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폭증에 과로·여론 압박까지… 형사 재판부 ‘벼랑 끝’

윤준식,성윤수 2026. 5. 11.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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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새 법원 형사사건 72% 증가
업무 과중에 법관 절반 ‘번아웃’
재판 중계 등 개인 압박감도 커져
뉴시스


김건희 여사 사건 항소심의 재판장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법원 안팎에서 가혹한 형사재판 업무 환경이 법관들을 한계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래전부터 누적된 과중한 업무에 더해 최근 내란 재판 국면에서 재판을 둘러싼 외부 시선과 압박까지 겹치면서 형사법관들이 극심한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살인적인 업무량은 형사부에 배치된 법관이라면 응당 감내해야 할 기본값이 된 지 오래다. 국민일보가 10일 법원통계월보를 분석한 결과 전국 법원 형사합의부에 접수된 형사사건 건수는 2020년 1만5050건에서 지난해 2만5922건으로 5년 사이 72% 증가했다. 자연스레 재판 지연도 심화하고 있다. 전국 법원의 1심 형사합의부가 처리한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은 2020년 12월 176.5일에서 지난해 12월 206.5일로 늘어났다.


단순히 사건 수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사건의 난도도 높아지고 있다. 사법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소속 형사합의부가 2024년 작성한 판결문들의 평균 길이는 21.86면으로, 2016년(16.55면) 대비 32% 늘었다. A부장판사는 “증거자료가 1만쪽을 넘어가는 복잡한 사건들이 흔해졌다. 이런 사건들은 대형 로펌 변호사가 20명씩 붙어 분석하는데, 판사는 재판부 3명으로 판단해야 하니 갈수록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형사부 중에서도 사안이 복잡한 경제범죄나 고위 공직자 뇌물 사건 등을 다루는 부패전담 재판부의 부담은 더 크다. 지난 6일 숨진 채 발견된 신종오 고법판사가 근무했던 서울고법 형사15부 역시 올해 2월 신설된 부패전담 재판부였다. B부장판사는 “가뜩이나 사안 하나하나의 난도가 높은 데다 신생 재판부라 모두 신건으로 올라온 사건을 처음부터 살펴봐야 하니 업무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관 상당수는 업무 부담으로 인한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다. 사법정책연구원의 2024년 설문조사에서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법관이 52.2%였다. 경력이 쌓인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경력 15년 이상 법관 중 번아웃 경험자는 51.6%로 전체 비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험이 쌓일수록 더 어려운 사건이 떨어지니 40, 50대 판사의 부담도 저연차 법관 못지않다고 한다.

여기에 3대 특검이 넘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까지 잇따라 법원으로 넘어오면서 재판부를 향한 외부 압박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일부 재판의 경우 재판 과정과 선고가 생중계되면서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판사 개인을 향한 여론의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C부장판사는 “재판장의 말 한 마디, 표정 하나하나까지 유튜브 쇼츠로 편집해 각 진영이 입맛에 맞게 소비하고 있다”며 “재판 중계에 대한 스트레스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법관들의 형사재판부 기피 현상은 더 심화하고 있다. 법원은 형사재판부 추가 신설, 형사법관에 대한 추가 수당 지급, 법원 내 상담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게 대체적인 내부 평가다. A부장판사는 “특검 재판에 대비해 서울고법에 형사부를 2곳 늘렸지만 그걸 뛰어넘는 부담이 각 재판부에 닥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D부장판사는 “형사부 기피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해외에서는 신규 판사 자리를 형사부에만 만드는 방식으로 해결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법관들 사이에서는 문제 해소를 위해 사무분담 체계 재편과 형사법관 지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판사는 “현재 배석판사는 한 번 배정되면 2년, 재판장은 3년 같은 재판부에서 근무한다”며 “장기 미제사건 처리를 위한 궁여지책이지만 근무 기간을 1년으로 줄이면 개별 법관의 부담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F부장판사는 “사건마다 재판장을 돌아가면서 맡는 대등재판부가 경력이 풍부한 법관 사이 토론과 협업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판사들이 혼자 고민하고 사건을 처리하는 ‘단독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준식 성윤수 기자 semip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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