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대중화’의 조건…가격 장벽·충전 병목·안전 신뢰
올해 전기차 시장은 보조금 확대와 유가 불안, 보급형 모델 출시가 맞물리며 어느새 ‘100만 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시적 반등만으로 전기차 대중화가 도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한다. 충전 편의성과 배터리 원가 경쟁력이 높아지고, 안전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진정한 전성시대가 열린다는 조언이다.

배터리·충전 병목부터 풀어야
전문가들은 전기차 대중화의 핵심 조건으로 ‘가격 경쟁력’을 꼽았다. 전기차는 가속력과 정숙성, 주행 성능 면에서 내연기관차를 넘어선 영역이 많다. 문제는 구매 시점의 부담이다. 소비자는 총소유비용보다 당장 지불해야 하는 차량 가격에 더 민감하다. 보조금이 줄거나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조기 소진되면 수요가 빠르게 흔들리는 이유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시장이 보조금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우선순위는 가격 경쟁력, 브랜드 신뢰, 성능 순”이라며 “소비자가 가장 크게 느끼는 장벽은 초기 구매가격으로, 잔존가치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 가격 부담은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 공습이 거세다는 점이 변수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기차 성능은 내연기관차를 능가하지만 가격이 여전히 비싸다”며 “국내 전기차 업체들은 원가 경쟁력을 높이려 하지만, 이미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규모의 경제를 키운 데다 배터리부터 완성차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뤄 경쟁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K전기차가 가격 장벽을 낮출 핵심 변수는 ‘배터리 기술’이다. 전기차 원가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다. 배터리 비용을 낮추기 위한 LFP(리튬인산철)와 미드니켈 배터리 확산은 보급형 전기차 출시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 LFP는 원가와 안전성에서 강점이 있고, 미드니켈은 에너지 밀도와 가격 사이의 합리적 절충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원가 절감이 곧장 소비자 가격 인하로 이어지는 구조는 아니다. 배터리 기업은 대규모 투자비를 회수해야 한다. 완성차 업체는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각종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개발비를 떠안아야 하는 실정이다.
충전 인프라도 대중화의 병목이다. 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의 전기차 충전소 통합정보시스템 차지인포에 따르면 국내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2020년 약 3만4714개에서 올해 4월 29일 기준 49만9132개로 빠르게 늘었다.
하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은 여전하다. 원인은 양적 확대와 실제 사용 환경의 불일치다. 아파트와 도심 거주자는 야간에 안정적으로 충전할 공간이 필요하고, 장거리 이용자는 고속도로와 거점 지역에서 짧은 시간 안에 충전할 초급속 인프라를 원한다. 전체 전기차 충전기 중 급속 충전기는 10% 내외에 그친다. 설치 장소와 사용 수요가 맞지 않으면 충전기는 늘어도 체감 편의는 개선되지 않는다는 평가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충전 인프라 개선 방안은 단순 보급량 확대보다 고장률 관리, 급속 충전 우선 배치, 앱·결제 표준화, 시간대별 요금제 고도화”라며 “고속도로·상업시설·대단지 아파트 등 주요 거점에는 100㎾ 이상 급속 충전기를 집중적으로 확충하고, 플러그 앤 차지(Plug and Charge) 같은 기술 표준화를 통해 결제 단계를 단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러그 앤 차지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최초 한 차례 충전사업자 회원 인증과 결제 수단 등록을 하고, 이후 전기차에 충전기를 연결만 하면 회원 인증부터 결제까지 충전에 필요한 모든 절차가 자동으로 이뤄지는 서비스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중국의 충전기 보급 대수는 2800만기 수준인데 우리는 아직까지 50만기에 불과하다”며 “중국은 배터리 교환형, 무선 충전, 로봇 충전 등 다양한 충전 기술을 확보했지만 우리는 완속 충전기 중심으로 초기 인프라가 깔려 다양성에서 뒤처졌다”고 꼬집었다.

배터리 관리·정책 실행이 승부처
전기차 화재와 안전성 이슈는 소비 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화재 빈도만 놓고 보면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특별히 높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소방청과 국토교통부의 2024~2025년 누적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자동차 1만대당 화재 건수는 내연기관차가 약 1.88건인 반면, 전기차는 약 1.32건 수준으로 나타났다. 산술적 발생 빈도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약 30%가량 낮다. 하지만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지하주차장 화재, 대규모 재산 피해, 긴 진압 시간 같은 장면이 반복 노출된다. 문제는 소비자는 통계보다 인지된 위험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화재 우려는 신차 구매 지연으로 이어지고, 중고차 잔존가치와 보험료에도 영향을 준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안전 관리 체계를 ‘차량 전 생애주기’로 넓혀야 한다고 본다. 배터리 이력 관리, 잔존가치 평가, 사고 시 교체 기준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제조사의 책임 범위 역시 명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무선 업데이트를 통한 배터리 관리 시스템 점검, 이상 징후 통보, 선제적 리콜이 소비자 신뢰 회복의 기본 장치가 될 수 있다. 이호근 교수는 “한 번의 전기차 화재 사고가 브랜드 신뢰 하락, 중고차 가치 하락,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제조사는 배터리 잔존가치 반영, 사고 시 교체 기준 등을 명확히 해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줄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하이브리드차와의 경쟁도 넘어야 할 산이다. 전기차 전환의 과도기적 대안으로 여겨졌던 하이브리드차는 충전 부담이 없고 연비 개선 효과가 분명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전기차가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면 소프트웨어, 충전 편의, 에너지 활용에서 하이브리드가 제공하지 못하는 차별성을 보여줘야 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전기차 기반 위에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과 자율주행차가 확산하는 것이 차별화 요인”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전기차 업체의 저가 공세는 K전기차 산업의 가장 큰 외부 변수다. 중국 업체는 배터리와 부품, 완성차를 수직계열화했고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다. 여기에 LFP 배터리와 보급형 모델을 앞세워 해외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한국 업체가 단순 가격 경쟁으로 맞서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정부 정책도 단순한 보조금 지급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배터리 정보 공개, 충전 인프라 투자 유도, 중고 전기차 시장 제도 정비까지 산업 생태계 전반을 짚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호근 교수는 “중국 전기차 업체의 강점은 수직계열화와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한 규모의 경제”라며 “한국은 프리미엄 기술, 안정적 공급망 생태계를 앞세워 경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8호(2026.05.06~05.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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