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시계를 보면 안 됐다? 금기를 뒤집은 패션계 결정적 물건들







특히 20세기 초반부터 이어진 미니어처 무브먼트 경쟁은 기술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하이 주얼리 워치의 근간이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예거 르쿨트르의 ‘칼리버101’을 들 수 있다. 1929년 처음 개발된 이 무브먼트는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계식 무브먼트 중 하나로 기록되며, 다이얼을 숨긴 채 주얼리처럼 착용하는 시계 디자인을 가능하게 했다. 바쉐론 콘스탄틴 역시 ‘레이디 칼라’ 컬렉션을 통해 시크릿 워치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 등 주요 시계 어워드에서 수상하며 각 하우스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억압에서 시작해 예술의 영역에 이른 시크릿 워치의 진화는 여성을 위한 시계가 거둔 가장 우아한 반전이다.

금기에 대항하고 제약을 발판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연 물건은 패션사에 분명하게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는 샤넬과 생 로랑의 슈트다. 가브리엘 샤넬이 만든 실루엣 해방의 첫 전환점은 1910년대다. 그는 당시 남성용 언더웨어에 쓰이던 저지 소재를 여성 스포츠웨어에 도입했고, 이는 옷에 몸을 맞추던 여성복의 관념을 바꿔놓은 혁명적 선택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트위드 슈트는 1954년 하우스의 상징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1910년대 시작한 몸의 해방이 1950년대에 이르러 우아하고 현대적인 유니폼의 형태로 완성된 셈이다. 트위드가 왜 중요했는지는 명확하다. 샤넬은 영국 귀족 남성의 아웃도어나 사냥 복식에 쓰이던 트위드를 여성복으로 가져와 성별과 계급의 구분을 흔들었다. 비구조적인 재킷, 활동성을 높인 실루엣, 장식보다 움직임을 우선한 설계는 여성복이 더 이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생활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후 전후 시대가 열리고, 1947년 크리스찬 디올이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스커트를 강조한 뉴룩을 발표하면서 여성 실루엣은 다시 한번 극적인 곡선으로 회귀한다. 그래서 1966년 이브 생로랑이 르 스모킹을 내놓았을 때, 단순히 ‘여성이 바지를 입었다’는 개념을 넘어 다시 한번 여성의 몸을 권력 축으로 재설계한 사건처럼 받아들여졌다. 르 스모킹은 본래 남성 흡연실에서 입던 턱시도를 여성복에 들여온 디자인이었다.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여성의 바지 착용을 부적절하다 여겼고, 실제로 팬츠 슈트를 입은 여성이 식당이나 호텔에서 입장을 거부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생 로랑 박물관은 르 스모킹을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 설명하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 역시 ‘성별 규범을 뒤흔든 디자인’으로 다룬다. 르 스모킹이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그것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사회적 저항을 실제로 통과한 옷이었기 때문이다. 르 스모킹의 상징성을 대중문화의 장면으로 굳힌 여성들도 있다.

1971년 비앙카 재거가 결혼식에서 선택한 화이트 턱시도 슈트와 낸 켐프너가 입장을 거부당한 레스토랑에서 바지를 벗어 던지고 재킷을 미니드레스처럼 연출한 일화는 르 스모킹의 저항적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킨 장면이다. 이 전설적인 일화들은 여성이 남성복을 입는 일이 한때 얼마나 급진적인 사건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샤넬과 생 로랑의 슈트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여성에게 자유를 건넸다. 하나는 실루엣의 해방을, 다른 하나는 권력의 전위를 선사한 것.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깨뜨린 금기는 완전히 익숙한 얼굴로 일상 속에 스며 있다. 한때 논쟁이던 것이 이제는 스타일이 됐고, 여성은 더 이상 누군가가 허락한 옷을 입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실루엣을 선택하는 존재가 됐다. 이 두 슈트가 남긴 진짜 유산은 유행이 아니라 선택권일지 모른다.
Copyright © 코스모폴리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여성 1인 가구 400만 시대, 여성들이 다시 쓰는 가족 공식 - LIFE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
- ‘엄마·딸·자매’ 그 이름 뒤에 숨은 여성의 이야기 - CELEBRITY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 샤넬은 12, 불가리는 1.85? 시계에 담긴 숫자의 의미는? - FASHION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
- '여성스러움'이 페미니즘의 천적인 이유 - LIFE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OREA) | 패션 매거
- '나의 완벽한 비서' 이준혁과 안경? 코스모폴리탄 4월호 화보와 인터뷰 풀버전 보기 - CELEBRITY | 코
- 페미니즘과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착한 남자 아이돌의 정체? 차웅기! - CELEBRITY | 코스모폴리탄 코
- 남자가 말하는 페미니즘 - CAREER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OREA) | 패션 매거진, 패션 잡지,
- 여성스러운 게 뭔데? 2025 FW 신상 컬렉션으로 본 새로운 여성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