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의료분쟁조정법 개정했지만…봉합 안되는 환자-의료계 불만

조인경 2026. 5. 11. 09:5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위험 필수의료 형사책임 감면
'중대과실' 해석 따라 달라져
"결과 나쁘면 결국 처벌"

전공의로 근무하던 당시 응급실에서 20대 환자의 뇌경색을 조기 진단하지 못한 혐의로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이 형사처벌을 받으면서 의료계가 들끓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와 서울시의사회 등은 "결과만으로 의료진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판결이 이어지면 의학적 판단보다 법적 면책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 판결은 응급의료 붕괴를 더욱 가속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사고를 둘러싼 형사 책임 부담을 줄이고, 동시에 환자 권리 구제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의 '의료분쟁조정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의료진 보호'와 '환자 권리 보장'을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법 리스크 완화, 필수의료 소생 마중물 될까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의 핵심은 응급·소아·분만·외상 등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의료인의 형사 책임을 감면해 주는 것이다. 의료인이 책임보험에 가입하고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원칙적으로 기소를 제한한다. 고위험 진료를 수행하는 의사들이 형사처벌 부담 때문에 필수 분야를 기피하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의료진 입장에선 의도치 않은 사고로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사라져야 소신 진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형사처벌 특례 적용 여부를 가르는 핵심 기준인 '중대한 과실'로는 ▲설명·동의 내용과 다른 수술·수혈·전신마취 ▲필수 진단·모니터링·처치·전원 미실시 ▲체내 의료기구 이물질 잔존 ▲환자·수술부위 착오 ▲투약·수혈 오류 등 12개 항목이 제시됐다. 문제는 이 기준이 여전히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의학적 진료지침 또는 통상적으로 수용되는 진료에서 현저히 벗어난 의료행위(제7호)'나 '전공의·타 의료인 지시 후 감독의무 미이행(제6호)'은 해석에 따라 그 범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진료 지침과 조금이라도 다를 경우 중과실로 볼 수 있다면, 사실상 대부분의 의료사고가 기소제한 특례에서 배제될 수 있다. 의료계에선 "환자의 치료 결과가 나쁘면 결국 중과실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반면, 시민·환자단체는 형사처벌 특례를 사실상 '의료진 면책 특혜'로 보고 있다. 의료사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형사 책임은 중요한 구제 수단인데, 중과실 기준이 지나치게 완화되면 사실상 의료사고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예시로 열거한 12개 항목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진료지침 위반 등은 충분히 중과실로 판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개별 사건의 중과실 여부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에서 전문적으로 판단하도록 해 수사기관의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기소제한-손해배상청구권 충돌 논란도 여전

기소제한 규정이 환자에게 손해배상 청구권과 형사 고소를 선택하게 한다는 논란도 계속된다. 정부는 "기소제한 규정은 중과실 없는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만 적용되며, 손해배상청구권과는 별개다"고 설명한다. 실제 이번 개정안의 기소제한 조건에는 '손해 전액 배상'이 포함돼 있어 배상이 완료된 이후에야 기소제한이 작동한다. 이 규정으로 의료진이 수사 전부터 신속하게 배상에 나설 유인이 생기고, 환자 입장에서도 현실적으로 의료사고 손해배상 소송이 1심에만 평균 26개월 소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긴 재판을 기다리지 않고 더 빠르게,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신현두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환자가 의료진의 처벌을 원한다면 손해배상청구를 늦추고 고발 후 기소, 형사재판까지 기다렸다가 손해배상청구를 하면 된다"면서도 "의료진이 환자 측에 사고를 제대로 설명하고, 적절한 손해배상까지 완료했다면 굳이 의료진을 형사 고발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손해배상금 지급을 조건으로 검사의 공소제기를 제한하는 특례는 피해자와 유족에게 손해배상을 받을 것인지, 형사책임을 물을 것인지를 사실상 선택하도록 만드는 구조로 작동할 우려가 있어 반드시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정된 의료분쟁조정법은 공포 후 1년 뒤 시행된다. 복지부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구체적인 기준은 하위법령 마련을 위해 의료계와 환자단체, 정부 및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별도의 협의체를 구성, 하반기부터 세부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