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가 30구 넘는 시신을 해부하며 남긴 기록
[박홍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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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오나르도 다빈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1490년 |
| ⓒ 퍼블릭 도메인 |
다빈치는 이 그림을 제작하며 실제로 사람의 각 기관을 눈금자로 재가면서 측정한 결과를 글로 적어두었다. "자연이 낸 인체의 중심은 배꼽이다. 등을 대고 누워서 팔다리를 뻗은 다음 컴퍼스 중심을 배꼽에 맞추고 원을 돌리면 두 팔의 손가락 끝과 두 발의 발가락 끝이 원에 붙는다." 인간의 몸을 기하학에서 다루는 도형처럼, 수학을 이용해 계량화하여 묘사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유럽 중세는 기독교적 인간관이 지배했다. 육체는 동물과 다름없이 욕구에 좌우되는 껍데기에 불과하며, 인간의 본질은 신이 창조할 때 숨을 불어넣어 만들어 준 영혼에 있다는 사고방식이었다. 다빈치의 그림에서 보이는 인간관은 긴 중세의 터널 끝에서 시대의 변화를 알린 르네상스의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흔히 르네상스를 '인간과 자연의 재발견'이라고 한다. 신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성과 감정을 통한 자유의지 실현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그리스적 인간의 재발견이었다. 종교가 유포하는 신비적 세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감각으로 직접 관찰하고 과학적으로 규명한다는 점에서 자연의 재발견이었다.
르네상스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자연법칙을 찾아내고자 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인 다빈치는 미술가이자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작업 노트>에 "과학 없이 실천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키도 나침반도 없이 바다로 나가는 뱃사람과 같아서 어디로 가는지 결코 확신할 수 없다"라고 기록해 두었다.
기계공학자의 시각으로 해부학을 바라보기도 했다. 인체를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기계 장치로 보았고,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자 했다. 눈·코·귀·입 등 얼굴의 예민한 감각 기관은 물론이고 팔과 다리, 나아가서는 몸 안의 각종 장기가 정교한 기계 장치처럼 설계되고 작동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다빈치는 30구가 넘는 시신을 해부하며 인체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기록으로 남겼다. 당시는 교회에서 인체 해부를 엄격히 금지했기에 자칫 이단자로 끔찍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각 장기의 모양과 연결, 온몸에 퍼져 있는 근육·신경·힘줄 등을 샅샅이 살폈다. 마치 기계가 움직이는 원리처럼 신체의 각 기관이 구부러지고 회전하는 방식을 탐구했다.
근대에 접어들어 비약적으로 확대된 기계주의적 인간관은 어느 정도 르네상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빈치 시대에 맹아를 형성한, 기계적 작용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은 현대까지 이어졌다. 근대의 기계문명 아래에서 기계로서의 인간에 주목했다면, 현대에 와서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을 반영하면서 훨씬 고도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무엇인가?
특히 정보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인간과 기계를 가르는 마지막 보루였던 정신의 고유성을 흔들어버렸다. '알파고 충격'에서 시작하여 생성형 챗봇과 자동차 자율 주행을 거쳐 최근 로봇으로 이어지는 인공지능 발달은 기존의 기계화된 인간 이미지를 유치한 수준으로 밀어냈다. 과학기술 역사가 도나 해러웨이가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의 '사이보그 선언문'에서 언급한 다음 내용은 이러한 현실을 잘 반영한다.
"우리는 모두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인 키메라다. 요컨대 사이보그다. 사이보그는 우리의 존재론이다. (…) 전자공학은 노동을 로봇공학과 워드 프로세싱으로 번역하고, 성을 유전공학과 생식기술로 번역하며, 정신을 인공지능과 결정 절차로 번역하도록 중재한다."
