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소풍 와서 '예술'하는 날, 모두 무료입니다

이규승 2026. 5. 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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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아르코예술극장 앞마당에서 열린 '2026 예술로 소풍-봄' 첫날

[이규승 기자]

 어린이·가족 거리예술축제 <2026 예술로 소풍-봄> 현장
ⓒ 이규승
"그래, 거기가 어디라고? 장터라고!"

배우의 목소리가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앞마당을 가로질렀다. 장구 소리가 뒤따랐다. 작은 야외 무대 위에서 배우가 흰 천을 힘껏 끌어당기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보랏빛 바지에 분홍빛 저고리를 입은 배우는 장터의 익살꾼처럼 몸을 크게 썼고, 흰 의상을 입은 배우들은 종이 상자로 만든 듯한 산과 길, 오래된 집 모양의 구조물 사이를 오가며 인형과 소품에 숨을 불어넣었다.

아이들은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조용히 앉아 있던 아이들도 장단이 빨라지고 배우의 몸짓이 커지자 조금씩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누군가는 부모의 무릎 가까이 붙었고, 누군가는 손에 쥔 풍선을 잠시 잊은 채 무대만 바라봤다. 낮은 어린이 의자에 앉은 아이들의 눈앞에서 인형이 움직이고, 배우가 웃고, 장구가 울렸다.

이날의 중심 공연은 극단 마루한의 국악 인형극 <이야기 파시오>였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가 세상에 하나 뿐인 이야기를 찾아 장터로 떠나는 내용이다. 그러나 작품이 아이들에게 건넨 것은 단순한 줄거리가 아니었다. 가장 특별한 이야기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는 말, 그리고 그 이야기는 누군가 들려주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들어가 움직일 때 더 살아난다는 감각이었다.

이야기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들
 어린이·가족 거리예술축제 <2026 예술로 소풍-봄> 현장
ⓒ 이규승
공연 중간, 아이들이 하나둘 무대 위로 올라왔다. 처음에는 조금 머뭇거렸다. 배우가 손짓하자 객석 맨 앞에 있던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일어섰고,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배우는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아이들은 둥글게 섰다. 누군가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이미 웃고 있었다. 객석에서는 박수가 나왔다. 부모들은 아이가 무대 위에 선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 순간, <이야기 파시오>는 배우들만의 공연이 아니게 되었다. 아이들이 이야기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갔다. 이야기는 아이들의 몸을 빌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악 인형극이라는 이름은 아이들에게 어려운 장르명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장단이 울리면 고개를 들고, 배우가 손짓하면 웃고, 인형이 움직이면 눈을 따라 옮기는 시간. 설명보다 감각이 먼저 도착하는 자리였다.

지난 9일 토요일 오후,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앞마당에서 어린이·가족 거리예술축제 <2026 예술로 소풍-봄>의 첫날 행사가 열렸다. 이날의 대학로는 이미 초여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햇살은 제법 뜨거웠다. 붉은 벽돌 건물은 한낮의 빛을 받아 더 짙게 서 있었고, 건물 사이로 알록달록한 삼각 깃발이 바람에 흔들렸다. 극장 벽면에는 커다란 문장이 걸려 있었다.

"어린이가 예술로 행복한 세상."

그 문장 아래로 노란 파라솔들이 작은 섬처럼 펼쳐져 있었다. 파라솔 아래에는 부모와 아이들이 빼곡히 앉았다. 한쪽에는 풍선이 묶여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돗자리와 그림책, 만들기 재료가 놓여 있었다. 이날 아르코예술극장 앞마당은 극장 로비도, 광장도, 놀이터도 아닌,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섞인 작은 축제 마을이 되었다.

아이들이 무대에 오른 순간, 공연은 소풍이 되었다 좋은 어린이 공연은 아이를 얌전한 관객으로만 두지 않는다. 이날 <이야기 파시오>가 그랬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는 사람에서 멈추지 않았다. 무대에 오르고, 배우의 손을 잡고, 장단 안에서 함께 움직였다. 어린이 공연에서 참여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예술과 아이 사이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는 방식이다.

객석과 무대 사이의 낮은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아이들은 '공연을 본 아이'가 아니라 '공연 안에 있었던 아이'가 된다. 이 차이는 크다. 관람은 기억으로 남지만, 참여는 몸에 남는다. 나중에 아이가 이 공연의 줄거리를 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무대 위에 올라 배우와 손을 잡았던 순간, 장구 소리에 맞춰 친구들과 함께 움직였던 감각은 오래 남을 수 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아이들보다 부모들의 얼굴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무대 위에 선 아이가 쑥스러워할 때, 객석의 어른들도 함께 웃었다. 아이가 배우의 손을 잡자 부모의 얼굴에도 잠시 긴장이 풀렸다. 아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자, 뒤편의 휴대전화들이 일제히 올라갔다. 그건 단순히 '우리 아이가 무대에 섰다'는 기념의 표정만은 아니었다. 아이가 예술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까웠다.

