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찾아가던 ‘렌탈언니’, 32년 활동 접은 이유[이세계도쿄]

강창욱 2026. 5. 9. 00:2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히키코모리 지원 선구단체 ‘뉴스타트’ 활동 종료
방문원 ‘렌탈언니·오빠’ 보내 대화·외출 등 교류
지원단체 난립… 감금·저임금노동 논란에 소송도
구직환경 변화·연령대 양극화 등에 접근 달라져
'렌탈언니'로 불리는 히키코모리 지원단체 방문원이 의뢰 가정을 찾아 문밖에서 대상자와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렌탈언니’는 일본에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자립 지원을 선도해온 비영리단체 ‘뉴스타트 사무국’의 대표 활동이다. 히키코모리 자녀를 둔 부모가 요청하면 일정 교육을 받은 방문원을 해당 가정에 보낸다. 여자 방문원은 렌탈언니, 남자 방문원은 렌탈오빠로 부른다.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는 상담사나 선생님 같은 존재보다 비교적 가까운 또래 언니(누나)·오빠(형)처럼 편하게 다가가겠다는 취지다. 이들은 문밖 대화, 편지, 전화, 외출 동행 등을 통해 히키코모리가 집 밖으로 나와 사회와 연결되도록 돕는 역할을 해왔다.

1990년대부터 렌탈언니·오빠를 운영해온 뉴스타트가 지난 3월 말로 공식 활동을 종료했다. 94년 4월 설립 이후 32년 만이다. 그 배경에는 히키코모리 연령대 양극화와 취업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의 어려움, 단체 난립과 맞물린 문제 증가, 인권침해 논란, 부모의 의뢰 감소 등이 있다.

이탈리아 농원서 시작된 ‘탈출’ 실험
뉴스타트는 히키코모리 청년들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농원에서 지내게 하는 ‘뉴스타트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사회와 단절된 젊은이들이 공동생활을 통해 인간관계를 다시 만들어가게 하려는 시도였다. 이 프로젝트의 사무국으로 활동이 시작돼 단체명에 ‘사무국’이 붙었다고 한다.

뉴스타트는 99년 특정비영리활동법인(NPO법인) 설립과 함께 도쿄 근교 지바현 우라야스시에 1호 기숙사를 열었다. 이후 지바현과 오사카부를 중심으로 한국 필리핀 이탈리아 호주 등 해외에도 기숙사를 운영했다. 전성기에는 약 100명이 입소해 있었다고 한다.

기숙사비는 부모가 월 22만엔(약 204만원) 정도를 부담했다. 원칙적으로 기숙사 생활 중에는 부모와 연락이 금지됐다. 기숙사를 뛰쳐나가 본가로 돌아가더라도 부모는 집에 들이지 않는다는 약속이 있었다.

기숙사 입소로 이어지기 전 주요 지원 방식 중 하나가 렌탈언니·오빠의 방문이다. 히키코모리 청년을 찾아간 이들 직원은 당사자와 교류하며 뉴스타트가 운영하는 기숙사에 들어갈 것을 권한다.

'렌탈언니'가 어렵게 집 밖으로 나온 히키코모리 청년의 외출에 동행하는 모습.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뉴스타트는 웹사이트에 지난해 9월 갱신한 활동 소개글에서 “물론 부모님의 의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직원의 방문을 거부한다”며 “하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는 같은 세대의 친구를 원하고 있어서 대개 3개월쯤 지나면 방문 직원도 젊은이와 만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단체 설립자 후타가미 노우키 이사는 2005년 6월 출간한 책 ‘희망의 니트’에서 뉴스타트가 연간 200쌍의 부모를 면담하고 200명 가까운 니트 청년을 방문 직원이 찾아가 교류한다고 소개했다. 법인 설립 후 6년째인 당시까지 졸업생으로 둥지를 떠난 젊은이는 300명 정도라고 그는 설명했다.

기숙사에 입소하면 3개월 뒤 본인 희망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일을 체험하며 직업 적성을 찾아보게 한다. 뉴스타트가 운영하는 찻집이나 식당을 비롯해 외부 음식점, 주간보호시설, 보육시설, 지적장애인 시설, 호스피스, 해외 기숙사 등이 체험처로 소개됐다.

원칙적으로 한 사람이 세 가지 일을 병행하도록 한다고 후타가미 이사는 저서에서 설명했다. 을 찾아 퇴소하게 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은 1년 3개월 정도라고 한다.

