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함 6척과 4명의 PKO... 일본 신안보정책의 두 가지 방향
[김영근 기자]
|
|
| ▲ 해상자위대 공식 사이트의 DE ‘ABUKUMA’ Class 사진. 기준배수량 2000톤, 길이 109m, 승조원 약 120명으로 소개하고 있다. |
| ⓒ 일본 해상자위대 홈페이지 |
2026년 5월 5일 마닐라에서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은 길베르토 테오도로 주니어 필리핀 국방장관과 만났다. 일본 방위성의 공동성명은 두 나라가 방위장비·기술 협력을 더 밀고 가기로 했고, 이를 위한 협의의 틀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일본이 아부쿠마형 호위함과 TC-90 항공기의 조기 이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 AP >는 가능한 대상이 최대 6척의 중고 아부쿠마형 호위함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 표현은 "수출 확정"이 아니라 "이전 협의"로 읽어야 한다. 일정, 가격, 함정 상태, 무장 처리, 최종 사용 조건은 아직 협상 전 단계다.
그런데 같은 일본이 현재 유엔 남수단 임무, 즉 UNMISS에 파견한 자위대 인원은 본부요원 4명이다. 일본 외무성은 2026년 4월 17일 자료에서 육상자위대 참모요원이 2011년부터 UNMISS에 파견돼 왔고, 공병부대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활동했으며, 현재는 본부요원 4명이 근무 중이라고 밝혔다.
6척의 호위함과 4명의 평화유지 요원. 이 간격이 일본 신안보정책의 현재를 보여준다. 일본은 재무장의 문턱을 넘고 있는가. 아니면 평화유지의 방식을 새로 짜고 있는가.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4월의 규칙 변경, 5월의 첫 시험대
이번 일은 "일본이 방위력을 키운다"는 오래된 보도의 반복이 아니다. 핵심은 시점이다.
일본 정부는 2026년 4월 21일 방위장비 이전 3원칙과 운용지침을 고쳤다. 기존에는 구조, 수송, 경계, 감시, 소해 등 이른바 5개 유형 중심으로 이전 가능 분야가 묶여 있었다. 개정 뒤에는 살상·파괴 능력이 있는 장비도 조건부 이전 검토 대상이 됐다. 수출 상대국은 자위권 행사에만 사용하겠다고 약속해야 하고, 전투가 벌어지는 국가에는 원칙적으로 넘기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었다. 하지만 사안별 판단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맡고, 국회 사전승인은 필수 절차가 아니다. 결정 뒤 국회의원에게 통지하는 구조다.
그러니 5월 5일의 필리핀 협의는 단순한 외교 일정이 아니라고 본다. 규칙을 바꾼 뒤, 그 규칙이 실제 바다로 나가는 첫 시험대다. 브레이크가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운전석은 정부 쪽으로 더 가까이 옮겨졌다.
마닐라 협의 다음 날인 5월 6일, 일본 자위대는 미국·호주·필리핀군과 함께 필리핀 북부에서 열린 발리카탄 합동훈련 중 88식 지대함미사일을 발사했다. <로이터>는 이 훈련이 아부쿠마형 호위함과 TC-90 항공기의 이전 논의가 시작된 시점에 이뤄졌다고 전했다. 일본의 신안보정책은 문서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훈련장과 방위장비 협상 테이블에서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필리핀은 왜 일본 호위함을 원하나
필리핀 입장에서 아부쿠마형은 단순한 중고 선박이 아니다.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해경과 해군은 중국 해경, 해상민병대, 군함의 압박을 반복해서 겪고 있다. 일본과 필리핀의 공동성명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힘이나 강압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에 반대한다고 적었다. 두 장관은 특히 필리핀을 상대로 한 중국의 위험하고 강압적인 활동이 심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아부쿠마형은 해상자위대 공식 설명 기준으로 기준배수량 2000톤, 길이 109m, 승조원 약 120명의 호위함이다. 76mm 속사포, SSM 장치, 아스록 장치, 3연장 단어뢰 발사관 등을 갖춘다. 최신 이지스함도 아니고 전쟁의 판도를 바꿀 결정적 무기도 아니다. 그러나 필리핀 해군의 현실에서는 초계, 감시, 대잠 대응의 밀도를 높이는 장비가 될 수 있다. 일본에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자위대가 훈련장에만 서는 것이 아니라, 방위산업과 외교가 함께 움직이는 수출국으로 바뀌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숫자로 읽는 일본의 변신: 방위비 10조 엔 시대
돈은 정책의 속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2026회계연도 방위 관련 비용은 약 10조 6000억 엔(한화 약 98조 원)으로, 2022년 GDP 기준 약 1.9% 수준이다. 일본은 2027회계연도까지 방위 관련 지출을 GDP 2%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워 왔다. "2% 돌파"라고 쓰면 부정확하지만, 2% 목표에 매우 가까워진 것은 분명하다.
