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을 향한 200년 전 고전의 경고
[김성호 기자]
"세상에, 이럴 수가." 나는 외쳤다. "자신이 지혜롭다는 오만에 차 있지만 사실은 얼마나 무지한 위인인가! 그만둬.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 272p
스스로 창조한 괴물에게 약혼녀를 잃은 사내가 제네바의 치안판사를 붙들고 말한다. 자신이 만든 괴물이 생명을, 의지를 얻었고 막강한 신체를 가진 채로 세상을 활보한다고. 괴물을 창조한 자신,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쫓아 독일 바이에른주 잉골슈타트에서 이탈리아 반도 제네바까지 온 괴물이 자신의 동생과 친구와 아내까지 죽이고 도망쳤다고 말이다.
가용한 모든 인력을 동원해 괴물을 사냥해야 한다는 빅터를 치안판사는 반쯤은 미친놈이 아닌가 여기고 있다. 그저 제네바 유지인 빅터의 아버지 체면을 보아서 그의 얘기를 듣고 있을 뿐. 말을 마친 빅터를 치안판사가 마치 어린아이 달래듯 달래는 순간, 자신의 증언이 그저 착란의 소산 쯤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직감한 빅터가 분에 못이겨 이렇게 외친다.
"지혜롭다는 오만에 차 있지만 사실은 얼마나 무지한 위인인가!"
AI시대 거듭 소환되는 SF문학의 효시
탁월한 공포소설이자 SF문학의 효시라 일컬어지는 <프랑켄슈타인>이다. 남편인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당대의 명사인 친구 조지 고든 바이런, 바이런의 주치의이자 말 상대 존 폴리도리 등이 함께한 자리에서 서로 무서운 이야기 하나씩을 지어내자고 한 참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대략적인 구상을 풀어낸 이들이 한 편의 완결된 산문으로 작품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였다던가. 제네바에서 함께 한 그 계절로부터 이야기를 대략적이나마 완성한 건 오로지 메리 셸리 한 사람 뿐이었다. 그렇게 태어난 작품 <프랑켄슈타인>은 창의적인 여류 소설가의 대표작이었다가 지난 세기 가장 유명한 괴물 중 하나가 등장하는 공포 소설이었고, 이번 세기 들어서는 AI 시대를 내다본 인류 문명의 메타포란 평가까지 마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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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켄슈타인 책 표지 |
| ⓒ 문학동네 |
소설을 파국을 그린다. 준비되지 못한 창조자는 제 피조물을 감당치 못하고 저버린다. 버려진 피조물은 괴물로 전락한다. 피조물이 괴물이 되기까지,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존재가 마주하는 세상이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매력적인 지점 중 하나다. 메리 셸리는 어쩌면 자신의 삶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고이 접어 이토록 잔혹하고 두려운 이야기 가운데 넣어 두었다. 괴물을 마주하는 사람마다 칠색 팔색하며 달아난다. 용감한 이들은 돌팔매질을 하고 죽이려고까지 한다.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는데, 그저 생김만으로 혐오하고 공격한다.
간신히 숨어든 축사가 있었다. 그 축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젊고 선한 오누이 펠릭스와 아가타, 그리고 그들의 눈 먼 아버지였다. 이들은 저보다도 다른 가족을 위하며 자신의 슬픔을 숨기고 부풀린 기쁨을 나누려 했다. 온종일 성실하게 일하였고, 제 노동으로 얻은 것으로 주림과 추위를 피하였다. 괴물은 이들 곁에 숨어 지내면서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서 몰래 도움을 준다. 그러면서 신체능력 만큼 놀라운 관찰력과 이해력으로 인간의 언어와 사람됨과 관계 맺음 따위를 배워간다.
피조물이 괴물이 되기까지
아버지의 서재에서 독학으로 공부했고 학교가 아닌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해 세상을 익혀나갔던 메리 셸리의 시간들이 홀로 세상을 배워나가는 괴물의 이야기 가운데 자연스레 묻어 난다. 자신을 낳고 산후합병증으로 사망한 어머니, 재혼한 아버지와 계모에게 살가운 대접을 받지 못했던 메리의 어린 시절은 정서적으로 가족에 포함되지 못한 채 외부에서 온기 있는 관계를 동경하던 괴물의 자리와도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끝내 가족에게 받아 들여지지 못하고 불륜녀가 되어 아버지와 의절한 채 떠나야 했던 이후의 사정 일랑 길게 적지 않아도 좋겠다. 어찌 됐든 어려운 시기에도 충실하진 않아도 매력적인 남편 퍼시 비시 셸리와 탁월한 지성을 갖춘 친구 바이런 같은 이가 곁에 있어 그녀는 제 삶을 긍정해낼 수가 있었다.
