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유럽의 왕”…英 변방 우파 당대표, 어떻게 총리 후보까지 왔나
“유럽의 왕(King of Europe).” 과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부터 이런 극찬을 들은 나이절 패라지(62) 영국개혁당 대표가 차기 총리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그가 이끄는 개혁당이 지난 7일(현지시간) 영국 지방선거에서 총 5000여 개 의석 중 1453석(4분의 1 이상)을 확보하며 기존 양당 체제를 강력히 흔들었기 때문이다.

패라지는 반(反)유럽연합(EU)·반이민을 앞세워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이끈 우파 포퓰리즘의 상징이지만, 배경은 금융권이다. 1964년 켄트주에서 증권중개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명문 사립학교 덜위치칼리지를 졸업한 뒤, 대학 대신 18세에 런던 금융가로 뛰어들어 상품 중개업자로 일했다.
1978년 보수당에 입당했으나 EU 통합 확대에 반발해 탈당했고, 1993년 영국독립당(UKIP) 창당에 참여했다. 1999년부터 20여년간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공격적 화법으로 EU 지도부를 조롱하기도 했다. 2019년 브렉시트당(개혁당 전신)을 거쳐 2021년 개혁당을 재편한 그는 2024년 총선에서 8번의 도전 끝에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정치적 행보는 논란의 연속이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난민 행렬 사진과 함께 “브레이킹 포인트(Breaking Point·한계점)”라는 반이민 포스터를 내걸어 인종혐오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와 EU의 동진이 우크라이나 전쟁 원인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개인사도 극적이다. 고환암 수술과 2010년 경비행기 추락 사고를 겪으며 사선을 넘나들었고, 유세 중 밀크셰이크와 계란 세례까지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주류 정치가 싫어하는 아웃사이더”라는 이미지 구축에 영리하게 활용해왔다.
트럼프와의 친분도 두텁다.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유세를 지원하며 신뢰를 쌓아 “유럽의 왕”이란 극찬까지 받았다. 2024년 대선 땐 트럼프 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의 공개 지지까지 받아냈다. 머스크는 X(옛 트위터)에 “오직 개혁당만이 영국을 구할 수 있다”고 적으며 힘을 실은 바 있다.

이제 패라지는 “1990년대 변방 의제를 주창하던 인물에서 오늘날 국가적 대화를 지배하기까지 긴 행진을 한 정치인(미 ABC)”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그의 신념이 담긴 불법 이민자 추방, 국경 통제 강화, 탄소중립 폐기 등의 당 정책이 생활비 위기와 높은 이민자 유입에 피로감을 느끼는 유권자들을 마침내 파고든 것이다.
패라지는 이번 승리를 경마의 난코스, 베처스 브룩(Becher’s Brook)에 비유했다. 그만큼 이번 선거가 어려웠다는 뜻이지만, 마치 변방 정치인에서 총리 후보로까지 올라선 자신의 고된 정치 인생을 빗댄 표현으로도 해석된다.
다만 승리 직후 암호화폐 억만장자 크리스토퍼 하본으로부터 받은 500만 파운드(약 100억 원)의 후원금 논란이 터지면서 또 다른 시험대에 올랐다. 여당 노동당은 정책적 대가성을 의심하고 있으며, 선관위 조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10일 전했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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