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스승의 날, 교수에게 묻는 스승의 조건

과거 지식을 되풀이할 뿐이고
교육 없이 연구만 하는 교수는
깊어지되 세상과 멀어진다
AI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도
학생 눈을 보며 응답하지 못해
연구자 교육자 지식인이면서
사람의 곁에 서 있는 선생
스승의 날(5월 15일)이 다가온다.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과 달리 스승의 날은 교수와 교사들에게 결코 설레는 날이 아니다. 오히려 무겁고 두렵게 느껴지는 날이다. ‘스승’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 때문이다. 과연 나는 그 이름에 어울리게 살고 있는가. 더욱이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그 물음은 이제 개인의 성찰을 넘어 실존의 문제가 되었다. 지식 전달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면 가르치는 사람은 무엇으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가.
그 답의 실마리는 ‘교수’라는 말 자체에 있다. 교수(敎授)의 영어 표현 ‘professor(프로페서)’는 라틴어 ‘profiteri’에서 유래했다. 이는 ‘앞(pro)’과 ‘공개적으로 선언하다(fateri)’의 합성어로, 자신의 분야에서 탐구한 지식을 대중 앞에 당당히 밝히는 전문가라는 뜻이다. 사회학자 칼 만하임이 지식인을 “사회의 파수꾼”이라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교수란 치열한 탐구 끝에 얻은 진리를 권력에 굴하지 않고 말해야 하는 사람이다. 가르치는 사람이기 이전에 진리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사람, 그것이 교수라는 이름이 본래 품고 있는 뜻이다.
교수라는 이름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지만 시대는 교수에게 매번 다른 역할을 요구해 왔다. 1810년 훔볼트가 설립을 주도한 베를린대학은 연구중심 대학의 토대가 되었고, 연구가 교수의 본분으로 여겨졌다. 논문의 양과 질이 그 역할을 가늠하는 잣대였다.
그러나 한국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70%를 웃도는 오늘날, 사회가 대학에 요구하는 것은 연구 성과만이 아니다. 사람을 키워내는 교육의 책임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요청받고 있다. 오늘날 교수의 역할은 연구와 교육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온전히 감당하는 데 있다. 이 둘 사이의 긴장은 결코 이분법으로 풀 수 없다.
카네기재단 총재를 역임한 교육학자 어니스트 보이어는 ‘학문의 재고찰’에서 그 답을 제시했다. 발견·통합·적용·교육이라는 학문의 네 차원은 서로 대립하지 않고 순환한다. 연구하는 교수만이 강의실에서 살아 있는 지식을 전할 수 있고, 가르치는 교수만이 연구에서 진짜 질문을 건져올릴 수 있다. 하버드대 교육학자 리 슐만 역시 ‘교과내용교수지식(PCK)’ 개념을 통해 같은 점을 강조한다. 앎과 가르침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연구 없이 교육만 하는 교수는 과거의 지식을 되풀이할 뿐이고, 교육 없이 연구만 하는 교수는 스스로는 깊어지되 세상과는 멀어진다.
그렇다면 가르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서울대 교육학자 이홍우는 ‘교육의 목적과 난점’에서 이렇게 답한다. 진정한 교육이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학생이 지식으로 구축된 세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이다. 수학 공식을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방식 자체를 익히게 이끄는 것,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그러기 위해 교육자는 지식의 구조와 깊이를 스스로 끊임없이 파고들어야 한다. 연구를 멈추는 순간, 가르침도 멈춘다.
스승의 날이면 으레 학생에게 인격적 감화를 준 선생, 학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지식을 능숙하게 전달하는 선생을 먼저 떠올린다. 지식을 생생하게 전하고 학생의 인격을 움직여 지성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은 물론 스승의 이름에 어울리는 미덕이다. 그러나 그 미덕 안에 감추어진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강의실이 연구의 현장이 되고, 연구실의 질문이 강의실에서 숨 쉴 때, 그때 비로소 교수는 스승에 가까워진다.
이제 그 스승의 자리에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했다. 인공지능(AI)이 지식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AI의 발전 속도는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고, 그 한계가 어디인지 아직 우리는 알지 못한다. 많은 직업이 AI와 휴머노이드로 대체될 것이라 하고, 교사와 교수도 그 위기 앞에 서 있다.
그러나 AI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도 학생의 눈을 들여다보며 그 갈급함에 응답하지는 못한다. 연구로 지식의 최전선에 서면서 그 지식을 학생의 삶과 연결짓는 교육자, 그 자리는 어떤 알고리즘도 대신할 수 없다. 스승의 날, 학생이 건네는 꽃 한 송이를 받아 들며 생각한다.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지식인이면서 사람의 곁에 서 있는 선생, 그 이름에 나는 과연 어울리는가.
남수경 강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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