메리에겐 있었으나 소설 속 피조물에겐 없었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괴물이 되길 택한다. 인간보다 탁월한 신체와 지능을 가진 존재, 그가 마음먹자 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괴로워하며 어린 아이의 목을 조르고, 원한 없는 여자에게 죄를 덮어 씌웠다. 그 모두가 창조자의 관심을 갈구하는 일이었으나 그는 끝끝내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혐오하길 택한다.
소설은 북극항로를 탐험하는 로버트 월튼 선장이 누이인 마거릿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창조자와 피조물의 이야기를 전한다. 북극 횡단을 위해 고투 하던 와중에 만난 괴물과 빅터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이들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를 들은 그다. 그저 주인공과 창조물이라는 흔한 구도, 선과 악으로 나누어진 이분법적 대결 구도를 넘어 창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인간과 방치된 피조물의 타락을 미지의 바다 가운데 오도 가도 못하는 인간에게 알도록 한 설정이 놀랍다. 인간보다 더 많은 발언의 기회를 피조물에게 허하고, 방치된 괴물이 자신이 느낀 고통을 말하는 모습 또한 파격적이다. 그는 마치 지구 위에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고통들과 도무지 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작가의 항변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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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켄슈타인 기예르모 델 토로가 감독한 2025년 작 영화 스틸컷 |
| ⓒ 넷플릭스 |
과연 그럴 만도 하다. 아무리 형편없는 인공지능조차 튜링테스트 따위 눈 감고 통과하는 시대다. 북극항로는 진즉 완주 됐지만 이제는 북극이 다 녹을까봐 걱정이다. 핵전쟁과 기후붕괴와 AI까지, 인간이 만든 기술이 어느새 인간 숨통을 졸라온다. 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이들이 그 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신을 모시는 이들과 전쟁을 벌인다. 포탄에 맞아 죽는 이들 가운데는 소설 속 빅터의 막냇동생 윌리엄과 같은 어린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초등학교에 폭탄이 떨어져 수백 명이 죽어나가는데 신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미사일과 전투기를 만들고, 그를 실제로 사용하고, 그래서 정작 전쟁에는 책임이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기까지 창조주는 어디에 있나. 그런 불만이 나올 법도 하다.
신과 인간, 다시 인간과 AI, 책임질 수 없는 무엇을 만들어내는 존재에 대하여 이 소설은 서슬 퍼렇게 경고하고 있다. 어떤 존재는, 기술은, 과학은, 앎은 차라리 북극 아래 가라앉아 마땅하다고. 배는 극점이 아니라 사람들 사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 사실에 온전히 동의할 수 없을지라도, 이 사실 하나 만큼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뒤늦게 제 잘못을 깨우친, 그리하여 인류 가운데선 선각자의 자리를 차지한 빅터가 치안판사를 향해 외치던 말 말이다.
"자신이 지혜롭다는 오만에 차 있지만 사실은 얼마나 무지한 위인인가!"
오늘에 이르러 이 말은 그저 제네바의 치안판사를 향한 것처럼만 읽히지 않는다. 인류를 향한 경고다.
인간 개인이 세상에 관해 아는 것은 창피할 정도로 적다. 더욱이 역사가 진행돼가면서 개인이 아는 것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되었다. 석기시대의 수렵·채집인은 자기 옷을 만들고 불을 붙이고 토끼를 사냥하고 사자를 피하는 법을 알았다. 오늘날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실제로 우리가 아는 것은 훨씬 적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 거의 전부를 다른 사람의 전문성에 의존해서 얻는다.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한 실험에서 연구진은 먼저 사람들에게 지퍼의 작동 원리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물어봤다. 응답자 대다수는 아주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퍼야 우리가 늘 사용하는 것 아닌가. 그런 다음 실험자는 응답자들에게 지퍼가 작동하는 과정을 가능한 한 자세히 묘사해보라고 주문했다. 이번엔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답하지 못했다.
(중략)
세계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는 반면, 사람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에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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