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가 품은 365개 섬, 진면목 보려면 꼭 들러야 합니다

정병진 2026. 5. 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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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마녀목 전설부터 청석포 천연 돌침대·사람길까지… 섬에서 만난 느린 삶의 풍경

[정병진 기자]

▲ 개도 지도 선착장에 설치된 개도 종합관광 안내판
ⓒ 정병진
지난 5일, 전남 여수 '개도'를 다녀왔습니다. 여수에 산 지 25년이 되었지만 개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여수에는 섬이 365개나 있습니다. 유인도 45개와 무인도 320개를 합친 숫자입니다. 제가 지금껏 가본 여수의 섬이 얼마나 될까 헤아려 보니 고작 스무 곳 남짓이었습니다. 앞으로 유인도만이라도 모두 둘러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수를 여행했다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여수의 진면목을 보려면 꼭 섬을 둘러봐야 합니다."

섬을 보지 않고 돌아간 여수 여행은 여수의 가장 깊은 아름다움을 놓친 여행이라는 게 저의 소견입니다.

현재 개도는 연륙교가 없는 여수 섬 가운데 금오도 다음으로 큰 섬입니다. 면적은 9.495㎢, 인구는 약 400명 남짓입니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한때는 인구가 5천 명 가까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큰 섬이었고 멸치와 전복 양식 등으로 제법 잘 살았던 곳입니다.

이 섬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습니다. 주민 한 분은 예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면사무소와 중학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당시 주민들은 "면사무소보다 아이들 학교가 더 중요하다"며 중학교를 택했다고 합니다. 섬 주민들이 교육을 얼마나 중시하였는지 알려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말을 기다리던 소녀"… 500년 마녀목 전설

개도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왼쪽으로 1㎞ 정도 가면 화산마을이 나옵니다.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 부행사장 뒤편 마을입니다. 마을 입구에는 수령 500년의 거대한 느티나무와 '화계정'이라는 정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느티나무 앞에는 '마녀목 전설'을 소개한 그림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 마녀목 '마녀목'으로 불리는 느티나무 고목 전설을 들려주는 마을 어르신
ⓒ 정병진
처음에는 '마녀목'이라는 이름 때문에 서양의 마녀를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느티나무 고목을 촬영하던 중에 정자에 앉아 있던 어르신 한 분이 다가왔습니다.

그분은 "어릴 때는 이런 전설이 있는 줄 몰랐는데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됐다"며 '마녀목 전설'을 들려주셨습니다.

원나라가 침략하던 시절, 개도에서도 전쟁에 사용할 말을 길렀다고 합니다. 당시 한 소녀가 점박이 말을 정성껏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원나라 장수가 섬에 들어와 하필 그 말을 데려갔다고 합니다. 소녀는 큰 충격을 받아 병이 들었고, 그러던 어느 날 피를 흘리는 점박이 말이 다시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전쟁터에서 상처를 입고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병든 소녀는 결국 세상을 떠났고 말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습니다. 주민들은 두 존재를 함께 묻고 그 자리에 느티나무를 심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마녀목'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마녀'는 '말을 기르던 소녀'를 뜻한다고 했습니다.

세월 속에서 마녀목은 새끼 나무를 퍼뜨렸습니다. 주변에 서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는 어르신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아주 작은 나무였는데, 7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제법 큰 나무로 자라 있었습니다.

청석포의 천연 돌침대와 이름도 재밌는 '딴섬'

