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한 번 못해 본 사원인데 위치가 기가 막힙니다

백종인 2026. 5. 1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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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여행기 ②] 고대 로마의 숨결이 서린 볼루빌리스, 푸른색의 마을 셰프샤우엔을 걷다

지난 4월 2일부터 16일까지 15일 동안 모로코를 방문했습니다. <기자말>

[백종인 기자]

▲ 셰프샤우엔 골목에 있는 200년된 올리브 나무 셰프샤우엔 골목을 헤매다 보면 갑자기 확 트인 광장이 나오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처럼 보였던 곳이 다른 골목으로 이어지면서 200년 된 올리브 나무 아래 공예품을 팔고 있는 좌판이 나오기도 한다
ⓒ 백종인
메크네스의 아침은 새벽 5시 30분, 인근 모스크 스피커에서 나오는 기도 소리로 시작됐다. 아마 모로코에 있는 동안 아침마다 듣게 될 소리로 알람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아드(모로코 전통 가옥)의 침대는 크고 편안했으나, 강렬한 햇빛에 바짝 마른 이불깃은 풀을 먹인 듯 뻣뻣한 게 낯설면서도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며 정겹게 다가왔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고대 로마 문명

출근하듯 오전 8시 반에 모여 차를 타고 메크네스에서 20분 거리의 고대 로마 문명을 만나러 갔다. 아프리카에서 로마 문명이라? 호기심을 갖고 도착한 곳은 서기 44년,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모리타니를 합병하면서 로마 제국의 최서남단 거점 도시로 번성했던 볼루빌리스(Volubilis)였다.
▲ 볼루빌리스의 로마 유적 서기 44년,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모리타니를 합병하면서 로마 제국의 최서남단 거점 도시로 번성했던 볼루빌리스에는 한때 2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대도시였다
ⓒ 백종인
볼루빌리스는 로마가 침략하기 전까지 원주민인 아마지그(Amazigh)족이 세운 도시로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 덕에 대규모 농경 지대였다. 이곳을 점령한 고대 로마가 올리브유를 생산해 로마로 수출하면서, 볼루빌리스는 한때 2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대도시로 발전했다.
유적지 곳곳에서 발견되는 올리브 압착기와 저장 창고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올리브유 무역으로 부를 쌓은 로마인들은 본국 못지않은 풍요를 누렸다고 한다.
▲ 저택의 바닥 모자이크 저택의 바닥에는 '헤라클레스의 고난', '디오니소스' 등 신화 속 장면을 정교하게 묘사한 바닥 모자이크가 그대로 남아 있다
ⓒ 백종인
현재 남아 있는 유적들이 그 번영을 보여주는데, 저택의 바닥에는 '헤라클레스의 고난', '디오니소스' 등 신화 속 장면을 정교하게 묘사한 바닥 모자이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법정이나 공공 회의장으로 사용된 바실리카 등의 거대한 건축물 잔해도 일부 보였다.
특히, 사교의 장이기도 했던 공중목욕탕 유적을 보면서 그 시대 귀족 생활의 사치를 실감했다. 이 밖에도 로마의 상징인 수로 시스템이 이곳에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 카라칼라 개선문 서기 217년경 로마 황제 카라칼라가 이곳 주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고 세금을 면제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건립되었다
ⓒ 백종인
볼루빌리스에서 단연 눈길을 끈 유적은 카라칼라 개선문이었다. 서기 217년경 로마 황제 카라칼라가 이곳 주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고 세금을 면제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건립되었다는 개선문은 형태가 온전히 보존되었을 뿐 아니라 마차가 다니던 길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볼루빌리스 유적은 18세기 지진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으나, 1930년대에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며,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푸른색의 도시, 셰프샤우엔