무대 뒤편의 종이 구조물들도 흥미로웠다. 거창한 장치가 아니라 손으로 만든 듯한 질감이 살아 있었다. 산과 길, 집과 장터의 이미지는 아이들의 상상력이 들어갈 틈을 남겨두었다. 완벽하게 재현된 세트가 아니라 조금 비어 있는 무대였기에, 아이들은 그 빈 곳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채울 수 있었다.
 어린이·가족 거리예술축제 <2026 예술로 소풍-봄> 현장
ⓒ 이규승
아르코예술극장의 붉은 벽돌과 노란 파라솔, 초록색 인조잔디와 낮은 어린이 의자들이 어우러진 풍경도 공연의 일부처럼 보였다. 대학로 한복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속도가 느려졌다. 아이들은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웃고, 부모들은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다시 웃었다.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객석의 표정 속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풍선과 스탬프, 손끝으로 만난 예술 공연이 끝난 뒤에도 축제는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은 곧장 체험 부스로 향했다. 어떤 아이들은 투명한 풍선을 손에 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햇빛을 받은 풍선 안의 색종이 조각들이 반짝였고, 아이들은 풍선이 위로 떠오를 때마다 고개를 젖혔다. 풍선 하나가 하늘과 아이의 손을 이어주는 실처럼 보였다.

체험 부스 앞에는 아이들이 줄을 섰다. 어떤 아이는 흰 종이 모자를 쓰고 스탬프를 들여다봤고, 어떤 아이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도장과 그림 조각들을 유심히 살폈다. 손바닥만 한 스탬프 하나를 고르는 일에도 아이들은 오래 머물렀다. 어른에게는 단순한 체험일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내가 고른 것'과 '내가 찍은 것'이 생기는 시간이다.

'다육이 화분 만들기' 앞에서도 아이들의 손은 바빴다. 작은 다육식물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는 아이들, 풍선을 한 손에 쥔 채 화분을 받아 든 아이들, 방금 만든 것을 자랑하듯 품에 안고 지나가는 아이들이 이어졌다. 흙과 식물, 작은 화분과 색색의 재료가 아이들의 손을 거치며 자기만의 물건이 됐다. 결과물이 반듯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조금 삐뚤어지고, 조금 어설퍼도 그날 직접 만든 것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웃음 속에서 기억하는 것

한쪽에서는 '삼행시 배틀할 어린이 구함!!'이라는 손글씨 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다. 우쿨렐레를 든 배우들, 손팻말을 든 배우들이 아이들을 맞았다. 환경을 주제로 한 관객 소통형 코미디 <웃음 장수>였다. 기후 위기와 관련된 단어를 관객이 던지면 배우들이 그것을 재치 있는 말놀이와 삼행시로 바꾸는 프로그램이다.

무거운 단어가 아이들 앞에서 놀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주제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웃음 속에서 더 오래 기억한다. 기후 위기, 지구, 환경 같은 말들이 교실의 표어가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웃음을 터뜨리는 경험으로 남는 것이다.

실크스크린 워크숍 <지구별 안녕?>은 아이들이 직접 엽서를 만들며 지구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하늘로 매직 풍선>은 커다란 풍선을 하늘로 날렸다가 다시 당기는 체험이었다. 실내에서는 <컬러링 체험과 내 그림 전시하기>가 운영됐다. 바깥에서 뛰고 웃던 아이들이 잠시 안으로 들어가 색연필을 쥐고 자기 그림을 완성하는 시간이다.

이날 축제의 미덕은 어린이를 위한 예술을 어렵게 포장하지 않는 데 있었다. "예술은 중요하다"고 말하기보다, 아이들이 먼저 예술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무대에 올라 배우의 손을 잡게 했고, 풍선을 들어 하늘을 보게 했고, 스탬프를 찍고, 식물을 만지고, 말놀이에 참여하게 했다. 예술은 멀리 있는 이름이 아니라 오늘 내가 해본 일이 됐다.

이날 아르코예술극장 앞마당에서 예술은 무대 위에서만 피지 않았다. 노란 파라솔 아래, 풍선을 올려다보는 아이들의 눈동자에서, 스탬프를 고르는 작은 손끝에서, 다육이 화분을 품에 안은 아이의 걸음에서, 배우와 마주 선 아이의 웃음에서 함께 피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어른들은 잠시 잊고 있던 자기 안의 어린이와 마주했다.

한편, <예술로 소풍-봄>은 오는 5월 23일과 30일에도 이어진다. 23일에는 명랑 동화 뮤지컬 <삼양 동화 시리즈>와 퍼레이드형 놀이퍼포먼스 <알안>이, 30일에는 관객 체험 가면 음악극 <꼬마야, 꼬마야>와 하이브리드 광대극 <훌리와 뚱이의 재밌는 외출>이 예정돼 있다. 공연과 체험은 모두 무료다.
 어린이·가족 거리예술축제 〈2026 예술로 소풍-봄〉포스터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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