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안전기본법 통과... 이제 국가가 유족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
2026년 5월 7일, 국회 전광판의 찬성 188표는 끝이 아니었다. 생명안전기본법 통과 뒤, 시행령과 예산이 첫 시험대에 올랐다. 국가는 이제 유족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 <기자말>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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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안전기본법 국회 본회의 통과 국민의 안전권을 기본권으로 명시한 생명안전기본법이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91명 중 찬성 188명, 기권 3명으로 통과되고 있다. |
| ⓒ 남소연 |
188명이 찬성한 날, 하지만 끝나지 않은 질문
숫자는 차가웠다. 그러나 방청석은 그렇지 않았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의사봉이 내려간 뒤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쿠팡 과로사 피해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는 자리에 앉아 주먹을 쥐어 보였다. 같은 법을 바라보는 두 마음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다른 유족들은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안도, 그리고 "갈 길이 너무 멀다"는 현재형의 아픔이었다.
그래서 5월 7일을 단순한 '통과의 날'로만 적을 수는 없다. 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일은 본회의장 밖에서 시작된다. 공장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물류센터 야간작업장 안에서, 지하차도와 병원과 공연장과 여객기 안에서 확인돼야 한다. 유족이 거리로 나가 진상규명을 외친 뒤에야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에 위험을 찾아내는 나라가 될 수 있는가. 생명안전기본법이 우리에게 던진 첫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법이 만들어진 날을 기뻐하는 일은 당연하다. 그러나 박수는 짧고, 현장은 길다. 생명안전기본법이 진짜 법이 되려면 이제 국회 의사록 밖으로 나와야 한다. 정부는 하위 법령을 미루지 말아야 하고, 국회는 예산을 따져야 하며, 기업은 '위험을 외주화'하는 습관부터 멈춰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도 "중앙정부 일"이라며 물러서 있을 수 없다. 공장, 물류센터, 지하차도, 병원, 학교, 항만의 위험은 결국 지역의 골목과 일터에서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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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안전기본법 통과에 눈물샘 터진 유가족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끼임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숨진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의 어머니 장연미씨, 쿠팡 과로사 피해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 세월호, 이태원, 제주항공 여객기,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유가족들이 7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 안전권을 기본권으로 명시한 생명안전기본법이 통과된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
| ⓒ 남소연 |
생명안전기본법의 핵심은 어렵지 않다. 첫째, 모든 사람의 안전권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법에 적었다. 둘째, 대형참사가 일어나면 독립조사기구가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맡도록 했다. 셋째, 정부가 5년마다 국가 차원의 안전권 보장 종합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박주민·용혜인·한창민 의원 등 77명이 2025년 3월 공동 발의한 법안이 2026년 5월 7일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안전은 행정 구호에서 권리의 언어로 옮겨왔다.
이 대목에서 박수만 칠 수는 없다. 법률 문장은 사람을 바로 살리지 못한다. 시행령, 예산, 인력, 자료 공개, 조사 방식이 뒤따라야 현장의 문이 열린다. '안전사회'는 좋은 말이지만, 작업대 위의 방호덮개가 빠져 있으면 공허하다. '미래 리스크 관리'도 회의실 문서로만 남으면 소용없다. 배달 노동자의 폭염 시간, 물류센터의 야간교대, 병원과 지하차도의 대피동선, 공장화재 때 끊기는 보고선까지 들어가야 한다. 안전혁명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사람이 죽고 나서야 보이는 고장 난 절차를 죽기 전에 고치는 일이다.
아직 현장은 법보다 빠르게 다친다
고용노동부가 2026년 3월 31일 발표한 잠정 통계를 보면 2025년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605명, 사고 건수는 573건이었다. 전년보다 16명 늘었다. 산업재해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숫자 하나는 분명히 말한다. 처벌도 필요하고 사과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다음 재난(사망)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생명안전기본법의 첫해는 '누가 책임자인가'만 따지는 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책임 추궁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질문만 남으면 현장 직원은 입을 닫고, 회사는 자료를 숨기며, 관청은 책임선을 긋는다. 다음 사고를 막는 데 필요한 질문은 조금 달라야 한다. "왜 경고가 묵살됐나", "왜 그 시간에 그 사람이 혼자 있었나", "왜 설비는 멈추지 않았나", "왜 피해 가족은 스스로 국회와 길거리로 나와야 했나" 이런 질문이 법의 첫해에 제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일본 실패학의 교훈: 한 사람의 실수만 보면 장치는 숨는다
일본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는 이 법을 읽을 때 함께 떠올릴 만한 사례다. 2005년 4월 25일, JR서일본 열차가 제한속도 70km 구간의 곡선에 시속 116km로 진입해 탈선했다. 107명이 숨지고 562명이 다쳤다. 겉으로 보면 운전자의 과속이었다. 그러나 일본 운수안전위원회 보고서와 실패학 자료가 남긴 교훈은 그보다 불편하다. 속도관리 장치가 그 곡선에 설치되어 있었는지, 지연 운행을 압박하는 조직문화가 있었는지, 교육과 징계가 운전자를 어떤 상태로 몰았는지까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벌하는 일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범인 찾기'에 주력하여 원인규명 및 재발방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예방-대비-대책-복구(부흥)라는 재난안전관리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안전장치가 없으면 정비해야 하고, 보고선이 막히면 새로 뚫어야 한다. 조직이 침묵을 강요했다면 침묵을 이익으로 만드는 구조를 깨야 한다. 일본의 실패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실패를 덮으면 참사가 반복되고, 실패를 해부하면 제도가 바뀐다.