현대 과학은 인간을 물질의 집합체로 다룬다. 신체 각 기관의 구조와 기능도 물리적·화학적 합성물의 작용일 뿐이다. 지능·성격·행동도 유전자 정보로 해석된다. 설계도를 보며 건물 구석구석을 살피듯이 유전자 지도를 통해 일거수일투족을 해명할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불가침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창조적인 정신활동조차 인공지능을 통해 정복했다고 여긴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이보그는 현대인의 존재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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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포스터 <공각기동대> 1995년 |
| ⓒ 프로덕션 I.G |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비약적 발달로 국가나 사회가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시대가 배경이다. 네트워크상에서 정보 조작과 파괴 활동을 담당하는, 일종의 사이버 로봇 '인형사'를 만든다. 어느 날 <공각기동대> 영화 포스터 뒤편에 보이는 여성형 의체가 달아나다 교통사고를 당해 망가진 상반신이 회수된다.
조사를 통해 기계적으로 만든 인공두뇌 안에 고스트 같은 것이 있음을 발견한다. 갑자기 인형사는 내부 동력으로 작동하여, 자신을 "정보의 바다에서 발생한 생명체"라며 망명을 요청한다. 상대가 "자기보존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아"라고 하자, "생명은 정보의 흐름에서 태어난 결절점과 같다"라며 자신도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생명체임을 거듭 주장한다.
인간의 정신과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정신도 결국은 뇌에 의해서 만들어진, 물질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인간과 로봇의 사고와 기억 능력이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다.
영화가 나왔을 때만 해도 그럴듯한 상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해러웨이가 강조한, "정신을 인공지능과 결정 절차로 번역"으로 이해하는 게 충분히 설득력을 갖춘 단계에 이르도록 했다. 반도체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병렬 계산으로 가공할 속도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다. 인간의 외형이나 행동을 흉내 내는 정교한 기계 덩어리에 머물지 않고 일정한 사고능력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이 실제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인간과 기계는 어떤 관계인가?
인공지능의 현실화와 함께 당연히 20세기 초반보다 인간과 기계를 둘러싼 논쟁도 더욱 치열하다. 현대 과학기술의 관점을 옹호하는 쪽이든 비판하는 쪽이든 보다 치밀한 논리로 무장하고 날카로운 견해를 제기한다. 인간을 기계적 조작 수단으로 보는 관점이 보편화될 때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점은 분명하다. 낡은 기계 부품을 폐기하고 교체하듯 인간을 이윤 확대를 위한 소모품 정도로 취급하는 논리로 사용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의 고유성 강조가 무조건 옹호될 태도만은 아니다. 해러웨이는 "나는 여신보다는 차라리 사이보그가 되겠다"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사이보그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를 침해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신화로 나타난다"라는 이유를 든다.
사이보그가 인간과 동물의 분리를 극복하고 단단히 짝을 이루게 자극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주장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차분히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논리는 아니다. 최근 인공지능이 인류를 흔들어버린 사건까지 고려하면 공감의 폭은 더 넓어진다.
그동안 정신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견해는 이를 인간과 동물을 분리하고 인간 우월성을 입증하는 만능열쇠처럼 여겼다. 동물과 기계는 물질적 작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같고, 오직 인간만이 창조적 정신을 통해 독자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어떤 동물이나 기계도 인간의 창조적 정신에 견줄 수 없기에 인간의 우월성은 확고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창조성이 인간의 고유한 영역임을 입증하는 데 유력한 증거였던 바둑,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 가운데 창의적인 수를 찾아내는 바둑에서 세계 최고의 인간 고수들을 압도적으로 이기자 인류가 경악했다. 인간만이 창조성을 지닌다는 신화가 깨졌다. 인간이 자랑하는 정신 능력도 여러 경우의 수에서 효율적 선택을 찾아내는 과정의 한 부분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간 정신과 인공지능 사이의 구별이 모호해진다면, 마찬가지로 인간과 동물의 절대적 구별, 인간의 동물에 대한 배타적인 지배의 정당화도 근거가 모호해진다. 인간의 부당한 오만에서 출발하는 자연 지배 사상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계기이기에 해러웨이는 차라리 사이보그가 되겠다고 한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주장이 인공지능 전반에 대한 타당한 견해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결국 핵심 문제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에 있음을 알리는 문제의식이라는 점에서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본질을 찾는 질문이 인간의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어떤 규정으로 이어지든 문제가 생긴다. 그 대상이 동물이든 기계든 공존의 관점에서 출발한다면 걱정의 반은 덜고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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