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안동 여행 원한다면, 이 세 곳을 추천합니다

배은설 2026. 5. 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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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 여행의 즐거움] 마음에 소르르 스며드는 곳... 만휴정, 묵계서원, 보백당종택

[배은설 기자]

 한층 호젓한 밤의 만휴정
ⓒ 배은설
사위가 어둠으로 잦아드는 때. 어둠이 내려앉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온전히 듣게 된다. 작은 정자의 툇마루에 앉아 있자니 조용히 물 흐르는 소리 들리고 선선한 바람결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 들리고 이따금 맑은 산새 소리도 들려온다.

밤의 만휴정이다. 지난 2일, 만휴정 야간 투어를 답사할 기회가 생겨 다녀왔다. 주말이면 외나무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비지만, 달빛 아래 만휴정은 고요하다. 오는 5월 중순 즈음부터 경북 안동에 위치한 만휴정에서 야간 개장이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화재 딛고 변함없이 고즈넉 하게 자리한 만휴정

불과 지난 해 3월이다. 숨 막힐 듯 매캐한 연기 뿜어내는 거대한 화마는 여지없이 이곳도 덮쳤다. 주변 민가는 거의 다 전소 됐고, 만휴정 원림 또한 그랬다. 계곡물 위로는 검은 재가 떠올랐다. 미리 방염포를 덮고 있던 만휴정만 간신히 무사했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력 덕분에 만휴정은 지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만휴정이 야간에도 개방되면 낮은 물론 밤에도 만휴정의 운치를 즐길 수 있게 된다.
 밤의 만휴정으로 향하는 길, 조명 덕분에 은은하다.
ⓒ 배은설
야간 개장으로 더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곳에 닿겠지만, 사실 과거의 만휴정은 지역민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만 가는, 그야말로 숨은 명소였다. 안동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깊은 숲 속에 작은 정자가 자리한 탓에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

만휴정은 저물 만(晩)에 쉴 휴(休)자를 쓴다. 조선 중기 문신인 보백당 김계행 선생이 일흔 한 살에 안동으로 돌아와 조용히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것으로, 그만큼 인적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 tvN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이 인기리에 방영된 이후 만휴정의 외나무다리가 이른바 SNS에서 포토존 명소가 되었지만, 만휴정의 본연의 매력은 그것이 아닐 것이다.

넓게 펼쳐진 희디 흰 너럭바위와 그 너럭바위를 타고 흐르다 이윽고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송암폭포, 주변을 감싸고 있는 푸르른 솔숲. 그런 수려한 자연 속에 담긴 정자 하나.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져 있는 곳이다.
 희디 흰 너럭바위와 맑은 계곡물
ⓒ 배은설
아름다운 곳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유명세에 밀려 유독 외나무다리에만 몰리는 건 아쉽다. 밤의 만휴정은 본연의 호젓함을 오롯이 되찾을 수 있을까. 만휴정 뜰 한편에 둥그렇게 피어난 불두화가 어둠 속에서도 어김없이 곱다.

사계절 다른 풍경 품고 있는 묵계서원

똑 똑 똑. 진덕문을 넘어서자 읍청루 처마 끝에서 떨어진 빗방울들이 간격을 두고 바닥을 자꾸만 두드린다. 어느새 오목하게 자그마한 웅덩이가 파였다. 지난 3일, 비 오는 날의 묵계서원이다. 보백당 김계행 선생과 응계 옥고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진덕문, 읍청루를 차례로 지나면 오른쪽은 극기재, 정면은 강당인 입교당이다.
 비 오는 날의 묵계서원 (읍청루)
ⓒ 배은설
고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곳이 안동이지만, 모든 곳이 활짝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고택 담장 너머로 소담스럽게 피어난 꽃이 예뻐 눈길이 가도, 굳게 닫힌 대문 앞에서는 그저 까치발만 몇 번 해볼 뿐이다. 반면 묵계서원은 열린 서원으로 운영되는 덕분에 문턱을 넘는 일이 어렵지 않다. 누구나 서원에 머무를 수 있다.

늘 호젓한 아름다움이 있는 묵계서원이지만,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그 매력이 모두 다르다. 입교당 대청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눈에 담기는 풍경이 모두 다르다. 비 내리는 날이면 서원의 운치는 더 되살아난다. 젖은 비냄새 스며들자 색은 한층 짙어지고 그걸 보는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의 풍경 역시 인상적이다. 어둠이 찾아오기 직전의 환한 빛이 읍청루 둥근 기둥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시간마다 서원 곳곳에 닿는 빛의 세기, 방향이 모두 다르다.
 해 저물기 직전의 묵계서원 읍청루 풍경, 9월에도 배롱나무꽃이 여전히 피어있다.
ⓒ 배은설
각 계절 마다의 풍경 또한 같지 않다. 홍매화, 배롱나무꽃 피어나는 봄, 여름이면 곱고 붉은 빛이 묵계서원 뜰에 아른거린다. 가을이면 곱게 물들었던 잎들이 뜰에 소복이 쌓여 바스락 거리고, 겨울이면 흰 눈 내려앉아 한층 고요하다. 만약 오가는 이 없이 혼자 서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행운이다. 세상의 소란스러움은 그 순간 만큼은 내 것이 아니다.
 봄의 묵계서원. 진분홍빛 홍매화가 화사하게 피어난다.
ⓒ 배은설
서원 왼쪽으로는 서원을 관리하는 건물인 주사가 있는데 현재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ㅁ'자형인 덕분에 건물 사이로 파란 하늘이 올려다 보인다. 하늘 보고 있자니, 어느새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든다. 지붕 용마루 위에 올라앉아 제 집 마냥 양 끝을 통통 가볍게도 오간다. 주사에서도 역시 풍경 하나만으로도 시간이 유유히 흐른다.

더불어 묵계서원 근처의 보백당종택에도 가보면 좋다. 묵계서원과 보백당종택에서는 하룻밤 머물러 갈 수도 있는데, 꼭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앞뜰을 잠시 걸어보는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가끔은 마을 어르신들이 보백당종택 대청마루에 조르르 앉아 고구마며 땅콩을 나눠 드시는 정겨운 모습을 목격할 수도 있다. 여름이면 이곳에도 배롱나무꽃 피어나고, 가을이면 커다란 은행나무에 매달린 은행잎이 눈부시게 노랗다.

만휴정, 묵계서원, 보백당종택까지. 번잡한 일 잠시 내려놓고 천천히 만나보면 좋을 고즈넉한 명소들이다. 대청마루에 그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에 담긴다. 마음에 스며든다. 소르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그래서, 여행' (https://blog.naver.com/tick11)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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