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지 않은 조선 악녀의 생존기, '대군부인' 위협하네

김상화 2026. 5. 1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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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SBS 금토 드라마 <멋진 신세계>

[김상화 칼럼니스트]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
ⓒ SBS
뻔하디뻔한 타임슬립·빙의 드라마의 재등장일까. 발칙한 로맨틱 코미디의 탄생일까. 지난 8~9일 방영된 SBS 새 금토 드라마 <멋진 신세계>가 첫 회부터 예상보다 빠른 속도와 과감한 전개로 동 시간대 경쟁작 MBC <21세기 대군부인>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자칫하면 판타지 로코물의 공식을 반복할 수 있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멋진 신세계>는 주연배우 임지연의 호연 속에 눈도장을 받았다. 방영 초반부터 5.4% 시청률(2회, 전국 기준, 닐슨코리아 집계),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1위 등극(10일 기준) 등 예사롭지 않은 수치가 포착됐다.

드라마는 조선 시대 사약을 받고 죽은 악녀 강단심의 영혼이 300년을 건너 2026년 무명 배우 신서리의 몸에 빙의된다는 설정이다. 이는 사실 2000년대 이후 각종 드라마에서 흔하게 목격한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다. 식상할 수 있는 소재는 임지연이라는 배우를 만나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조선 시대 악녀, 2026년 부활?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
ⓒ SBS
드라마는 가상의 임금인 조선 안종 6년 무렵 희대의 악녀라 불리던 후궁 강단심(임지연 분)이 사약을 마시며 쓰러지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호시탐탐 내 목을 노리는 궁중에서 한 몸 지키고자 발악한 죄"라고 절규하던 단심은 끝내 피를 토하고 쓰러진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개기월식은 시간을 뒤틀어버린다.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단심이 눈을 뜬 장소는 2026년 사극 촬영이 한창인 서울 도심 한복판이다. 무명 배우 신서리의 몸으로 깨어난 단심의 눈에 비친 서울은 그야말로 '지옥' 혹은 '별천지'다. 뒤이어 펼쳐진 재벌 3세 차세계(허남준 분)과 꽃다발 결투(?) 우스꽝스러운 '혐관' 로맨스의 출발을 알린다.

강단심은 신서리의 일기를 통해 그간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고 서리가 살던 고시원 쪽방 공간을 통해 스스로 생존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기존 타임 슬립 드라마들이 주인공의 시대 적응에 상당 분량을 할애하던 것과는 다르게 <멋진 신세계>는 마치 4배속 버튼을 누른 듯 초스피드급 전개로 극의 흡인력을 높인다.

왜 '멋진 신세계' 일까?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
ⓒ SBS
여기서 왜 이 작품이 올리버 헉슬리의 1932년 고전 소설과 같은 제목을 사용했는지 그 의도가 파악된다. 동명 소설은 완벽하고 풍요로운 세상이 사실은 엄격하게 통제되고 억압받는 환경이라는 역설을 드러낸 디스토피아 풍의 SF작품이다.

300년 전 조선시대 후궁에서 환생한 강단심이 살아가게 될 지금의 세상은 SNS 화제성·자본·이미지 소비로 움직이는 또 다른 생존 경쟁 사회다. 미천한 신분에서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된 단심은 결국 '악녀'라는 누명 속에 권력 암투에 희생된 인물이다.

단심이 빙의한 신서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명 배우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과 수모를 당했다. 시대만 바뀌었을 뿐 힘없는 인간을 소비하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냉소적 의미가 <멋진 신세계>라는 제목에 담긴 게 아닐까.

임지연이기에 가능한 판타지 로코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
ⓒ SBS
임지연이 연기하는 강단심은 장희빈의 이미지를 빌렸다. 어떤 의미에선 흔하디흔한 캐릭터의 재림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단심은 신서리에 빙의된 2026년의 시스템에 순응하기보다 자신의 방식대로 시스템을 비틀어 놓는다. 300년 전 궁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익힌 눈치, 화술, 순발력은 이제 자신만의 경쟁력으로 재탄생했다.

상대역 허남준이 연기하는 차세계는 자본주의의 폐혜를 고스란히 담은 인물이다. 갑질 재벌로 악명 높은 세계를 두고 "그대를 나의 창과 방패로 써먹겠다"고 선언하는 대목은 로코물 특유의 수동적인 주인공상에서 완전히 탈피한 모습이다. 단 2회만에 <멋진 신세계>가 시청자들을 끌어들인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 중심에는 신서리, 아니 강단심을 연기한 임지연이 든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사극 톤의 화법을 유지하면서도 현대 시점의 코미디를 자유롭게 오가지만, 캐릭터의 무게중심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홈쇼핑에서 신들린 칼솜씨로 주방용 나이프를 팔다가도 사약의 트라우마에 떠는 감정 변화를 매끄럽게 표현한다.

자칫 과장되면 만화처럼 보일 수 있는 설정을 끝까지 현실의 감정선 안에 붙잡아 두는 힘 역시 배우에게서 나온다. <더 글로리> <마당이 있는 집> <옥씨부인전> 등을 통해 보여준 강렬한 캐릭터 장악력이 이번에도 제대로 작동한다. "유치한데도 재미있으려면 임지연처럼 연기력이 탄탄해야 한다"는 어느 네티즌의 유튜브 속 응원 댓글처럼 임지연은 개성 넘치는 인물 강단심을 무리 없이 소화한다.

이제 막 출발한 <멋진 신세계>는 임지연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시청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희대의 악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강단심이 이 삭막한 자본주의 낙원에서 자신만의 '진짜 신세계'를 찾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상화 칼럼니스트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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