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는 뉴스타트 활동 종료를 다룬 기사에서 “(기숙사생의) 80% 정도가 자립에 성공하지만 질병이나 장애 등을 가진 경우에는 장애인 취업이나 생활보호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원래 생활로 돌아가버리는 사례도 약간 있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뉴스타트는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32년 동안 1700명 넘는 청년을 자립으로 이끌어왔다”고 설명했다.

‘강제 끌어내기’ 논란에 흔들린 경계
활동 초기 뉴스타트는 ‘히키코모리 탈출 지원의 선구자’로 평가받았지만 일부에 알려져 있던 정도였다. 인지도가 단숨에 높아진 계기는 렌탈언니였다.

이들은 2000년대 들어 급증하며 사회문제로 부상한 ‘니트(미취업·미취학·미훈련)’ 청년을 지원하는 존재로 크게 관심을 받았다. 책과 드라마의 소재로도 쓰였다. 집에서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와, 일도 교육도 직업훈련도 하지 않는 니트 문제는 한 세트였다.

렌탈언니의 등장은 히키코모리 지원을 대중화한 계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여러 단체가 난립하면서 문제도 늘어났다. 특히 부모의 의뢰를 받아 히키코모리 당사자를 강제로 집에서 끌어내 운영 시설에 입소시키는 ‘히키다시야(끌어내는 업자)’를 둘러싼 논란이 잇따랐다고 도요게이자이는 설명했다.

히키코모리 청년이 부모의 의뢰로 자신을 찾아온 지원단체 직원과의 접촉을 피하는 모습.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부모에게서 고액 보수를 받으면서 저임금 노동을 강제하거나 사실상 감금했다는 이유로 민사소송으로 번진 사례도 있었다.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1월 공개한 ‘히키코모리 지원 핸드북’에 히키코모리 당사자와 소통할 때 반드시 본인 동의를 얻도록 명시했다. 히키다시야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내용이다

후타가미 이사는 도요게이자이에 “우리는 마지막까지 본인이 자발적으로 집을 나오도록 끈질기게 설득해왔다”며 “렌탈언니들은 거부당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활동이 히키다시야와 같은 범주로 묶여 비판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히키코모리인 자녀는 판단력이 둔해져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부한다”며 “본인 동의를 기본으로 하는 후생노동성 방침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단체 설립 때부터 활동해온 뉴스타트 직원은 “부모의 의뢰로 집을 방문해도 자녀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문 너머로 ‘이날 데리러 올 테니 기숙사에 가자’고 몇 차례 계속 말하면 약속한 날에 정말 문이 열리고 짐을 싸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의 의뢰만으로 끈질기게 접촉을 시도하는 방식은 당사자에게 괴롭힘이 될 우려가 있다. 한 30대 남성은 “(뉴스타트로부터) 인권침해와 프라이버시 침해를 당했다”고 도요게이자이에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혼자 살던 맨션에 방문원이 찾아와 고통받았다고 주장했다. 부모가 상담하고 계약한 것을 근거로 찾아온 뉴스타트 직원이었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원치 않는 접촉을 당했다는 얘기다. 그는 무직 상태이기는 했지만 아토피 등 피부병이 악화하면서 우울증을 앓게 된 경우라고 호소했다.

남성은 “방문, 전화, 편지로 접촉해온 게 스트레스가 됐다”며 “우울증 악화로 자살 미수를 일으켜 경찰이 개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사회 부적응이나 대인관계 고민, 일하기 싫다는 식의 일반적 히키코모리 사례와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메일에서 “가족관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현시점에서는 부모를 용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뉴스타트에 협의를 통한 치료비와 위자료 청구, 공식 사과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타트는 이 남성과의 갈등에 대해 “여러 차례 사무소 앞이나 후타가미 이사의 자택 우편함에 빨간 글씨로 비방과 중상을 쓴 대형 봉투 편지가 놓인 적이 있었다”며 “지금은 변호사를 통해 대응하고 있다”고 답했다.

도요게이자이는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며 “히키코모리 탈출 지원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해설했다.

넓어진 연령대, 더 어려워진 대응
꾸준히 대응해온 일본이지만 히키코모리 상태에 있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다. 지원 기관 입장에서 더 난감한 점은 연령대가 꽤 넓어졌다는 사실이다.

