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생태계에서 미스터비스트는 사실상 중앙은행이나 다름없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움직이면 전 세계 돈의 흐름이 바뀌듯, 구독자 3억명을 거느린 미스터비스트가 움직이면 글로벌 소비 트렌드가 금세 요동친다. 그가 영상 한 편을 찍는 데 들이는 제작비는 수십억원에 달한다.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수백억원대 광고 효과를 낸다.
섭외하기 힘든 그가 우연히 한국 음식을 접한 뒤 자발적으로 콜라보 영상을 올렸다. 결과는 어땠을까. 올해 1월 리뉴얼 신제품을 론칭한 지 4개월 만에 미국 전역의 마트 진열대에 오르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만든 푸드 스타트업 코리안브로스다.
미스터비스트와 협업한 시식 영상(코리안브로스 제공)
미국 유통 시장에서 코리안브로스의 성장세는 눈에 띈다. 1년여의 연구 끝에 올해 1월 새롭게 단장한 제품을 내놨는데, 4개월 만에 1인분 환산 기준으로 200만개 넘는 주문을 받아 업계를 놀라게 했다. 컵 제품의 현지 평균 판매가가 3달러에서 3.99달러 사이로 우리 돈 5000원 선인 점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속도다. 최근 400개 매장으로 입점처가 늘어나긴 했지만, 이 많은 판매량은 3개월 정도 200여개 매장에서 거둔 성과다.
미스터비스트가 극찬했다는 들기름막국수(코리안브로스 제공)
코리안브로스 권덕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그 비결을 파헤쳐봤다.
현지인 시선으로 다시 쓴 K푸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식품 기업들이 마주한 현실을 짚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성능 좋은 최신 스마트폰을 만들었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스마트폰의 설명서가 전부 아랍어로 적혀 있고, 충전기 규격도 현지와 다르다면 어떨까. 현지인들은 호기심에 한 번 사볼 수는 있어도 결국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팽개칠 거다. 권덕 대표가 첫 사업인 컵밥 체인(유타컵밥)을 미국에서 운영하며 느낀 점이 바로 이거였다.
미스터비스트 등 미국인이 이해할 만한 스타일의 제품으로 차별화한 코리안브로스(코리안브로스 제공)
한국에는 좋은 아이디어와 장인정신을 가진 브랜드가 많다. 하지만 이를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설득할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한국의 맛을 직역해서 내놓으니,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음식이 돼버린 거다. 권 대표는 이 간극을 메우는 문화적 번역기 역할을 자처했다. 한국의 본질은 지키되 현지인들이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도록 음식을 재해석하는 일, 그것이 코리안브로스의 핵심 철학이다.
딱딱한 떡은 가라…1년 연구로 찾은 쫄깃함의 비밀
철학이 좋아도 제품의 기본기가 부실하면 금세 한계에 부딪힌다.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건 결국 품질이기 때문이다. 코리안브로스는 기존 수출용 떡볶이의 단점을 파고들었다. 보통 컵 떡볶이는 전자레인지에 돌린 뒤 조금만 지나도 차갑게 식어서 딱딱해진다. 빵으로 치면 오븐에서 갓 꺼냈을 때는 부드럽지만 10분 만에 돌덩이처럼 굳어버리는 셈이다. 쫀득한 식감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이런 식감은 외면의 대상이 된다.
현지인에 맞게 식감을 개선한 떡볶이(코리안브로스 제공)
이 문제를 해결하고 리뉴얼 제품을 론칭하기 위해 코리안브로스는 1년이 넘는 시간을 쏟아부었다. 미국에 출시된 여러 한국 떡볶이를 맛본 뒤, 그중 가장 좋은 품질을 낸 한국의 강소기업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생산 일정이 꽉 차 어렵다며 거절당했지만, 설득 끝에 파트너십을 맺었다. 떡을 세 번 치대는 공정을 거친 덕분에 조리 후에도 오랫동안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재미있는 건 미국 소비자들이 이 떡을 쌀로 만든 케이크라는 뜻의 라이스 케이크(Rice Cake)가 아니라 짧은 국수라는 뜻의 쇼트 누들(Short Noodle)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신들만의 익숙한 방식으로 우리 음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거다.
