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시대 변기 보고 '빵' 터진 이유, 보시면 압니다
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여행 작가입니다. '거룩한 장도, 한국 호랑이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룹니다. <기자말>
[정재학 기자]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것은 단순히 말을 적고 서로 소통하는 도구만이 아니라 기억과 문명을 시간과 공간 너머로 확장시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우리도 한자의 도입으로 일찍이 역사 기록을 했다고 하지만, 불행히 전해진 바가 없고 현재까지 삼국사기가 그 시초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삼국사기 등 이 시기 역사서에서 호랑이 관련 기록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기록이 모두 관점이 달라 신기했다. 고구려는 북방 수렵 문화의 반영으로 전사의 상징이나 왕권과 군사의 비유로 인용되는 사례가 많았던 반면, 신라의 경우 기록의 횟수나 내용 면에서 방대하기도 하고 비교적 호환이나 국가 재난 등 사실적인 측면이 강했다. 그에 비해 백제의 기록을 살펴본 결과 호랑이를 대부분 암시적 표현으로 언급하고 있는 듯 했다.
몇 가지 기록을 보면, 온조왕 13년에 "다섯 마리 호랑이가 성 안으로 들어왔다"라 하고 동성왕 23년에는 "남산에 호랑이 2마리(가) 성에 들어왔다"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호랑이는 실제 맹수 호랑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분란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읽힌다. 백제의 호랑이 관련 유물들은 어떤 것들이 남아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3일과 6일에 충남 공주로 탐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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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산리 6호분 벽돌로 쌓은 중국 남조 양식의 무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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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산리 6호분 백호 벽화 지금은 윤곽선만 남아 있고 세부를 자세히 알 수는 없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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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령왕릉 신수문경 방격규구신수문경으로 왕의 다리 왼쪽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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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수문경 호랑이 두 앞발로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듯한 모습이 흥미롭다. |
| ⓒ 정재학 |
다른 것들은 다 차치하고 동물들에 주목해 보자. 고구려 고분벽화 씨름도에 나온 듯한 상투 틀고 삼각 속옷을 입은 창을 들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호랑이, 사슴, 개, 신령한 서수 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도는 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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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식진 묘지석과 덮개 그는 의자왕 시절 나당연합군에 투항해 당에서 고관까지 오르고 죽은 백제장군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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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지석 호랑이 무서운 맹수의 모습도 권위적이거나 위압적인 모습도 아니다. |
| ⓒ 정재학 |
백제의 호랑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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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산리사지 전경 성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능사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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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대향로 출토 공방지 백제 멸망 시절에 급히 이곳에 숨긴 것으로 보인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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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산리 동하총 무덤 묘실 안에 사신도 벽화가 남아 있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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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하총 내부 백호 모습 고구려의 것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우아한 자태 |
| ⓒ 정재학 |
잠시 군수리사지를 둘러본 뒤, 국립부여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백제금동대향로 앞에 섰다. 최근 신축한 백제대향로관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사실 첫 번째 방문은 일요일이었는데 밀려 드는 인파로 도저히 관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관람객이 드문 평일 시간을 내서 다시 방문했다. 그제야 조금 여유롭게 관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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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대향로 궁사와 호랑이 말에서 몸을 뒤로 돌려 활을 쏘는 소위 파르티아식 활쏘는 궁사와 사선에 위치한 호랑이가 대치하고 모습이 인상적이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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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대향로의 호랑이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이 흥미롭다. |
| ⓒ 정재학 |
예사롭지 않은 '호자'의 모습
하지만 주인공은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법이 아닌가. 백제 호랑이는 단연 '호자'다. 호자는 호랑이 형상을 본뜬 휴대용 남성 소변기다. 궁남지 근처 군수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귀족층의 생활용품 혹은 장례용기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중국 청자 호자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토기로 만든 이 호자의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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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자 궁남지 근처 군수리에서 출토되었다.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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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자 눈두덩이 손으로 대충 눌러 만든 눈두덩이 |
| ⓒ 정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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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자 손잡이 조각칼로 예리하게 도려내 엣지 있는 모습이 인상깊다. |
| ⓒ 정재학 |
무덤은 죽음을 위한 공간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강렬한 삶의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그 실물 속에서 호랑이는 백제인의 미 의식을 품고 있었다. 결국 백제 무덤 속 호랑이는 맹수의 형상이 아니라, 인간이 끝내 잊고 싶지 않았던 세계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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