내각부가 2023년 3월 발표한 2022년도 조사 결과를 보면 15~64세 사이 히키코모리는 2022년 기준 146만명으로 집계됐다. 후생노동성은 이 실태를 정리한 보고서에서 해당 연령대 50명 중 1명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15~64세는 흔히 생산가능인구로 분류된다.

연령대별 히키코모리는 15~39세가 61만명으로 약 42%, 40~64세가 85만명으로 58%를 차지했다. 40대 이상이 30대 이하보다 24만명 더 많다. 과거 젊은이들의 문제로 여겨졌던 히키코모리가 중장년과 노년층으로 확대된 것이다. 80·90년대 청소년이나 청년이었던 이들이 히키코모리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나이를 먹은 영향이 크다.

증가 속도도 40대 이상이 더 빠르다. 15~39세는 2016년 내각부 집계 약 54만1000명에서 13% 증가했다. 40~64세는 정부가 이 연령대 히키코모리를 처음으로 조사한 2018년의 약 61만3000명과 비교해 39% 늘었다.

이런 수치는 히키코모리 연령대가 전체적으로 높아지는 한편 젊은층에서도 새로운 히키코모리가 계속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년 자녀가 자립하지 못하고 노령 부모와 한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히키코모리 연령대가 확장되면서 ‘탈출 지원’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수요가 달라지면서 접근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청년층 자립을 지원하는 NPO법인 ‘소다테아게넷’의 구도 게이 이사장은 도요게이자이에 “10년 전에는 20대 후반부터 30대의 취업 지원이 많았지만 지금은 학교와 협력해 10대나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이른 단계에서 사회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체명인 소다테아게넷은 ‘끝까지 길러내다’라는 의미의 일본어 ‘소다테루’와 ‘네트워크’를 결합한 이름이다. 청년들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돕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구도 이사장은 “기업 입장에서 청년은 ‘레어메탈(희귀금속)’ 같은 희소 자원이 됐다”며 “매우 많은 기업으로부터 채용하고 싶다는 상담이 들어온다”고 전했다. 히키코모리나 니트 청년이 노력한다면 취업의 길은 전보다 열려 있다는 얘기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중장년층 히키코모리다. 이른바 ‘취업빙하기 세대’였던 이들 연령대는 무직 상태가 이미 길어져 일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후타가미 이사는 “20년 이상 히키코모리 상태였던 사람을 기업이 받아들이는 경우는 소수”라고 말했다.

후생노동성은 무직·미취학 상태인 사람에게 상담이나 직장 체험 등을 제공하는 ‘지역 청년 서포트 스테이션’을 모든 도도부현(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15~39세가 대상이었지만 2020년부터 49세까지로 연령을 올렸다.

80대 부모가 50대 무직·은둔 자녀를 돌보는 ‘8050문제’는 일본에서 사회문제로 대두한 지 오래다. 이들 가정은 이미 고령인 부모가 아프거나 사망하는 순간 한꺼번에 무너질 위험이 있다.

도요게이자이는 “자녀의 취업을 포기한 부모가 조금이라도 많은 노후 자금을 남기려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부모 사후에는 생활보호 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사회와의 접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자립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자녀를 내보내려고 하더라도 특히 도시 지역에서 살 집을 마련해주려면 부모의 부담이 크다. 자녀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지속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뉴스타트의 활동은 여러 환경 변화와 맞물려 활기를 잃어온 것으로 보인다. 부모의 상담 의뢰는 감소세였다고 한다. 누적 자립 실적의 증가 폭도 예전만 못했다. 도요게이자이는 뉴스타트가 최근 32년간 1700명 이상을 자립으로 이끌었다고 전했는데, 뉴스타트가 7년 전에 밝힌 자립 청년 규모가 1600여명이었다. 초기 6년간 자립시킨 청년이 300명 정도였다는 후타가미 이사의 설명까지 감안하면 실적이 크게 둔화했음을 알 수 있다.

뉴스타트는 최근 몇 년 동안 환경 변화에 맞춰 활동 방식 변경을 검토하다 결국 활동 종료를 택했다. 뉴스타트 관계자는 도요게이자이에 “기숙사 운영이나 시설 관리 등 규모가 크기 때문에 노선 변경이 쉽지 않았다”며 “지속은 어렵다는 결론이 났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