수백만 팬덤에 미스터비스트 콜라보까지
탄탄한 제품을 완성했으니 남은 건 날개를 달아줄 마케팅이다. 코리안브로스는 수백만 팔로워를 보유한 틱톡커이자 인플루언서인 제임스 서를 영입해 퍼즐을 맞췄다. 그는 젊은 세대의 언어와 밈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올해 1월 론칭 초기 유타주에서 코리안브로스를 파는 마트들을 돌며 릴레이 마라톤을 벌인 일화는 화제가 됐다. 손님이 마트에서 제품을 사야만 다음 매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규칙을 세웠는데, 수백명의 팬이 매장 앞에 모여 그를 응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어떤 팬은 컵 떡볶이 속에 반지를 숨겨 프러포즈를 하기도 했다. 미국인 특유의 열린 마인드와 팬덤이 결합해, 음식 소비가 놀이 문화로 변모한 거다.
미스터비스트가 즐겨 먹는다는 떡볶이(코리안브로스 제공)
미스터비스트의 등장도 제임스의 집념 덕분이었다. 제임스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미스터비스트에게 콜라보를 제안했고, 이것이 인연이 돼 실제 만남으로 이어졌다. 미스터비스트가 1월 리뉴얼 제품 론칭을 축하하며 시간을 냈고, 그와 약혼자가 들기름 막국수를 맛보고 호평한 영상이 올라가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그가 거주하는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마트에서는 영상 공개 후 2주도 안 돼 리오더(재주문)가 6번이나 들어왔다. 외국인에게 들기름 특유의 향과 차가운 면발, 진한 색감은 낯선 조합인데, 되레 그 신선함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거다.
입점 구걸 대신 신념 영업…디자인 혁신으로 대형 유통망 홀렸다
신제품이 4개월 만에 200만개가 넘게 팔리며 미국 유통가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눈길을 끄는 패키지 디자인과 영업 전략도 한몫했다. 미국 대형 마트의 진열대는 전 세계 수천개 브랜드가 경쟁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아시아 식품들은 보통 구석진 코너에 조용히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코리안브로스는 이 관행을 깼다. 이들은 입점을 구걸하지 않았다. 신생 브랜드지만 온오프라인 반응이 좋다는 점을 알렸고, 매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끝자리인 앤드캡(End Cap, 진열대 양쪽 끝부분으로 고객의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무는 명당자리) 독점 진열을 요구했다. 권 대표 역시 마트 측이 최고의 자리를 내어준 점을 비결로 꼽는다.
제품 출시 후 5월 기준 미국 400여 매장에 입점한 코리안브로스 제품(코리안브로스 제공)
이런 배짱이 통한 건 디자인의 힘이 컸다. 코리안브로스는 다이라인 어워즈(Dieline Awards)에서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이 상은 전 세계 패키지 디자인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릴 만큼 권위가 높다. 여기서 종합 식품 브랜딩 부문 1위, 즉석식품 패키지 부문 1위 등을 차지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증명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최근 타겟(Target), 월마트(Walmart)와 입점 계약을 마쳤으며, 올해 하반기 본격적인 입점을 준비 중이다. 이는 한국식 떡볶이 제품으로는 최초의 대형 유통망 입점 사례가 될 전망이라 의미가 크다.
이제 코리안브로스 앞에는 새로운 챕터가 열렸다. 타겟 1000개 매장과 월마트를 소화하려면 물량을 흔들림 없이 공급해야 한다. 권 대표는 덕산 등 한국의 제조 파트너 기업들과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 물류를 전담하는 케이푸드링크(K food link)의 역할이 컸다. 권 대표는 이 파트너사가 없었다면 대규모 물량 컨트롤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한다.
과제는 없나
물론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미국은 방대해 효율적인 유통망과 물류망을 짜는 게 주요 과제다. 전국 단위 유통사 물량을 감당하려면 자본 투입과 시스템 고도화가 필수적이다. 확보한 자금을 유통망 구축, 신제품 연구개발 등에 어떻게 배분할지가 과제다.
그럼에도 권덕 대표의 방향성은 뚜렷하다. 한국의 숨은 진주 같은 제품들을 계속 발굴해 소개하는 것, 그리고 코리안브로스를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기업으로 키워내는 것이다. 올해 1월 신제품 론칭 후 4개월. 그 짧은 시간에 만들어낸 성과는 운이 아니었다.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와 품질, 그리고 틀을 깨는 브랜딩이 맞물린 결과다. K푸드의 성공 사례를 어디까지 써 내려갈지 시장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