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엄마로부터 온 살벌한 문자, 안 웃을 수가 없네

강미순 2026. 5. 8. 15:3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종료 버튼 안 눌러 요금 폭탄, 딸에게 보낸 엉뚱 메모... 소통하고픈 마음 가득한 엄마의 스마트폰 사용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미순 기자]

지난 2월 중순, 80대 엄마의 스마트폰에 온 문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추가 요금이 평소보다 다섯 배 가까이 나왔다는 안내였다. 나는 엄마가 보이스피싱을 당하신 건 아닐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곧바로 최근 통화한 기록을 확인하고는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범인은 엄마가 무심코 누르지 않은 '빨간 종료 버튼'이었다.

엄마는 처음 받아보는 거액의 통신 요금에 놀라서 "그거 자동으로 꺼지는 거 아니냐" 하셨다. 다소 억울해 보였다. 그랬다. 엄마는 통화 중에 화면이 꺼진 상태를 통화가 종료된 것으로 오해하신 것이다. 굳이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상대편이 전화를 잘 끊어주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의 그날 밤, 엄마는 경로당 지인과 통화할 일이 생겼다. 갑자기 119 구급차에 실려 갔던, 이웃에 사는 친구 소식이 궁금했다. 경로당 지인은 엄마 친구가 구급차에 실려 이송 되는 모습을 목격했지만, 별로 아는 게 없어서 통화는 짧게 끝났다.

문제의 '빨간 버튼'
 80대 엄마의 스마트폰 사용기.
ⓒ AI생성이미지
엄마는 통화가 끊긴 줄 알았고, 상대방은 엄마가 먼저 전화를 끊었으려니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기기는 주인들의 속사정을 알 리 없이, 밤새 지극히 사적인 소리를 실시간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상태는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아침에 잠에서 깬 엄마는 스마트폰을 찾아서 열었다. 무언가 켜진 상태를 알리는 초록색이 보여서 무심코 껐다. 이 일은 요금 폭탄을 맞고 나서 기억해 냈다.

타인에게 절대 들려주고 싶지 않은 아주 개인적인 소리가 실시간으로 공개된다고 상상하면 등 줄기에 식은땀이 흘렸다. 나는 그날 밤 무얼 하고 있었나? 무슨 말이나 어떤 소리를 냈지? 곰곰이 되짚어 본다. 기억나는 건, 내가 거실에 머물렀을 시간대였다는 것 뿐이다. 엄마 스마트폰은 주인이 있든 없든 거실 소파 위에 늘 놓여 있었다. 나는 엄마 스마트폰이 있는 소파에 앉았거나 누웠을 테지. 세상 없이 편하고 무방비했을 거다.

엄마의 지인이 스마트폰에 귀를 기울였을 가능성이 없다는 건 안다. 두 분이 사이좋게 요금 폭탄을 주고받았던 전적도 있었으니까. 그분도 엄마처럼 실수로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 거라 믿고 싶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괴로워하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내도록 찝찝했다.

통화 종료를 잊어버리는 건 단순히 80대 노인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방식에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경우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필수품이 되기까지 피처폰을 오래 놓지 못했다. 예전 폴더폰처럼 뚜껑을 닫으면 종료되는 것에 익숙했다. 80대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셨으니, 습관을 고치기 힘들었다.

"엄마, 이젠 통화하고 빨간 버튼 꼭 눌러. 두 번 확인해."

알았다고 대답은 하지만, 잘 지켜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엄마만 탓할 수 없었다. 나는 뒤늦게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요금 감면을 알아보다가, 시니어 무제한 요금제로 바꾸어 드리기로 했다. 엄마는 "어쩌다 실수 한 걸 갖고 유난이다. 90세가 코앞인데, 아깝게 요금을 더 내려고 하냐. 더 깎아줘도 모자랄 판에"라고 하신다. 그 돈 아끼려고 하다가 거의 반년 치 통신 요금을 한 방에 날려 놓고는(딸에게 부담 지우려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란 건 안다).

나는 엄마에게 시니어용 폴더폰 선택지도 슬쩍 내밀어 봤다. 엄마는 바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스마트폰 사용이 어렵다는 거지, 편리하고 유용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바로 체감 되는 편리함은 한 번 익숙해지면 자주 쓰게 되었다. 우선 스마트폰 하나로 지갑을 대신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건강 관리 앱을 사용해 봤다. 빙산의 일각이지만, 신세계를 맛보았다. 이전으로 되돌아가진 않을 것 같다. 스마트폰 활용 범위도 나름 넓어지고 있다.

이상한 문자가 날아왔다
 엄마가 내게 보내온 문자의 정체.
ⓒ joshua_hoehne on Unsplash
지난 4월 어느 날, 노래 교실에 가신 엄마가 내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인생면허증"

잘못 보냈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후로도 이상한 문자가 더 들어 왔다

"사천... 죽방"
나 : "무슨 말씀? 살벌하게 ㅜ.ㅜ"

엄마가 내게 보내온 메시지는 정해져 있었다. "어디니?" "언제 오니?" 정도였다. 화면 터치가 서툴러서 생소한 글자는 엄두도 못 냈다. 나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얼른 전화했다. 신호가 몇 번 울리도록 받지 않았다. 한참 후에 통화가 되었다. 나는 걱정과 짜증을 섞어서 이 문자는 뭐냐고 물었다.엄마는 메모할 종이가 없어서 아쉬운 대로 딸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썼다고 하신다.

노래 교실에서 배운 노래 '인생 면허증'을 기억해 두고 싶었다는 것.

"세월이 가고 흰머리가 늘어가면 갈수록 꼭 쥐고 싶어지는 면허증. 개똥밭에 굴러도 이 세상이 좋다네. 보물 같은 인생 면허증"

이런 노래 가사였다. 노모의 심정을 절절히 녹였으리라. '사천... 죽방'은 이번 모임 장소가 사천 호국공원이고, 답례품은 죽방멸치라고. 애써 쓴 글이 지워지면 안 되니까, 엉뚱한 방법을 찾아 내신 거다. 나는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 같이 사는 딸인 내가 제일 만만하다. 보내 놓고도 전혀 탈이 없을 테니까.

엄마의 서툴고 엉뚱한 스마트폰 사용에는 소통하고 싶은 갈망이 담겨있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힘겹게 한 걸음이라도 걸어서 재미난 이야기와 웃음, 흥겨움을 찾아 다니듯이. 낯선 디지털 기계와 AI 앞에서도 모르면 모르는 대로 당신에게 꼭 필요한 기능은 찾아 쓰실 것이다.

엄마는 문자로는 부족했는지, 사진까지 첨부했다. 이번에도 메모장 용도로 보냈나 했더니, '열강' 하시는 강사님 뒤편 스크린이 눈에 들어온다.

"자식과 통화는 치매약이고 자식과 산책은 혈압약이며 자식과 외식은 보약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