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뒤에 숨을 수 있는 교사'는 없었다
[길도건 기자]
어느 교수가 운동회와 현장체험학습이 줄어든 현실을 두고 쓴 글을 보았습니다. 교사들이 법적 책임과 민원을 이유로 소극적으로 변했으며, 제도 뒤에 숨으려 하지 말고 교사로서의 힘과 아우라를 회복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의식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교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편안한 교사 생활'이 아닙니다. 정당한 교육활동 중 사고가 발생하거나, 악성 민원과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고소·고발의 대상이 되었을 때 교사 개인이 모든 법적·행정적·정신적 부담을 떠안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현장 교사들이 처한 구조적 위험을 충분히 살피기보다, 문제의 원인을 교사 집단의 용기 부족, 의욕 부족, 민원 대응 능력 부족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교권침해와 송사를 직접 겪어본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립니다. 교사의 아우라가 고소장을 막아준 적은 없었습니다. 위엄이 경찰 조사를 대신 받아준 적도 없었습니다. 신념이 수사 개시를 막아준 적이 없었으며, 교사적 자존심이 소송 비용과 치료비를 대신 지불해준 적도 없습니다. 교육활동을 성실히 수행했더라도 민원과 신고, 수사가 시작되는 순간 교사는 한 개인으로 절차 앞에 서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겪는 불안과 모욕감, 비용과 평판 손상은 마음가짐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글쓴이는 구체적인 근거 없이 "사회가 교사들을 돕고 지지할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러나 교사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지지가 실제 사안 앞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수없이 많은 순간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응원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는 지원 체계입니다. 수사 초기 법률 조력, 악성 민원 차단, 학교와 교육청의 즉각적 대응,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간 주의의무를 심각하게 해태한 경우에만 처벌이 내려진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교사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최종 판결만이 아닙니다. 무혐의가 나오더라도 그 과정에서 이미 교사는 깊이 무너지고 소진될 수 있습니다. 수사와 감사, 민원과 항의, 언론화 가능성, 학교 내 고립은 최종 판결 여부와 별개로 현실에서 개인이 감내해야만 하는 피해입니다. 교육활동 보호는 단지 억울한 처벌을 막는 것만이 아니라, 억울한 절차에 교사가 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20~30년 전 선생님들은 어떻게 살아냈느냐는 질문도 지금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학부모 민원 구조, 아동학대 신고 체계, 온라인 여론, 학교와 교사의 권한 관계, 법적 책임 환경이 모두 20~30년 전과 같지 않을뿐더러 과거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문제가 드러나는 방식과 책임 구조가 달랐기에 눈에 띄지 않았던 것입니다. 변화한 환경에 맞는 보호 체계를 요구하는 것을 나약함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학부모와 소통하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소통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민원이 소통 부족에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민원은 설명을 하면 할수록 더 커지고, 어떤 민원은 사실관계가 아니라 감정과 요구를 앞세웁니다. 이런 경우 필요한 것은 교사 개인에게 더 잘 소통하라는 조언이 아니라, 학교 차원의 공식 대응과 교사를 보호할 절차입니다.
민원 거부권 역시 민원을 다루기 싫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당한 문제 제기와 반복적·모욕적·위협적·업무방해적 악성 민원을 구분하자는 것입니다. 교사는 학부모와 소통해야 하지만, 무한정 민원 응대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원을 다루는 힘은 개인 교사의 인격 수양만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관리자 책임, 교육청 지원, 법률적 보호, 악성 민원 차단 기준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교사들의 희생정신이 부족하다는 발언은 현장의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교사들이 "무리하지 말자"고 말하는 것은 아이들을 위해 애쓰기 싫어서가 아닙니다. 더 이상 개인의 희생으로 제도 공백을 메우는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헌신은 강요될 수 없습니다. 또한, 헌신이 기관과 제도의 책임 회피를 가리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운동회가 짧아지고, 현장체험학습이 줄어드는 현상을 단순히 교사의 의욕 저하나 나태로 해석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현장 교사들이 교육활동의 법적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그 신호를 보고 '교사들이 소극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제도는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는 말은 절반은 맞습니다. 그러나 좋은 제도는 사람이 사람답게 일할 수 있게 합니다. 교사가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라면, 더욱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사람을 다루는 일은 감정과 관계, 책임과 판단이 복잡하게 얽힌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 "민원을 핸들링하는 힘을 키워라"라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닙니다.
지금 필요한 말은 '제도 뒤에 숨지 말라'가 아닙니다. 정당한 교육활동을 한 교사가 혼자 책임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고, 악성 민원과 무고성 신고 앞에서 교사를 홀로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보호 제도가 행정업무가 아니라 실제 보호로 작동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사의 용기를 요구하기 전에, 교사가 용기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교육활동을 하다가 무너지지 않을 최소한의 보호를 요구하는 것을 '제도 뒤에 숨고 싶어 하는 태도'로 읽는 것은, 지금의 교육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 없이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한비자 '현학' 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不恃人之爲吾善也,而用其不得爲非也"
사람들이 선하게 행동하리라 기대하지 말고, 그릇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의 선의와 용기와 아우라에 기대어 위험을 감당하게 할 것이 아니라, 교사가 부당한 위험에 홀로 노출되지 않도록 제도와 책임 구조를 먼저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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