일본은 장거리 미사일, 무인 장비, 우주·사이버 영역,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에 돈을 싣고 있다. 방위는 더 이상 예산표의 한 줄이 아니다. 산업, 외교, 기술정책을 묶는 큰 항목이 됐다.
한국 방산업계도 이 변화를 남의 일로 볼 수 없다. <코리아타임스>는 일본의 무기수출 규제 완화가 특히 해군 함정 시장에서 한국과의 경쟁을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양욱 연구위원은 일본이 동남아에서 오랜 공적개발원조 경험을 통해 신뢰를 쌓아 왔다고 봤고, 군사평론가 김대영은 일본 기업의 수출 경험과 대량생산 능력이 아직 제한적이라고 짚었다. 위협이라고만 부풀릴 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도 아니다. 조선, 외교, 안보, 산업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판이 열리고 있다.
재무장의 언어와 PKO의 빈칸
일본 정부의 공식 언어는 여전히 '평화국가'에 머문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방위장비 이전 3원칙 개정과 관련해 유엔헌장을 준수한다는 평화국가의 기본 이념과 그동안의 평화국가로서의 걸음을 견지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떤 단어가 실제 예산과 제도에서 앞줄에 서느냐이다. 호위함 이전 논의는 빠르게 전진하는데, 유엔 평화유지활동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UNMISS 본부요원 4명은 의미 있는 존재이지만, 일본의 국력과 예산 규모를 생각하면 상징성이 더 크다.
평화유지활동은 눈에 덜 띈다. 뉴스 사진도 덜 나오고, 선거 구호가 되기도 어렵다. 그러나 안전사회는 총구가 낮아지는 곳에서 만들어진다. 민간인 보호, 지뢰 제거, 재난구호, 의료지원, 피난민 지원, 휴전감시, 현지 경찰·행정 역량 강화는 전투함보다 덜 화려하지만 분쟁이 재난으로 번지지 않게 붙잡는 일이다.
일본이 정말 '평화국가'의 언어를 지키려 한다면, 방위장비 수출의 속도만큼 PKO(평화유지활동, Peace Keeping Operation)와 인도주의 안전망도 보이게 해야 한다.
실패학의 질문: 속도는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일본 사회에는 실패를 기록하고 분석해 같은 실수를 줄이려는 문화가 있다. 그러나 실패학의 핵심은 과거를 정리하는 데만 있지 않다. 사고가 나기 전에 시스템이 어디서 부러질지 묻는 데 있다. 무기수출 정책도 다르지 않다.
최종 사용 감시는 충분한가. 제3국 이전을 막을 장치는 실제로 작동하는가. 충돌이 커질 때 수출국 일본은 어디까지 책임지는가. 국회와 시민사회가 사전에 따져볼 시간은 보장되는가. 일본의 전쟁 기억을 가진 이웃 나라들이 느끼는 불안을 '과거사 감정'으로만 밀어낼 것인가.
