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에 서학개미 해외투자 90% 급감…국민연금은 75% 증가

중동전쟁으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넘나들던 3월 이른바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투자가 연초 대비 90% 가까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환율이 장기화되자 개인 투자자들이 빠르게 물러선 것이다. 반면 국민연금으로 볼 수 있는 일반정부의 해외주식 투자는 같은 기간 75% 늘었다. 환율 수급에 미치는 영향력도 국민연금 쪽으로 더 크게 기운 셈이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비금융기업 등의 해외주식 투자는 6억3720만달러로 집계됐다. 한 달 전보다 80% 넘게 줄었고, 1월과 비교하면 감소폭은 90%에 육박했다. 비금융기업 등의 해외주식 투자는 1월 57억1020만 달러에서 2월 35억6510만 달러로 감소해 왔다. 국제수지 통계상 비금융기업 등은 통상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 이른바 서학개미 자금으로 해석된다.
반면 일반정부의 해외주식 투자는 3월 28억433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일반정부의 해외주식 투자는 1월 16억1830만 달러에서 2월 42억7480만 달러로 증가했다가 3월 소폭 줄었다. 그럼에도 서학개미 투자액과 비교하면 4.5배에 달했다. 일반정부는 국민연금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고환율 국면에서 개인의 해외주식 투자 수요는 위축된 반면, 연기금성 해외투자는 상대적으로 유지된 것이다.
해외주식 투자 주체별 달러 수요가 엇갈린 배경에는 환율 부담이 있다. 환율이 오르면 같은 미국 주식을 사더라도 원화 기준 매입 부담이 커진다. 미국 증시 수익률에 대한 기대가 있더라도 고환율이 이어지면 개인 투자자는 신규 투자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국민연금성 해외투자는 중장기 자산배분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성격이 강해 단기 환율 수준만 보고 투자 규모를 급격히 줄이기 어렵다.
그동안 외환당국 등은 국민연금의 해외투자가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여러 차례 내놨다. 국민연금이 해외주식 투자를 이어가려면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 국민연금의 자산별 목표비중은 국내주식 14.9%, 해외주식 37.2%, 국내채권 24.9%, 해외채권 8.0%, 대체투자 15.0%였다. 해외주식 비중이 여전히 가장 큰 만큼 외환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속도와 외화 조달 방식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조정으로 해외투자 확대 규모가 줄고, 그만큼 외환시장의 달러 수요 부담도 완화될 것으로 전망해왔다. 다만 실제 흐름을 보면 자산배분 계획 조정이 단기간에 외환시장 수급 부담 완화로 곧바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2월 일반정부의 해외주식 투자가 크게 늘었고, 3월에도 개인 투자자보다 훨씬 큰 규모의 해외주식 투자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서학개미의 달러 수요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연기금성 자금의 존재감은 오히려 더 뚜렷해졌다.
최근 환율 환경은 3월과는 달라졌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지난 8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7.7원 오른 1471.70원으로 마감했다. 중동전쟁 재부각으로 하루 만에 상승 전환했지만 3월처럼 1500원선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던 국면에서는 다소 내려온 상태다. 달러인덱스도 5월 8일 기준 97.90으로 3월 환율 급등 국면과는 온도 차가 있다.
코스피가 최근 사상 처음 7000선을 돌파한 점도 환율 수급의 새 변수다. 지난 6일 코스피는 7384.56에 마감하며 7000선을 넘어섰고, 같은 날 원·달러 환율은 1455.1원으로 내려갔다. 국내 증시가 강한 상승세를 이어가면 그동안 미국 주식으로 향하던 개인 투자자금 일부가 국내 증시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투자에 따른 달러 수요는 더 줄어들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고환율과 국내 증시 활황이 맞물리면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투자 수요는 더 감소할 수 있다”며 “반면 국민연금성 해외투자는 자산배분 전략상 일정 규모가 유지될 가능성이 커 환율 수급에 미치는 영향도 상대적으로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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