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기독교’ 그저 싸울 명분이 필요했나

맹경환 2026. 5. 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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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책과 길]
만들어진 뿌리
소피 베시 지음, 주명철 옮김
여문책, 104쪽, 1만5000원
아돌프 아이히만(유리 부스 안)은 1961년 12월 15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저자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계기로 서구 사회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공동의 책임과 죄책감을 공식화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유대-기독교’라는 담론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이란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달 말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유대교도로 보이는 남성이 가톨릭 수녀를 발길질하는 영상이 공개돼 국제적 공분을 산 적이 있다. 이스라엘에서 기독교 혐오 범죄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종교 자유 데이터 센터(RFDC)에 지난해 접수된 통계를 보면 기독교 성직자에게 침 뱉는 등의 행동은 181건, 최루액 살포나 돌팔매 등 직접적 폭력은 60건에 달했다. 올해도 3월까지 예루살렘 구시가지 인근에서 33건의 유사 사례가 보고됐다고 한다. ‘유대-기독교 문명’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서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스라엘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역설적인 장면이다.


책은 국제 정치에서 자주 언급되는 ‘유대-기독교’ 담론의 숨겨진 위선을 철저하게 파헤친다.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이러한 배경은 저자가 서구와 비서구,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교 사이의 복잡한 역학 관계를 내부자이자 외부자의 시선으로 동시에 바라보게 만든다.

저자에 따르면 ‘유대-기독교’라는 용어는 1980년대 전후에 일상화됐지만, 실체가 없는 정치적 용어에 불과하다. 유럽 역사의 대부분은 유대인을 적대하는 반유대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기독교 유럽은 유대인을 ‘예수를 죽인 민족’으로 규정하며 박해했다. 저자는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은 “나치즘이 보여준 반유대주의 극단”이며 “수 세기에 걸친 반유대주의 전통 없이는 결코 출현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한동안 유대인 차별은 계속됐지만 서구 유럽인들은 1961년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계기로 공동의 책임과 죄책감을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반유대주의는 ‘친유대주의’로 전환된다. 저자는 “나치의 절멸 기계가 저지른 참혹한 실상이 드러나자, 유럽과 서구는 지난 200년 동안 내세운 (인권, 자유 등의) ‘가치들’을 서둘러 복구해서 그것의 유일한 선포자이자 수호자라는 체면을 세워야 했다”고 말한다. 서구 사회는 ‘유대-기독교’라는 용어를 통해 유대교를 서구 문명의 뿌리로 뒤늦게 편입시키면서 과거와 현재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 어떤 행동을 하든 ‘영원한 희생자’이자 ‘확정적 무죄 상태’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팽창주의를 용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게티이미지뱅크


유대-기독교라는 개념은 역사를 은폐하면서 다른 면에서는 ‘배제’로 이어졌다. 사실 이슬람과 기독교는 기독교와 유대교의 조합보다 더 많은 접점이 있지만 유대-기독교라는 틀 안에서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유대-기독교의 가치 체계에 속하지 않는 이슬람은 자연스럽게 반문명적이고 외부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2016년 프랑스의 몽테뉴 연구소가 프랑스의 주요 주간지 표지를 분석했는데, 매주 평균 한 권 이상의 잡지가 이슬람을 표지 기사로 다뤘고, 예외 없이 폭력과 증오가 주제였다.

배제는 또 다른 배제를 낳는다. 1940년 말 아랍-이슬람 지역의 유대인 인구는 약 100만명이었지만 현재는 모로코와 튀니지의 작은 공동체, 그리고 튀르키예와 이란의 수천명을 제외하면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저자는 “시오니즘과 아랍 민족주의는 내부의 모든 타자성과 다양성을 거부하며 ‘상상의 순수한 정체성’을 지키려는 강박적 태도에서 일치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도 아랍권 출신 유대인인 ‘미즈라힘’을 배제했다. 이스라엘 건국 후 모로코와 예멘, 이라크 등에서 온 유대인들은 유럽 출신 유대인과 달리 환대받지 못했다. 동방에서 온 유대인들은 해충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살충제 가루를 뒤집어써야 했고, 사막에 건설된 신도시에 수용되기도 했다. 히브리어가 아닌 아랍어를 썼던 아랍권 유대인들은 언제든 아랍에 동조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으로 취급받았다. 1980년대 말부터 이어진 에티오피아 유대인 유입 과정에서도 비슷한 역사가 반복됐다. 비슷한 시기 이스라엘로 이주한 러시아 유대인과 달리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은 임시 거처에 갇혀 사회 하층부로 밀려났다.

이스라엘은 과거 희생자의 대변인이 아닌 ‘가해자’로 변해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기독교 문명’ 수호자를 자처하며 팔레스타인 억압이나 국제법 위반도 불사하고 있다. 저자는 “국제 여론은 이제 이스라엘 국가를 가해자 진영으로 분류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이 모든 유대인을 대표한다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범죄에 책임을 져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인을 분리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한다. 저자에 따르면 과거 유대인들은 소수자로 정착했던 곳에서 결코 무기를 들지 않는 전통을 지켜 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인은 주위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무제한적인 폭력을 동원하는 일만이 자신을 지켜줄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다. 저자는 “이제 유대인과 이스라엘인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을 직시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저자는 유대-기독교라는 거대한 담론을 해체하려는 목적을 분명히 한다. “유대-기독교라는 말은 얼마든지 가능한 화해의 길을 방해하고 오늘날의 갈등을 치유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려는 이데올로기적 가공물에 불과하다. 이러한 허상을 깨부수지 않는 한, 우리는 편견 없이 역사의 모든 진실을 읽어낼 수 없다.”

⊙ 세·줄·평★ ★ ★ ·작은 책이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란 전쟁의 기원을 헤아릴 수 있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인은 다르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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