개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아마 '청석포'일 것입니다. 돌빛이 푸른빛을 띤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청석포에 도착하니 몽돌해변이 펼쳐졌습니다. 휴일이었지만 사람은 거의 없고 등산객 몇 명만 지나갈 뿐이라 무척 한적했습니다.
▲ 청석포 청석포 몽돌해변과 그 부근의 편편한 바위
ⓒ 정병진
▲ 층계처럼 돼 있는 바위 편편하게 층계처럼 돼 있는 바위. 옛날에 구들장으로 쓰려고 바위를 잘라내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젊은이들이 캠핑장으로 즐겨 찾는다.
ⓒ 정병진
처음 갔을 때는 정작 유명한 편편한 바위를 보지 못했습니다. 몽돌해변만 둘러본 채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화산마을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중 주인장이 "데크길 쪽으로 조금 더 가야 '천연 돌침대'라 불리는 청금석 바위를 볼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다시 청석포로 향했습니다.
데크길 끝에서 본 바위는 무척 신기했습니다. 마치 두부를 자른 듯 편편한 바위들이 층층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젊은이들이 이곳을 캠핑 장소로 쓰고자 많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 딴섬과 바깥 딴섬 월항마을 가는 길에 보이는 딴섬과 바깥 딴섬
ⓒ 정병진
청석포를 나와 월항마을로 향하던 중, 바다 가운데 기이한 모양의 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차를 잠시 세우고 지도를 보니 이름이 '딴섬'과 '바깥딴섬'이었습니다. 개도와 아주 가까이 있지만 "같은 섬이 아니라 다른 섬"이라 하여 '딴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떨어진 섬은 '바깥 딴섬'이 된 셈입니다. 이름이 참 정겹고 재미있었습니다.
▲ 돌담길 월항마을의 돌담길
ⓒ 정병진
월항마을에 도착해 마을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섬마을답게 돌을 층층이 쌓아 만든 돌담이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마을 가장 높은 곳쯤 올라갔을 때 집 두 채가 나란히 보였습니다. 밭에서 김을 매던 할머니께 말을 건넸더니, 자신은 원래 다른 곳에 살다가 아들을 따라 얼마 전 이곳으로 들어와 아직 동네 사정을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드님은 퇴직한 뒤 개도가 너무 좋아 집을 짓고 들어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옆집에는 그 아들의 친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경남에 살았는데 도시 생활이 싫어 이곳에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왜 여러 섬을 둘러본 끝에 이곳을 택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 월항마을 앞바다 월항마을 맨 위쪽에 위치한 A씨 집에서 바라본 전망
ⓒ 정병진
그는 도시 아파트에서는 기타를 조금 치고 노래만 불러도 소음 민원이 들어오지만, 여기서는 아무 눈치 볼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책 읽고 노래하며 사는 삶이 자신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섬이라 하면 불편하다고만 생각하지만, 조용하고 여유롭게 살기엔 섬만 한 곳이 없습니다."

그는 요즘 집 앞 작은 정원을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정원을 가꾼다고 하자, 모전마을에 꼭 가봐야 할 정원이 있다며 직접 안내해 주었습니다.
▲ B씨의 개인 정원 모전마을 B씨의 개인 정원과 마을과 바다 풍경
ⓒ 정병진
모전마을에는 약 400~500평 규모의 정원을 혼자 가꾸는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분은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정원 가꾸는 낙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장미만 해도 40여 종이 넘었고, 돌로 구획을 나눠 여러 꽃과 나무를 정갈하게 심어두었습니다.

주인장이 건네준 커피를 마시며 정원을 바라보는데 마치 멋진 펜션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다와 정원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그 넓은 정원에 잡초 하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얼마나 부지런히 손질했는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호령마을이었습니다. 마을 끝 쪽 데크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사람길'이라는 오솔길이 이어집니다. 약 1㎞ 정도 걷다 보면 중간중간 바다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계단도 나타납니다.
▲ 작약밭 호령마을에서 시작하는 '사람길'을 걷다가 만난 숲속의 작약밭
ⓒ 정병진
걷는 도중 왼쪽 숲속에 작약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가 일부러 가꾼 흔적도 없는데 숲속에 작약밭이 펼쳐져 놀라웠습니다.
▲ 사람길에서 보이는 여 사람길 전망 데크에서 보이는 여(바다 위로 삐죽 솟은 바위)
ⓒ 정병진
조금 더 걸어가자 망원경이 설치된 전망 데크가 나왔습니다. 그곳에서는 작은 여가 보였고 멀리 고흥 나로우주센터 방향까지 시야가 트여 있었습니다.

사람길은 더 이어졌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가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계속 걸으면 개도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을 듯했습니다.

개도를 처음 둘러보았는데 아직 오염되지 않은 정겨운 섬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여석마을 돌벅수와 모전마을 몽돌해변을 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다음에 다시 가서 봐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겨자씨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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