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망진 중년] 쉰 살 된 딸 보험료 내주겠다는 엄마, 버럭하던 내가 졌다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5월엔 '어른이 되는 계절'에 대해 씁니다. <편집자말>
[손미희 기자]
집집마다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난제가 있다. 부모자식 사이라는 치트키를 써도 풀리지 않는 문제들 말이다. 현재 우리 친정집의 최대 난제는 엄마의 오지랖이다. 몇 년 전 혼자가 된 엄마는 이제 말리는 사람도 없어졌다. 그 뒤로 엄마는 세상을 향해 사랑을 무한살포중이다.
성당 봉사는 물론이고, 장례식에 가면 발인도 모자라 화장터까지 따라간다. 지난 주말엔 토요일은 충청도로, 일요일은 전라도로 공소후원을 다녀왔다. 동네할머니가 요양보호사를 부르기 겁난다고 하자, 본인이 주 3일 가서 그 할머니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나보다 더 바쁘다. 문제는 그 오지랖의 이번 타깃이 하필 나라는 것이다.
오지라퍼 엄마의 주요 타깃은 나
"이거 다음 주면 없어지는 혜택이래. 꼭 들어야 돼!"
TV만 틀면 나오는 홈쇼핑 멘트가 아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다. 요즘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내게 간병보험을 들라고 전화한다. 이상하다. 왜 세상 혜택들은 하나같이 다음 주면 사라지는 걸까. 영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엄마는 간절했다.
간병보험이 노후에 도움이 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아직은 애들 교육비도 만만치 않고 당장 급한 것도 아니어서 천천히 들겠다고 시큰둥하게 답했다. 한편으론 나이 많은 엄마가 누군가에게 속은 게 아닐까 미덥지 못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막무가내였다.
"엄마나 들면 되지, 왜 나한테 난리야!"
급기야 나도 버럭했다. 그런데 엄마가 누구인가. 여기서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 이번엔 회유 작전이다. 정 안 되면 보험료를 자기가 내주겠단다. 엄마가 왜 내 보험료를 내주냐고 안 된다고 하자, "어쨌든!"이라며 고집을 피운다. 누가 보면 엄마가 보험 판매 수당이라도 받는 줄 알겠다. 심지어 좋다며 친척들에게 소개까지 하고 다닌다는 말에 나는 더 뿔이 났다.
"대체 왜 이래? 이러다가 나중에 잘못 가입했다고 원망 들으면 어쩌려고!"
엄마의 오지랖은 왜 나이가 들수록 문어발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걸까. 어찌나 확장 속도가 빠른지 이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최근 유튜브 <핫이슈지>에 나온 개그우면 이수지의 부캐 황정자 선생과 딸의 에피소드를 보며 깔깔 웃었다. 그래. 원래 엄마랑 딸은 저렇게 싸워대는 법이다. 아무리 좋은 데를 데려가도 집밥이 최고다, 이 집은 물이 제일 맛있다며 숟가락을 내려놓는 엄마와 빈정상한 딸이라니. 우리 모녀를 몰래 찍은 줄 알았다.
맛난 건 같이 먹자며 눈치 없이 커다란 쌈을 싸서 장소 상관없이 입에 팍팍 넣어주고, 커피숍 가격 비싸다며 보온병에 음료를 싸들고 나와선, 음식은 조금만 시켜서 나눠 먹으면 안 되냐고 떼를 부리는 이수지의 연기가 어찌나 현실적인지 웃다가 입가에 경련이 났다. 그때, 영상 속 참다못한 딸이 한 마디 했다.
"우리 엄마 더 심해졌네? 너무 심해졌어!"
와아.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런데 며칠 뒤, 결국 내가 졌다. 엄마 말을 듣고 간병보험에 가입했다. 한동안 싸워대다 보니, 잔소리 뒤에 숨겨져 있던 엄마 마음을 알게 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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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척액 방광 수술 후에는 생리식염관주액으로 방광을 세척한다. 세척액은 한 시간도 안 돼 다 떨어지는데, 이 3리터짜리 세척액을 수십번 갈아끼워야 했다. |
| ⓒ 손미희 |
기침을 세게 하거나 발을 움직이거나 혹은 머리만 들어도 수술 부위가 터질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간병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짐을 싸서 내려갔다. 며칠 간병쯤이야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수술 자체는 짧은 시간에 끝났지만 하루 이틀 정도는 꼼짝없이 눕혀놓고 방광으로 들어가는 생리식염수를 요도에 꽂은 관으로 배출시켜야 했다. 나는 세척액을 40분 단위로 갈아 끼우느라 이틀 밤을 샜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더 힘들었던 건 엄마의 기침이었다. 평생 시장에서 장사하며 먼지를 마신 탓에 엄마에겐 잔기침이 습관처럼 남아 있었다. 엄마는 밤새 기침을 해댔고 가뜩이나 두툼한 배가 계속 들썩였다. 피가 비칠 때마다 나는 사색이 됐다.
그 뿐이 아니었다. 혈당검사를 하려하면 아프다고 징징거리고, 가뜩이나 어두워진 귀가 수술 때문인지 더 안 들려서 딴 소리를 해댔다. "뭘 해도 좋다" 하면 "목욕은 안 해도 된다"고 답했다. 수술 직후에는 절대 잠을 자면 안 되는데, 엄마는 계속 감기는 눈꺼풀을 못 이기고 아기처럼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결국 하루도 못 넘기고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멋쩍은 듯 씩 웃고는 또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엄마와 나는 원래도 사흘 이상 붙어 있으면 꼭 한 번은 싸운다. 밤새 노닥거리며 수다를 떨다가도 투덕댔다. 그런데 이상했다. 며칠 동안 간병을 하다 보니 속상하다가도 엄마가 안쓰러웠다. 언제 이렇게 내가 지켜줘야 하는 사람이 됐을까.
잠든 엄마의 얼굴을 자꾸만 만졌다. 원래도 하얀 얼굴이 더 아기 같았다. 곁에 있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엄마의 마음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엄마는 그때부터 먼 내 미래를 걱정했었나 보다.
"내가 네 간병은 못할 거 같으니 그거라도 들어주고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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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병보험을 들다 나를 위한 보험이지만 드디어 엄마의 소원을 들어줬다. |
| ⓒ 손미희 |
고령화 시대가 오면서 1인 가구가 점점 많아진다. 친정엄마도 1인 가구다. 하지만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보면 신기하다. 내 기준으로 떼도 엄마 이름이 나오고, 엄마 기준으로 떼도 내 이름이 나온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 가족이 생겨도 그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멀리 살아도, 아직 엄마는 나를 품에서 놓지 못했고, 나도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놓지 못했다. 쉰이 된 나는 여전히 엄마의 딸이고, 여든을 바라보는 엄마도 여전히 나의 엄마다. 엄마랑 싸울 때면 매번 "어휴, 내 가족이나 신경 써야지!" 하지만, 엄마를 도저히 놓을 수가 없다. 우리는 그렇게 애틋하다.
생각해 보니 황혼의 오지라퍼면 어떤가. 엄마는 지금처럼 씩씩하게 팔을 흔들고 다니면 된다. 이번엔 성지순례를 간다고 하니 외국까지 그 반경을 넓히고 올지도 모르겠다. 선글라스라도 하나 사 부쳐야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랑을 흩뿌리고 오길.
나는 이제 뒤에서 엄마를 지켜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가끔 브레이크도 걸어주며. 무엇보다 그 마음을 먼저 읽어주는 사람이 되면 된다. 엄마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은, 5월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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