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괌 풍경 뒤 굶주린 청년들… 교수가 매주 차리는 ‘캠퍼스 식탁’
괌 캠퍼스에 차려진 ‘예수님 식탁’
현지인 청년들 복음으로 회복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보고 싶다고 말해 준 건 처음이었어요.”
괌커뮤니티칼리지(GCC)에서 캠퍼스 사역을 하는 에릭 지(한국명 지용준·39) 선교사는 지금도 그 말을 잊지 못한다. 가정폭력 속에 살던 한 학생이 며칠 만에 기도 모임에 다시 나타난 날, 한참을 울다가 꺼낸 말이었다. 최근 괌 늘푸른장로교회(이우조 목사)에서 만난 지 선교사는 “그 한마디가 지금의 캠퍼스 사역을 붙들게 했다”며 “이런 학생들을 위해 시작한 작은 기도 모임이 이제는 캠퍼스 처치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지로 알려진 괌의 화려한 풍경 뒤에는 또 다른 현실이 있다. 인접한 마이크로네시아 섬 출신 학생들 상당수는 학비 지원과 아르바이트에 의존해 생활한다.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거나 가정폭력과 부모의 실직, 가족 해체 속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지 선교사는 “관광객이 보는 괌과 주민들이 살아가는 괌은 전혀 다르다”며 “아름다운 바다 뒤에는 생활고와 무너진 가정, 미래를 쉽게 꿈꾸지 못하는 청년들의 현실이 있다. 괌은 분명한 선교지”라고 말했다. 그런 현실 속에서 그는 캠퍼스 한가운데 ‘예수님의 식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GCC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괌과 마이크로네시아 다음세대 복음화를 위한 선교단체 MGM(Meeting God in Missions)을 이끌고 있다. 또 3년 전 시작한 캠퍼스 사역단체 ‘히스플랜무브먼트’를 통해 매주 화요일 캠퍼스 예배 ‘더테이블(The Table)’을 드리고 있다.
더테이블은 “예수님이 우리를 환영하시고 말씀으로 먹이시며 한 가족으로 세워 가시는 자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매주 30여명의 청년들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예배드린다. 처음에는 마이크로네시아 섬 출신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학교 안에서도 늘 주변부에 머물던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친구들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청년들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지 선교사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도록 곁을 지켜 주는 공동체”라며 “예배와 식탁, 그리고 끝까지 함께 있어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의 연구실 앞에는 무료 컵라면 나눔 코너도 운영되고 있다. 처음에는 배고픈 학생들에게 하나씩 건네기 위해 시작한 작은 섬김이었다. 이후 그가 협력 목사로 사역 중인 괌늘푸른장로교회 성도들의 후원이 이어지면서 지금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채워지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매달 100달러의 장학금도 지원된다.
히스플랜무브먼트를 캠퍼스 내 공식 동아리로 등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공립대학 특성상 종교 동아리 등록 자체가 학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승인과 보류가 반복되면서 사역팀과 학생들 모두 지쳐 갔다. 그러던 중 지난해 1월 네임리스(대표 박모세 목사), 인투미션(대표 이다솔 목사), 올띵스 찬양팀(대표 조나단) 등 한국의 사역팀들과 함께 지역 극장을 빌려 100명 규모의 청년 집회를 열게 됐다. 학교 공간을 사용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학생들뿐 아니라 가족과 지역 주민들까지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자리가 됐다. 그리고 집회를 마친 직후 학교 측으로부터 캠퍼스 미니스트리 공식 승인 연락이 왔다.

지난 2월에도 같은 장소에서 다시 청년 집회가 이어졌다. 지 선교사는 “모든 일이 제 계획대로 됐다면 제힘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며 “하나님께서는 이 과정을 통해 결국 하나님 자신이 드러나길 원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 선교사가 캠퍼스 사역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계기는 2024년 한 학생의 죽음이었다. 어느 날 수업 전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던 학생에게 “그림을 정말 잘 그린다”고 말을 건넸다. 학생은 웃으며 “교수님 사진을 주시면 멋지게 그려 드리겠다”고 했고, 그는 가볍게 “학기 끝나고 줄게”라고 답했다. 그것이 마지막 대화였다. 며칠 뒤 다른 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학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었다.
장례식을 마친 뒤 그는 교회에 홀로 남아 기도했다. 지 선교사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였던 학생 마음속에 얼마나 깊은 절망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며 “학생들 곁에 있으면서도 정작 그들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데 ‘이제는 학생들을 돌보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그는 크리스천 학생 두 명과 함께 연구실에서 작은 기도 모임을 시작했고 그 모임이 지금의 더테이블로 이어졌다.

지 선교사의 괌 정착은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중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플로리다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한 뒤, 첫째 아들 출산을 앞둔 2012년 처가가 있는 괌에 잠시 머물 생각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체류가 길어지면서 괌 쉐라톤호텔 세일즈·마케팅 부서에서 일했고, 이후 GCC 겸임교수를 거쳐 2014년 정식 교수로 임용됐다.
삶의 방향이 바뀐 건 10여년 전 한인교회인 늘푸른장로교회를 찾으면서부터였다. 당시 그는 평신도 집사로 예배를 드리러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목사의 부탁으로 마이크로네시아 축(Chuuk)섬 출신 아이들을 하루 동안 돌보게 됐다. 그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돌아보면 그 하루가 제 인생 방향을 바꾼 시작이었다”며 “순수하지만 누구의 관심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신앙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다음세대를 복음으로 양육하는 사역에 헌신했고, MGM 선교회 설립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집사에서 전도사, 목사로 사역의 자리도 넓어졌다. 현재 그는 풀러 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지난해 KAICAM(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제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간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며 “하나님께서 저를 대학으로 보내신 것은 단지 직업을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강의실이라는 공간에서 더 깊은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한 계획이었다고 믿는다”고 고백했다.

지 선교사는 “괌과 마이크로네시아 학교마다 기도 모임이 세워지고 그 불씨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길 바란다”며 “한 세대의 열심으로 끝나는 사역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흐르는 복음의 유산이 남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교회를 향해 이렇게 요청했다.
“지난 몇 년 동안 하나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신 것은 묵묵히 충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곳 청년들을 위해 함께 울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가능하다면 함께 걸어 주셨으면 합니다. 이곳의 청년들은 누군가의 관심을 잠시 받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한 영혼 한 영혼입니다.”
괌=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눈도 마주치지 마” 챗GPT, 딸을 방에 가두다
- [단독] “챗GPT가 노동법 위반이래요”… 노동위 사건 접수 47% 급증
- 프라이드 부부가 양념 아이 출산?…페리카나, ‘불륜 광고’ 사과
- 정원오 “반려동물 키우는 시민, 안심하는 서울 만들 것”
- 홈플러스, 10일부터 37개 마트 영업 멈춘다
- “혼수상태 군수 남편 사직시켜달라” 호소했지만 기각, 왜?[이세계도쿄]
- 제니, 2년간 238억 벌어…1인 기획사 고공행진
- “포장 용기 값은 따로 받아요”…외식 물가 인상 임박, 정부 예의주시
- “아픈 남편 먹이려”…단팥빵 훔치다 붙잡힌 80대 할머니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