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유진하우스의 특별한 손님

우성규 2026. 5. 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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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규 종교부장


서울 종로구 혜화로12길에 유진하우스가 있다. 서울 지역 전통의 ‘ㅁ’자형 한옥으로 1940년 건축됐다. ‘삶이란 무엇인가’(철학과현실사)를 저술한 원로철학자 김태길 서울대 교수가 살던 집으로 서재와 툇마루, 처마와 마중물 펌프가 보존돼 있다. 한양도성 안쪽 혜성교회 옛 예배당과 경신중고가 지척이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으며 한옥 체험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된다.

유진하우스 주인장은 김영연 대표다. 유진 엄마인데, 세계인의 엄마라고 부를 만하다. K팝 K드라마 K뷰티를 넘어 진짜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자 하는 세계의 여행자들이 여기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온다. 김 대표는 일본 도쿄 아오야마 외국어학원과 중국 칭다오 해양대학교 등지에서 배우고 가르치다 귀국한 뒤 2009년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 2020년에는 ‘나는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 여행한다’(예담)를 펴냈다. 메이드 인 코리아를 외치는 러시아인, 성북동을 탐방하는 체코 건축학도, 흰 눈을 보고 감격한 말레이시아 목사 부부, 한국 여성과 결혼을 꿈꾸다 이곳에 머물며 훗날 꿈을 이룬 스웨덴 청년까지 이 집을 거쳐 간 여행자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김 대표는 책을 두고 “안방에서 즐긴 세계 여행 스토리”라고 표현한다. 이달 초 방문한 유진하우스에선 최대 8일의 골든위크를 맞아 방한한 중국과 일본 여행객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이탈리아 여행자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이들과 함께 서울 성곽을 산책하거나 미술관을 관람하고 캘리그래피 체험을 도우며 때때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나누기도 한다.

세계인이 머무는 유진하우스에 지난해 더욱 특별한 손님이 오셨다. 김 대표의 80대 후반 어머니다. 울산에서 모셔왔다. 치매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이라고 김 대표는 언급했다. 단정하고 강단 있던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 삶의 견고한 기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김 대표는 털어놓았다. ‘엄마가 나를 어떻게 키워냈는데’ 가슴 밑바닥에서 뜨겁게 치밀어 오른 그 마음 하나로 치매 노인 간병을 시작했다.

진짜 우리 엄마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변해버린 성격, 옷을 겹겹이 껴입는 패션, 심야에 우산을 들고 한옥 대문을 차면서 어린 시절 고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는 엄마를 계속해서 사랑스러운 눈길로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매일 무너지지 않으려 애썼고, 이 과정에서 교회의 도움을 받았다.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떠나 지금은 인근 빌라에 모시고 있는데 어머니는 찬송가 324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의 앞 소절을 들으면 후렴구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를 비롯해 4절까지 외워서 부른다. 김 대표는 이 이야기를 모아 지난 2월 두 번째 책 ‘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문학세계사)를 펴냈다.

국민일보 종교국은 최근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생명의말씀사)를 저술한 강현숙 작가와 ‘의사 며느리와 치매 시어머니의 동거기’(예영커뮤니케이션)를 쓴 김수영 원장의 이야기를 전했다. 올해 만 65세 이상 치매 환자가 100만명을 넘어섰고 2050년엔 300만명 돌파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이들은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이 어느 날 잘 알던 교인의 이름과 얼굴을 연결하지 못하거나, 헌금하는 것을 잊어버려 멈추거나 여러 번 내고, 교회에서 물건을 살 때 값을 치르지 않고도 돈을 줬다고 우기는 경우 등이 반복되면 의심 증상으로 볼 수 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바로 옆의 이웃인 가족부터 인지 장애 여부를 체크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정을 느끼는 치매 환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주고 무엇보다 따뜻한 눈길로 지속해서 사랑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찬송가 부르기, 성경 말씀 암송하기, 율동 따라하기, 교인들과 대화하기 등의 신앙생활로 치매 진행을 늦추는 예방 노력 역시 절실하다.

우성규 종교부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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