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층 대거 유입된 신도시에 우뚝 솟은 인물
[김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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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도청신도시 경북도청 앞 천년숲광장에 있는 박정희 동상. |
| ⓒ 김대홍 |
거대 통치자상을 논하자면 과거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나 소련의 레닌과 스탈린,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민주주의 국가나 시장이 발달한 선진 국가에선 거대 통치자 상이 인기가 없다. 시스템과 시장에 의해 굴러가기 때문에 거대 동상과 같은 권위주의 장치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 선진국에 진입했다. 그렇게 믿었다.
참석자 규모도, 동상 크기도 놀라워
경북도청신도시는 21세기 대한민국에 발맞춰 만들어졌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시대 흐름에 맞췄다. 경상북도에서도 가장 발전이 더딘 북부 쪽에 도청 부지를 정했다.
젊은 층이 대거 유입됐다. 길과 건물이 새로운 만큼이나 연령층 또한 젊었다. 전국에서 노령화가 가장 심한 경북에서 경북도청신도시의 등장은 새로운 돌파구처럼 보였다.
어느 날 넓은 광장에 우뚝 솟은 인물을 봤다.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었다. 직업은 대통령. 좌대를 장식하는 문구는 '오천년 가난을 물리친 대통령'이었다. 말이야 맞는 말이라 할 수 있지만 참 낯설었다. 'K-팝'으로 대표되는 문화국가, 'AI시대 선도국가', 세계에 손꼽히는 민주국가, 경제강국과 어울리는 이미지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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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일 오전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앞 천년숲에서 참석자들이 박정희 대통령 동상 제막을 지켜보고 있다. 2024.12.5 |
| ⓒ 연합뉴스 |
역대 통치자 동상 중 이 정도 규모는 없었다. 2010년 남악신도시에 세워진 김대중 동상이 좌대 2m, 몸체 4.3m로 꽤 컸다. 박정희 동상은 김대중 동상보다 2m 정도 더 높였다. 동상 크기에서 김대중을 넘어서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 기꺼이 무릎을 굽힌다. 아이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하고 싶은 어른들 또한 몸을 숙인다. 권위 대신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상대 눈높이에 몸을 맞춘다.
동상이 커질수록 관찰자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봐야 한다. 숭배를 강요하는 수직적 질서가 만들어진다. 평등한 시민 사회의 눈높이에 어울리지 않는다.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 하지만, 1등은 탐이 난다. 그래, '대한민국 통치자 동상 1등' 타이틀은 일단 이해하기로 하자.
크기보다 더 큰 문제는 메시지
크기보다 더 큰 문제는 동상을 통해서 던지는 메시지다. 김대중 동상 좌대에 쓰인 문구는 '행동하는 양심'이다.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내세운다. 예나 지금이나 반박할 수 없는 화두다. 요즘 같은 혼란기엔 더 크게 다가온다.
박정희 동상이 던지는 메시지는 '가난 극복'이다. 1960, 70년대 '가난 극복'은 시대 과제였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널리 쓰이던 시절이었다. 굶어죽었다는 말이 종종 뉴스에 등장했다.
경제 10대 강국을 논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난 극복'이라니. 구태의연하다. 지금 시대정신이 '가난 극복'일까 '민주주의' '인권' '평화' '다양성'일까.
경북도청신도시는 지역 균형 발전과 다양성이라는 시대 정신 아래서 만들어졌다. 방향은 미래다.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신도시에 과거 유령을 불러오는 격이다.
경북도청신도시엔 어린이들이 가득하다. 길거리 풍경을 보면 '여기가 대한민국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이 아이들은 밥보다 간식을 많이 먹고, 밥을 굶어도 걱정이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가난 극복'이라니.
더불어 역사와 교육장소로서도 부적절하다. 박정희는 공과가 뚜렷한 인물이다. 경제 발전과 가난 극복은 그의 치적이다. '독재' '인권 유린' '헌법 파괴'는 그의 과오다.
그의 공과 과를 균형 있게 배치했다면 동상은 훌륭한 교육 장소가 됐을 것이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고, 잘못을 통해서도 사람은 깨닫고 앞으로 나아간다. 잘못을 묻어버리면 잘못은 반복되고 오히려 더 커진다. 아쉽게도 동상 주변엔 경제를 살렸다는 치적만 가득하다.
'포항제철 창설' '새마을운동 전개' '산림녹화사업 추진' '경제개발5개년 계획 실시' '5.16혁명 주도' '한일기본조약 체결' '중화학공업화 추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설립' '국방과학연구소 설립' 등이 동상을 둘러쌌다. 한 인물의 일생을 다룬 현장이라기보다는 대통령에 출마한 공약 구호 같다. 그가 잘못했거나 비판받은 내용은 단 한 줄도 없다.
우리는 과거 역사에서 받아들일 점, 극복할 점을 동시에 배운다. 인물도 마찬가지다. 교육은 찬양이 아니라 판단과 수용이다. 치적만 나열한 동상은 교육이 아니라 찬양을 목적으로 한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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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전 참전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를 쓰다듬고 있는 미국인. |
| ⓒ UPI/연합뉴스 |
미국 워싱턴 D.C. '베트남 참전 용사 기념비'는 땅 아래로 파고 들어가는 형태다. 땅 아래로 파고 들어가 죽은 이들의 눈높이에서 슬픔을 나누게 만들었다.
평생 '나를 따르라'면서 진두지휘한 박정희의 동상을 땅 아래 세웠다면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추앙'이나 '찬양'이 아니라 '책임감 강하고 속 정 깊은 대통령 아저씨' 이미지가 한편에선 생기지 않았을까.
김해 봉하마을엔 동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시민들의 추모 문구가 새겨진 박석 1만 5천 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추앙'이나 '찬양'이 아닌 '추모'가 이뤄진다.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실물 크기 노무현 동상이 이웃처럼 다가온다.
경북도청신도시는 경북에서 가장 젊은 도시다. 젊은 층, 어린 층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정치 성향을 떠나서 그들에게 '가난 극복'이라는 메시지가 과연 어떻게 다가갈까. 5월 5일을 맞아 도청 앞 천년숲 광장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경북도청신도시 사람들이 다 모인 것처럼 북적거렸다.
천년숲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우뚝 선 게 박정희동상이다. 주위를 살펴봤다. 안타깝게도 박정희 동상에 다가가거나 치적 동판을 살펴보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었다. 동상을 세운 이들은 이 '위대한 인물'이 이렇게 홀대받고 외면받기를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박정희 동상을 봤다. 그가 바라보는 위치는 경북도청신도시 쪽이 아니라 반대다. 설치한 이들은 시민들이 사는 동네, 시민들의 삶이 아니라 도대체 어디를 보게 만들었을까.
경북도청 앞 광장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들어선 박정희 동상. 그 동상이 던지는 메시지가 경북도청신도시의 미래와 맞닿아 있는지 궁금하다. 이에 대해서 이 동상을 이 자리에 두게 한 이들이 답할 차례다.
※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색깔이 하나인 곳><심장이 없다><갈라진 일상><벌써 꺼진 성장>과 같은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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