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설계한 안심 거처, 사고 터지니 '핑퐁' 답변뿐"
[류승연 기자]
|
|
| ▲ 지난 3월 누수가 발생한 뒤 방치돼 곰팡이가 번진 녹색친구들 삼송 주택 모습. |
사회주택은 공공의 토지·재원과 민간의 운영이 합쳐진 '토지임대부' 방식 임대주택이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가 운용하는 주택도시기금과 LH, SH(서울주택도시공사) 등이 공동 출자해 리츠(부동산 공동 투자) 형태로 택지를 사들인 후 이를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에 빌려주면 해당 사업자가 건물을 짓고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임대주택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공공의 설계'는 청년들에게 독이 됐다. HUG는 집값 대비 부채 비율을 따져 보험 가입을 승인하는데, 집값 산정 시 '땅값'이 제외되다 보니 건물 가격만으로는 부채 비율이 급격히 치솟아 가입 기준을 넘기기 때문이다. 어렵게 모집 절차를 뚫고 사회주택 운영사인 녹색친구들과 계약서를 쓰러간 자리에서 이 사실을 처음 접한 신씨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이름을 믿었다.
"공공기관이 땅을 빌려주고, 업체도 공모로 정했다는데 설마 문제 있겠어?"
그 믿음이 좌절로 돌아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운영사 '녹색친구들'은 지난 4월 초 돌연 사무실 문을 닫고 잠적했다. 오는 9월 계약 만료를 앞둔 신 씨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이미 계약이 끝난 다른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건물에 갇힌 처지다.
피해는 돈에만 그치지 않았다. 3월부터 시작된 누수가 방치되면서 피어난 곰팡이들은 어느 새 방 곳곳을 뒤덮었고 운영사가 대금을 미납하면서 소방 안전시설, 청소, 엘리베이터 관리업체들까지 줄줄이 발길을 끊었다. 청년들의 안심 거처였던 사회주택이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무방비 지대'로 전락한 것이다.
그중 신 씨를 가장 화나게 한 건 믿었던 '공공'의 태도였다. 실질적인 '땅 주인'인 HUG는 세입자들이 보증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선을 그었고 LH나 SH는 이미 잠적한 운영사에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신씨는 9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피해 사실을 알고 다른 세입자들과 함께 HUG, LH, SH부터 서울시, 경기도, 대통령실까지 민원을 안 넣어본 곳이 없다"며 "각 기관이 업무를 돌리며 '핑퐁'을 하다 겨우 온 답변이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며 허탈한 심경을 전했다. 결국 참다못한 세입자들은 이번주 두 차례나 HUG와 국회 등에 시위 트럭을 보내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다음은 신씨와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전세 사기 피해 피하려다 '공공'에 발목 잡힌 2030 세입자들
- 본격적으로 구제를 호소하고 나섰다고 들었다. 최근 트럭시위 외에 무엇을 하고 있나?
"이번주 녹색친구들이 운영하던 5개 지점 세입자들이 다 모여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녹색친구들이 운영한 주택이 총 13곳인데, 그중 몇 곳은 사회적주택으로 땅과 건물 모두 공공 소유라 운영사가 잠적해도 큰 문제가 없다. 또 SH가 단독으로 리츠에 참여했던 지점들은 대위변제를 해주기로 해, 해결이 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주택은 서울시가 아닌 고양시 삼송점이라,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나머지 4곳 중 2곳은 SH가 단독으로 참여한 지점이고 또다른 2곳은 SH와 허그가 공동으로 참여한 지점으로 알고 있다. 모두 단톡방에 모여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 총 몇 세대인가?
|
|
| ▲ 지난 2020년 LH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녹색친구들 삼송'의 입주자 모집 공고 |
"재작년 3~4월 무렵 공고를 보고 처음 알게 됐다. 직전까지 살던 집이 원룸이었는데 계약이 끝나 그 해 6월에 이미 나가야 했다. 그런데 집주인에게 이야기를 하니 전세금을 못 주겠다고 했다. 정말 오랫동안 시달렸다. 집주인과도 많이 싸웠다. 그 과정이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전세 계약은 더이상 안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사회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사회주택을 선택한 건 딱 하나, 공공이 하는 사업이라고 해서다. 버젓이 LH 홈페이지에 공고문이 올라와 있기에 '보증됐다'고 믿었다."
- 토지임대부 주택은 보증보험 가입이 어렵다고 들었다. 계약 무렵에도 알고 있었나?
"계약서를 쓰러 가서 처음 들었다. 녹색친구들은 땅 주인과 건물주가 달라서 제도적으로 안 된다라는 설명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안 들어가겠다'고 답했어야 했다. 하지만 공모 사업이라 막연히 안심했던 것 같다. 그때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보험이 대수인가' 싶기도 했고.