푸른색의 도시로 알려진 셰프샤우엔(Chefchaouen)은 볼루빌리스에서 자동차로 3시간 이상 북쪽으로 가야 했다. 광활한 평원과 올리브 숲을 뒤로하고 리프(Rif) 산맥을 휘도는 산길로 들어섰다. 차창 밖으로 양 떼를 몰거나 산등성이의 올리브 숲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간혹 보였다. 멀리 산기슭에 자리 잡은 푸른색의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고, 길가에는 우리를 환영하는 건지 호객하는 건지 구별이 잘 안 되는 꽃으로 장식한 밀짚모자를 쓴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셰프샤우엔은 1471년 포르투갈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건설된 리프 산맥 아래의 요새 도시다. 아마지그족의 언어인 타마지크어로 '뿔을 보라'는 뜻답게 험준한 산봉우리 안에 숨겨진 도시였다. 이후, 스페인에서 추방 당한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오면서 안달루시아 스타일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문화를 이루게 되었고, 20세기 들어 여러 가지 이유로 푸른색을 칠하기 시작하여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곳이다.
▲ 푸른색으로 칠한 셰프샤우엔 골목 처음 마주한 푸른색의 도시는 생각만큼 상큼하지 않았다. 집의 벽면만이 아니라 길바닥까지 모든 푸른색이었으나 페인트칠은 여기저기 벗겨져 있어 오히려 다소 지저분하다는 느낌이다
ⓒ 백종인
기대가 컸던 탓일까. 처음 마주한 푸른색의 도시는 생각만큼 상큼하지 않았다. 집의 벽면만이 아니라 길바닥까지 모든 푸른색이었으나 페인트칠은 여기저기 벗겨져 있어 오히려 다소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푸른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햇빛의 각도에 따라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고 알록달록한 화분들과 화려한 무늬의 모로코 타일(Zellij)이 대비를 이루어 독특한 느낌을 선사하여 왜 사람들이 셰프샤우엔을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았다.

도시가 푸른색으로 칠해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930년대에 이곳으로 온 유대인들이 하늘과 천국을 상징하는 푸른색으로 집을 칠하며 신을 기억하려 했다는 설이 있고, 푸른색이 모기를 쫓는 효과가 있다거나,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에서 집안을 시원하게 유지해 준다는 믿음도 있다. 그러나 현지 해설가에 따르면, 1960년대 경제권을 쥐고 있던 유대인의 집단 이주로 도시가 경제위기에 빠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적 상징을 통하여 결속력을 다지고자 푸른색을 칠하기 시작했고, 푸른색이 세간의 시선을 끌면서 관광 마케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특히, 2016년 중국과 무비자 협정을 맺음으로써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푸른 마을"이라는 팬덤까지 생겼단다. 그래서인지 눈에 보이는 아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인이었고, 장사꾼들은 우리에게도 "니하"라는 정체불명의 호칭까지 써 가며 호객 하곤 했다.
▲ 스페인 모스크 1920년대 스페인이 점령했을 때 지어졌으나 현지 아마지그인들은 침략자들이 세운 사원을 거부했고, 따라서 단 한 번도 기도를 드린 적이 없는 겉모습만 남은 사원이다
ⓒ 백종인
셰프샤우엔은 지브롤터 해협(Strait of Gibraltar)을 마주 보고 있는 탕헤르(Tangier)에서 리프 산맥 안으로 숨어들었음에도 스페인의 영향이 큰 곳이어서 스페인어가 어느 정도 통하고, 리프 산맥 언저리의 언덕에는 스페인 모스크(Spanish Mosque)가 있다.
이 모스크는 1920년대 스페인이 점령했을 때 지어졌으나 현지 아마지그인들은 침략자들이 세운 사원을 거부했고, 따라서 단 한 번도 기도를 드린 적이 없는 겉모습만 남은 사원이 되고 말았다. 버려졌던 사원은 셰프샤우엔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조망 덕분에 다시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고, 현재는 해 질 녘 붉게 물든 푸른 마을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소가 되었다.
▲ 셰프샤우엔의 젖줄, 라스 엘 마 리프 산맥의 석회암 암반 사이에서 솟아 나오는 샘물은 경사를 따라 마을 곳곳으로 흘러 내려가는 셰프샤우엔의 젖줄이다
ⓒ 백종인
험준한 지형에도 셰프샤우엔이 마을로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풍부한 천연 수자원 덕분이었다. 우리의 안내를 맡은 지역 해설가는 마을 북동쪽 끝에 있는 '라스 엘 마(Ras el-Maa)'라는 작은 폭포에서 설명을 시작했는데, 리프 산맥의 석회암 암반 사이에서 솟아 나오는 샘물이 경사를 따라 마을 곳곳으로 흘러 내려가는 셰프샤우엔의 젖줄이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정교한 수로를 통해, 지금은 인근에 건설된 댐과 정수시설을 통하여 물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폭포 근처에서는 차가운 물에 오렌지를 담가 식혀두고 과일과 주스를 팔고 있었다.