이 질문들이 빠지면 수출은 제도전환이 아니라 속도전이 된다. 속도전은 처음에는 효율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기가 오면 기록과 통제의 빈칸이 비용으로 돌아온다. 일본 여론이 찬반으로 갈리는 것도 단순한 반(反)안보 정서만은 아니다. 한번 놓친 브레이크가 어디까지 굴러가는지 아는 사회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안전혁명은 무엇을 보아야 하나
한국은 일본의 변화를 보며 두 가지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는 "역시 일본은 군국주의로 간다"는 즉각적 단정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방산 수출도 잘되니 상관없다"는 산업적 무심함이다. 두 가지 전제가 모두 충분조건도 바람직한 대응태세이지도 않다.
남중국해의 불안은 한국의 교역로, 에너지 수송, 해양보험, 공급망과 연결된다. 일본의 방위장비 수출은 한국 조선·방산과 경쟁할 수 있고, 동시에 동아시아 안보질서의 규칙을 바꿀 수 있다.
안전혁명의 관점에서 보자면, 핵심은 무장 자체에 대한 찬반보다 미래리스크 관리다. 억제, 외교, 산업, 재난대응, 인권, 민주적 통제를 하나의 설계도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안전사회는 강한 무기만으로 오지 않는다. 위험을 빨리 감지하고, 이해당사자가 제때 말하고, 의회가 감시하고, 시민이 질문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한국이 일본에 물어야 할 질문도 이 지점이다. "무엇을 팔 것인가"보다 "무엇을 통제할 것인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보다 "어떤 제도로 위기를 낮출 것인가".
결론: 무기가 아니라 제도가 방향을 정한다
일본의 신안보정책은 지금 두 문 앞에 서 있다. 하나는 재무장의 문이다. 방위비를 키우고, 살상 능력이 있는 장비의 조건부 이전을 열고, 동맹과 훈련의 밀도를 높이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평화유지의 문이다. 분쟁을 낮추고, 재난을 막고, 지역사회가 버틸 힘을 키우는 길이다.
현실의 일본은 둘 다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의 긴장은 실제이고, 필리핀의 안보 수요도 실제다. 그러나 순서가 방향을 만든다. 6척의 호위함이 빠르게 움직이고 4명의 PKO가 그대로 남는다면, 일본의 안보 상상력이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 보인다. 평화헌법은 문장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수출 심사, 국회 감시, 최종 사용 추적, 주변국에 대한 설명 책임, PKO와 재난구호의 확대가 함께 보일 때 비로소 제도가 된다.
한국도 일본의 총구만 볼 일이 아니다. 그 총구를 붙잡는 손, 그 손을 감시하는 규칙, 그 규칙을 만드는 시민의 힘을 봐야 한다. 미래리스크 관리의 시대에 안보는 위기에서 이기는 기술만이 아니다. 위기가 재난으로 번지지 않도록 사회의 브레이크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것이 안전혁명의 언어로 읽는 일본 신안보정책의 진짜 쟁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에도 실립니다. 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삼성전자 노조 파업, 이대로면 대중 지지 어렵다
- 개헌안 투표 불성립, 방청석은 국힘에 "부끄러운 줄 알아!"
- 기후에너지환경부 내부 문건이 충격적인 이유
- 교실 덮친 '삼전·닉스 신드롬'... 의치대 인기까지 흔든다
- '오빠'·'따까리'·'국민은 몰라' 민주당 연일 실언... "샤이보수 다 깨운다"
- [오마이포토2026] "전쟁화근 미군 철수" 대학생 8명 미대사관 기습시위
- 화진포 '김일성 별장'의 원래 주인에 관한 슬픈 이야기
- 청와대 "개헌안 투표 불성립 유감... 국힘 투표 참여해야"
- 수원지검 지휘부 성명에도... 국정원, '리호남 부재' 재확인
- 추경호 "정치 특검 아닌 시민 심판 받으려고 출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