미국 사고조사가 말하는 것: 면죄부도 정쟁도 아니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의 원칙도 참고할 만하다. 이 기관은 사고조사를 할 때 누구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지 정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사실을 모으고, 원인을 밝히고, 재발 방지 권고를 내는 데 초점을 둔다. 그렇다고 책임을 흐리자는 뜻이 아니다. 수사와 재판은 별도로 가야 한다. 다만 사고조사는 다음 피해자를 줄이는 공적 지식이어야 한다.
한국의 독립조사기구도 이 원칙을 피해 갈 수 없다. 정치적 공방의 장이 되면 실패한다. 기업과 행정기관의 면죄부 통로가 되어도 실패한다. 조사보고서가 누구나 읽을 수 있을 만큼 분명해야 하고, 권고가 어디까지 이행됐는지 공개되어야 한다. 조사위원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자료 접근권, 현장 보존권, 피해자 설명 절차, 권고 이행 점검표다. 그 표가 비어 있으면 법은 또 다른 약속으로 남는다.
미래 리스크 관리에 부처 칸막이는 없어야
안전은 더 이상 국내 행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6년 5월 7일 밤의 세계 뉴스만 보아도 그렇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휴전 논의 속에서도 공습과 포격 위반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중동의 해상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아시아 정제유 수출은 크게 줄었다. 2026년 4월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기상기구는 폭염이 농업과 식량 체계를 흔들고, 10억 명이 넘는 사람의 생계와 건강을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전쟁, 항로, 기름값, 폭염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파장은 금세 우리 생활권으로 들어온다. 항공유 공급이 줄면 비행편과 물류비가 흔들린다. 경유 가격이 오르면 통근버스, 화물차, 택배망의 비용이 올라간다. 폭염은 논밭의 작물만 태우지 않는다. 물류센터, 공장, 건설현장, 배달 노동자의 몸을 먼저 달군다. 인공지능 시대의 전력 수요와 데이터센터 화재 위험도 이제 생활권 안의 안전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생명안전기본법을 산업재해나 참사 뒤처리 법으로만 좁게 읽어서는 안 된다. 오늘의 위험은 국경을 넘고, 제도는 여전히 부처 칸막이 안에서 늦게 움직인다. 에너지 위기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일이고, 폭염은 환경부의 일이며, 노동자 온열질환은 고용노동부의 일이고, 재난 대응은 행정안전부의 일이라는 식으로 나누는 동안 현장의 위험은 한 사람의 몸과 한 도시의 일상에 한꺼번에 도착한다. 그 간격을 줄이는 것이 '미래 리스크' 관리다. 생명안전기본법이 안전혁명의 출발점이 되려면, 사고가 난 뒤 책임 부처를 찾는 행정이 아니라 위험이 커지기 전에 함께 움직이는 제도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첫해에 물어야 할 네 가지
2026년이 '안전 대한민국'의 원년이 되려면 첫해에 네 가지를 물어야 한다.
첫째, '5년 종합계획'은 표어가 아니라 가계부가 되어야 한다. 어느 현장에 얼마를 쓰고, 몇 명을 배치하고, 몇 년 안에 어떤 위험을 줄일지 숫자로 적어야 한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문장은 사고 보고서에도, 추모사에도 너무 많이 있었다.
둘째, 독립조사기구는 '빠른 발표'보다 '틀리지 않는 조사'를 택해야 한다. 속보 경쟁에 밀려 원인을 단정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무엇을 언제 설명할지 절차를 정해야 한다.
셋째, 권고 이행 현황을 공개해야 한다. 권고가 내려졌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실제로 바뀌었는지다.
넷째, 지방정부의 위험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항만, 물류센터, 반도체 공장, 지하차도, 병원, 학교, 축제장, 고령자 밀집지역은 각자 다른 위험을 품고 있다. 중앙정부의 한 장짜리 계획으로는 생활권의 위험을 잡아내기 어렵다.
이 네 가지가 정치적 구호나 거창한 목표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고 생활속에서 매뉴얼의 표준화 및 통합시스템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가 이번 제도화를 계기로 시작되기를 기원한다. 화재 대피 안내문이 실제 동선과 맞는지, 야간근무자가 혼자 위험 작업을 하지 않는지, 폭염 때 작업 중지 기준이 현장에 전달됐는지, 유가족이 같은 서류를 여러 기관에 반복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지. 법의 성패는 이런 작은 문턱에서 갈린다.
이제 국가가 먼저 도착해야 한다
2026년 5월 7일, 국회 전광판의 찬성 188표는 소중하다. 그러나 그 숫자가 2027년의 현장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다시 유족이 길에 선다. 김미숙씨의 안도와 박미숙씨의 아픔은 서로 다른 말이 아니라 같은 요청이다. "다음 가족은 여기까지 오지 않게 해 달라."
생명안전기본법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하지만 문을 여는 첫 열쇠일 수는 있다. 안전권을 법에 썼다면 이제 국가는 그 권리가 행사되는 장소까지 가야 한다. 공장 문 앞, 물류센터 새벽 통로, 침수 위험 지하차도, 폭염 속 작업장, 축제 인파가 몰리는 골목, 가족이 사고 소식을 기다리는 병원 복도까지 가야 한다. 그것이 제도전환이다.
안전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바꾸는 말이 아니다. 사고가 난 뒤에서야 '몰랐다'라고 말하는 관행을 줄이고, 위험을 먼저 본 사람이 손들 수 있게 만들고, 실패를 숨기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2026년이 안전 대한민국의 원년으로 기억되려면, 5월 7일은 법이 통과된 날이 아니라 국가가 유족보다 먼저 움직이기로 한 날이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에도 실립니다. 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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