골목 골목을 헤매며 빠져든 매력

폭포를 지나 북동쪽 문을 통해 메디나 안으로 들어가면 셰프샤우엔의 진정한 모습이 나오기 시작한다. 셰프샤우엔의 메디나는 좁은 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을 뿐 아니라 산기슭이라는 지형 덕에 계단 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푸른색 좁은 골목 양옆의 벽면은 모자, 가방 장신구 등 각종 기념품이 널려 있었고 이들 기념품은 벽면도 모자라 그 사이 공중에도 매달려 있는 것이 잡화 전시장에라도 온 것 같았다. 골목을 헤매다 보면 갑자기 확 트인 광장이 나오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처럼 보였던 곳이 다른 골목으로 이어지면서 200년 된 올리브 나무 아래 공예품을 팔고 있는 좌판이 나오기도 하였다.

셰프샤우엔 메디나의 중심에는 카페와 식당들이 즐비한 '우타 엘 함맘 광장(Plaza Uta el-Hammam)'이 있는데, 이곳에 있는 카스바와 모스크는 멀리서도 눈에 띄어 우리에게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 우타 엘 함맘 광장 셰프샤우엔 메디나의 중심에는 카페와 식당들이 즐비한 우타 엘 함맘 광장이 있다
ⓒ 백종인
셰프샤우엔에 이틀간 머물면서 우리도 서서히 셰프샤우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셰프샤우엔은 유명 관광 도시치고는 놓쳐서는 안 될 문명이나 고대 도시의 흔적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더 편안하게 골목 골목을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면서 헤매고 기웃거리며 그곳의 삶을 엿보기 좋았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장사를 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관광객이었으나, 페인트칠을 다시 하려고 좁은 길목 안에서 조심스레 페인트를 벗겨내는 사람과 히잡을 쓰고 길을 지나가는 여자들도 보였다. 특히, 히잡을 쓰고 광장에 모여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색적인 푸른 도시 안에서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일상과 조용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덧붙이는 글 | 아프리카 대륙 북서쪽, 대서양과 지중해를 끼고 있는 모로코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까? 카사블랑카라는 도시가 있는 나라, 축구가 좀 강한 나라,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 사는 나라, 영화 <글래디에이터>, <왕좌의 게임> 등 고대 로마 시대부터 <스타워즈>, <인터스텔라> 등 외계 행성까지 품을 수 있는 특이하고 다양한 자연 환경 덕에 수많은 영화가 촬영된 나라. 모로코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나라이다. 15일 동안 모로코 곳곳을 찾아다녔다. 페스와 마라케시 등의 고대 도시부터 사하라 사막. 고도 4000m가 넘는 아틀라스 산맥 기슭의 마을까지 다니며 그들의 독특한 문화와 삶의 지혜를 보고 듣고 배웠다. 이렇게 습득한 모로코의 면면을 앞으로 6회에 걸쳐 정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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