나중에 찾아보니 보증보험 가입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다른 사회주택 중에 보증보험을 가입한 곳이 있었다. 다만 제도적으로 불리한 구조인 건 사실이다. HUG가 집값 대비 부채 비율을 보고 보증 보험을 허가해주기 때문이다. 실제 내가 들어올 때도 이 주택에는 근저당이 9~10억 원 정도 설정돼 있었다."
- 언제부터 전세금을 못 돌려받을지 모른다고 판단했나?
"지난 3월부터다. 내가 사는 주택 건물 전체에 누수가 생겼다. 건물 전체에서 물이 샜다. 세입자들과 녹색친구들 책임자 등이 모두 포함된 단톡방에서 항의가 쏟아졌다. 약 10일 만에 녹색친구들이 주된 누수는 해결해줬다. 문제는 그 무렵부터, 녹색친구들과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세입자는 집안에 생긴 누수를 해결해달라고 한 달 내내 호소했는데도 관리자에게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 집 전체에 곰팡이가 번졌다. 의아했던 건 원래 월말이 되면 월세와 관리비를 내라고 문자가 오는데, 이상하게 관리비를 내라는 문자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때부터 불안이 커지면서 4월에 녹색친구들의 감사보고서를 뗐다. 2024년 12월 기준으로 작성된 내용이었는데도 이미 부채가 240억 원이 넘어 있었다. 건물을 다 팔아도 자산이 -82억 원인 것을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도 녹색친구들은 2026년까지 세입자를 모집했다. 삼송 주택에는 3월에 새로 들어온 세입자도 있다."
부채만 240억 '자본잠식' 상태... 그런데도 새 세입자가 들어왔다
- 그 후에 어떻게 했나?
"다들 문제를 직시하기 시작했다. 단톡방에 있던 세입자 한 명이 본사 건물이 비워졌다고 사진을 찍어 올려 나도 감사보고서 내용을 공유했다. 그때부터 공동대응을 했다. 처음에는 관리 업체들에 전화를 돌려봤다. 소방 관리 업체, 엘리베이터, 청소 업체 등이다. 그런데 세 곳 모두 녹색친구들로부터 돈을 못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소방, 엘리베이터 업체는 체납된 지 9~10개월이 지났다고 했다.
원래 각 주택에는 소방 안전관리자가 선임돼야 하는데, 업체가 기다리다 못해 지난 4월 말부터 발길을 끊었다. 지금 주택에 소방 안전 관리자가 없다. 청소 업체는 애초에 지난해 4월 이후부터는 녹색친구들을 독촉해야 한두 달 돈을 정산받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독촉하지 않고는 정산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4월부터 청소 업체 역시 발길을 끊었다."
- 민원도 다수 넣었다고 들었다.
|
|
| ▲ LH가 보증금 미반환 피해를 입은 녹색친구들 세입자들에 답변한 내용. |
|
|
| ▲ HUG가 보증금 미반환 피해를 입은 녹색친구들 세입자들에 답변한 내용. |
"결국 본인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국토부로 민원을 넣으면 LH로, LH는 다시 HUG로 민원을 '핑퐁'했다. HUG는 보증보험 미가입을 이유로 소관이 아니라고 했고, LH는 2022년 이후 운영권이 넘어갔으니 답변이 어렵다며 '전세사기 피해 상담을 받아보라'고 친절하게 안내하더라. 국가를 믿고 들어온 청년들에게 사기 피해자가 됐으니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꼴이다. 그것도 정말 어렵게 답변을 받았다."
- 피해를 입은 세입자 중 전세사기 피해자를 신청한 사람도 있나?
"잘 모르겠다. 다만 이번 주 회의에서 사고가 터진 지 2~3개월이 지난 세입자들이 참석했는데 사회주택의 특성상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보였다. 또 조만간 계약 기간이 끝나는 세입자 수도 적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오는 8월~10월 사이에 6~7명이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다."
- 바라는 게 있다면?
"공공의 역할을 다한다면, 허그가 녹색 친구들의 건물을 매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주택의 문제가 땅과 건물 주인이 달라 생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SH에서 매입한 사례도 있다. 그게 안 된다면 허그에서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먼저 돌려주고 녹색친구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을 요구하고 싶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혐중' 할퀸 대림동...투표 앞 둔 이들과 동포 출신 국힘 후보의 바람
- "정청래가 서울시장 출마?" 오해 산 현수막, 정원오 이름 없는 이유는?
- 젊은 층 대거 유입된 신도시에 우뚝 솟은 인물
-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30구 넘는 시신을 해부하며 남긴 기록
- 친구 만나면 혼자 떠드는 사람, '이것' 때문입니다
- 날아오는 수많은 '글' 주먹, 이렇게 피했다
- 백제 시대 변기 보고 '빵' 터진 이유, 보시면 압니다
- [현장] 서면 들썩인 개소식… 전재수 "30년 부산 침체 끝내고 해양수도 완성할 것"
- 장동혁에 "꼬라지 좋다"고 했던 상인, 김부겸엔 "대구경제 살려달라"
- 일 언론 "다카이치, 19일 안동서 한일 정상회담 조율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