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가 된 ‘텍스트힙’…민음사 고전, 어떻게 ‘힙’해졌나

김나연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nayeun0701@naver.com) 2026. 5. 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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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불황 뚫고 매출 23%·영업익 72%↑
스타 편집자, 민음사TV 42만 구독자 견인
고전 엄숙주의 걷어내고 ‘이왕이면 민음사’
‘민음사 모델’ 업계 침체 극복할 열쇠되나
민음사TV에 지난 4월 21일 업로드된 유튜브 썸네일 캡쳐. (유튜브 캡쳐)
“무한도전 대신 민음사TV를 새로운 밥 친구로 삼았어요.”

유튜브를 시청하며 ‘혼밥’을 즐기는 직장인 박모씨(가명·29)는 연예인들의 가벼운 예능 대신 민음사TV를 선택했다. 이 채널의 고품격 유머가 무한도전만큼 재미있고, 그 보다 유익하다는 판단에서다.

민음사TV는 민음사 출판그룹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이 콘텐츠는 전형적인 ‘책 홍보’에 주력하지 않는다. 대신 출판사 직원들의 자연스러운 일상과 사사로운 취향을 보여준다. 동료 편집자에게 ‘퇴근할 때 창문을 꼭 닫고 가주시길 부탁드립니다.…가을 모기가 슬프다고 했던 다자이 오사무는 제대로 물려본 적이 없는 게 틀림없습니다’라는 메일을 받았던 경험을 공유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 소통법이 되레 작품에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무슨 의미인지 언뜻 이해 못한 시청자들은 ‘다자이 오사무’와 ‘슬픈 가을 모기’를 검색한다. 그럼 ‘가을까지 살아남은 모기를 슬픈 모기라고 한단다. 모깃불은 피우지 않는 법. 가여우니까.’라는 문구가 뜬다. 바로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첫 창작집 ‘만년(晩年)’에 실린 단편 ‘잎’의 한 구절이다. 주인공이 할머니를 떠올리는 이 장면을 인용해 ‘모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문단속을 잘 하라’는 경고를 날렸다는 ‘고품격 유머’다.

이 소통방식은 강력한 숫자로 돌아왔다. 지난 4월 30일 발간된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25년 출판시장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민음사 매출액은 지난해 대비 23.8% 증가한 206억1200만원, 영업이익은 72.7% 증가한 41억7700만원이다. 독서 인구 감소로 많은 출판사가 실적 하락세를 기록한 가운데 드러난 비약적 성장이다. 심지어 민음사는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국내에 ‘텍스트힙’ 열풍을 일으킨 한강 작가 작품을 하나도 보유하고 있지 않아 그 성과가 더욱 눈에 띈다.

성공 비결은 탄탄한 팬덤에 있다. 민음사는 연회비 5만원에 도서 할인과 각종 온·오프라인 행사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민음 북클럽’을 운영한다. 최근 마감된 16기 모집 중에는 잠시 서버가 다운될 만큼 신청자가 몰렸다. 예정보다 모집인원을 늘렸지만 하루 만에 조기 마감됐다.

지난 5월 6일 방송된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김민경 민음사 해외문학팀 편집자(가운데), 조아란 민음사 마케팅부 부장(오른쪽). (tvN 제공)
여기에 스타 편집자의 영향력이 화력을 더했다. 민음사TV를 시작으로 라디오와 넷플릭스,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까지 출연한 김민경 해외문학팀 편집자 등이 민음사의 독보적 자산이다.

진영균 교보문고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차장은 “민음사는 출판 업계 최초로 개별 도서가 아닌 출판사 브랜드 자체를 키우고 독자와 호흡하기 시작했다”며 “수년간 쌓아온 유튜브 인지도와 편집자 영향력이 판매량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왕이면 민음사’ 현상도 강해졌다. 민음사 콘텐츠로 문학에 친숙해진 이들이 자연스럽게 민음사 도서 를 소비하는 현상이다. 특히 민음사가 주력하는 ‘세계문학전집’ 실적은 업계를 압도한다. 2025년 교보문고 외국도서 베스트셀러 10위권 중 6개를 민음사가 차지했다. 진 차장은 “민음사TV에서 언급된 책들은 직후 판매량이 급등한다”며 “같은 고전이라면 민음사 판본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화됐다”고 밝혔다.

교보문고 2025년 외국도서 베스트셀러 화면. 민음사 도서는 3·4·7·8·9·10위. (교보문고 화면 캡쳐)
고전과 삶 사이 친밀도를 높이는 전략이 유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일 고전 속 명문장 하나를 제시하는 ‘세계문학 일력’이 일례다. 박혜진 민음사 해외문학팀 과장은 한 영상에서 일력 속 문장이 원문 맥락과 무관하게 소비되는 현상을 언급하며 “언어는 상황과 맥락,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고 말했다. 고전의 엄숙주의를 걷어내고 문턱을 낮추려는 민음사의 지향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민음사 모델’은 출판 산업 침체를 극복할 생존 공식으로도 지목된다. 유승철 이화여자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민음사 모델은 막대한 자본이 아니라 편집자의 정성과 회사의 기획력이 빛난 사례”라며 “보유 콘텐츠가 많지 않은 신생·영세 출판사도 출판 예정 도서의 트레일러를 제작하거나 기획 과정을 공유하는 식으로 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편집자의 일탈 등 리스크는 상존하지만 독자와 접점을 넓히는 것이 영세 출판사의 실질적인 생존 카드”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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