 분명히 큰 성과였다. 하지만 이들이 말했듯이 지속적인 연대가 없다면 앞으로 마주할 현실이 개선될 수는 없다. 해고된 청소노동자의 복직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 이주노동자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분노하던 사람들처럼 자신의 삶처럼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해 함께 거리에 나섰던 이 사람들이 여전히 연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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