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출 감옥'에 갇힌 영어 지문, 이게 과연 최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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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올해로 29년째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수능 영어에 나름의 전문성과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는 편이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모의고사에 나오는 영어 텍스트를 꾸준히 분석해왔다.
지난 4월 9일, 필자는 기사를 통해 영어 시험 난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출제자가 기출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학술적인 논문 등에 숨은 지문을 가져오는 경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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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섭 기자]
필자는 올해로 29년째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수능 영어에 나름의 전문성과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는 편이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모의고사에 나오는 영어 텍스트를 꾸준히 분석해왔다.
지난 4월 9일, 필자는 기사를 통해 영어 시험 난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출제자가 기출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학술적인 논문 등에 숨은 지문을 가져오는 경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관련기사] 고3 3월 모의고사 영어, 90점 이상 1등급 비율 4.08%에 그쳐 https://omn.kr/2hpso
34번은 아일랜드 박사 논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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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3 5월 모의고사 영어 34번 이 글은 2022년 University College Dublin(UCD, 더블린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89페이지에 나온다. 프랑스의 유명한 석학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관점을 소개하고 있다. |
| ⓒ 경기도교육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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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사학위 논문 표지 2022년 University College Dublin(UCD, 더블린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표지인데, PhD(박사학위)라는 문구가 보인다. |
| ⓒ 신정섭 |
예상컨대, 정답률도 아주 낮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필자가 문제 삼는 것은 모의고사 영어 지문의 출처이다. 모국어가 영어인 아일랜드 대학원생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학술적인 글을 왜 한국의 고등학생이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다. 모르긴 해도, 출제자 역시 처음 읽었을 때는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한국은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가 아니다. 제2 언어(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로 영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외국어(EFL: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로 '학습'하는 언어 환경이다. 하물며, 영어를 전공한 대학(원)생도 아닌 고등학생에게 이런 글을 읽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34번 문항은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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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3 5월 모의고사 23번 2023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라는 책에서 발췌한 글인데, 영어 교사가 읽기에도 버거운 어려운 내용이다. |
| ⓒ 경기도교육청 |
위 지문에서 파란색으로 표시한 부분, "'유기체(organism)'라는 말은 적어도 1790년 Immanuel Kant의 < Critique of Judgment >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유기체를 자기 조직화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유전자 중심적 관점은 유기체로부터 그것의 본래의 자아를 박탈한다"라는 내용은 영어 교사가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기출 감옥'에 갇히면 답 없어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모의고사를 출제하는 분들의 고충을 모르지 않는다. 수험생이 어디선가 봤던 지문, 또는 행여 사설 학원에서 다룬 적이 있는 지문을 평가 문항으로 내면 엄청난 사회적 비판을 받게 되니, 날이 갈수록 구글 검색으로도 찾지 못하는 숨어 있는 텍스트를 '발굴'하는 것 아닌가.
'기출 시비에 걸리지 않는 게 고등학교 교육과정보다 더 중요한가?' 이렇게 묻고 싶다. 더군다나 영어는 절대평가로 치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나 교육부 차원에서 출제자가 '기출 감옥'에 갇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학술적인,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원전을 찾아 헤매는 일이 없도록 명시적인 기준을 제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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