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만 보면 '꽥' 소리 지르던 나, 여기선 달라집니다

이정미 2026. 5. 7. 14:4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몸집 커지는 풀들... 잡초를 뽑고 과일 나무들을 돌보며, 신기하고 기쁜 경험을 이어갑니다

지난해 봄부터 오도이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골 쉼터 '느루뜰'로 향합니다. 이 글은 시골 쉼터에서 '사는 이야기'입니다. <기자말>

[이정미 기자]

'이제부터 시작이려나!'

풀들의 자람이 심상치 않다. 지난 주말 가족 여행으로 건너뛰었더니 느루뜰은 풀들의 낙원이 될 조짐이다. 봄상추가 탐스럽게 훅 자랐다. 감자 순도 키와 몸집이 커졌다. 당근 싹은 드디어 당근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잡초를 뽑으며
 당근싹이 드디어 당근의 정체성을 알 수 있을 만큼 자랐다. 두둑을 가득 메운 잡초를 말끔하게 제거했더니 뿌듯했다.
ⓒ 이정미
당근 두둑을 보니 조그만 잡초들이 빼곡하다. 당근보다 잡초가 더 무성하다. 마음이 급해진다. 얼른 저 잡초들을 뽑아 줘야 당근이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당근 씨를 뿌리고 싹이 올라오지 않아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지 모른다. 이제 제법 모양을 갖췄으니 뿌리가 굵어질 수 있도록 잘 관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채소들을 살피고 무성해지기 시작한 잡초들의 무서운 기세를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서두르게 된다. 남편은 나더러 "풀에 대해 좀 관대해져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나는 일을 미뤄두지 못하는 성미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이런 성향을 경계하고자 밭을 인수하고 난 뒤 이름을 지을 때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지속적으로 꾸준히', '무리하지 않고'라는 의미를 가진 순우리말 '느루'에 '뜰'을 조합하여 '느루뜰'로 정했다.

늘 염두에 두고자 노력하는데, 평생 몸에 밴 습관이 어디 갈까. 나는 서둘러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당근 두둑 제초 작업부터 시작했다. 오십 중턱을 넘은 만큼 허리, 무릎 관절에 무리 가지 않게 해야지 하면서도 밭 일을 하다 보면 몰입하게 되고 나도 모르게 일 삼매경에 빠져 버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채소별로 두둑을 작게 만들어 조금씩 씨앗을 놓았기에 한 개의 두둑 작업을 끝내는 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먹을 만큼만 조금, 두둑을 작게 하여 여러 개로 만드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당근 두둑에 잡초를 말끔하게 제거한 뒤 흙을 돋우어 여린 싹들을 받쳐주었다. 허리를 펴고 깔끔해진 밭 두둑을 바라보면 뿌듯하고 어깨가 으쓱 해진다. 직접 당근 씨앗을 받은 것과 종묘상에서 구입해서 파종한 것을 비교해보니 발아율은 근소한 차이로 구입한 것이 높았다. 이후 자람과 뿌리 상태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더 두고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봄비의 양이 적어서 싹들도 더디게 자라는 것 같다. 제때에 물을 주면 더 잘 자랄 것 같은데, 아쉽지만 주말 농부이니까 이 만큼도 감지덕지한다.

감자 순 자르기와 북주기

농막 이웃 언니는 우리보다 일주일 뒤에 자주 감자 씨앗을 심었다. 그런데 우리보다 감자 자람이 눈에 띄게 키가 크고 튼실 하다.

"감자는 순 자르기와 북주기를 해 줘야 한다네. 그래야 감자 알이 굵어진다고."

귓등으로 넘겼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다시 유튜브로 찾아보니 순 자르기는 감자 순을 잘라주는 것 보다 1~2개 튼튼한 줄기를 남기고 나머지는 뽑아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북주기(북돋기)는 줄기 밑동에 흙을 모아 덮어 감자 알이 땅 위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여 감자 알이 굵고 튼튼하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작업이다.

순 자르기 시기가 늦은 감이 있었지만 하나 하나 살펴 약하고 빈약한 줄기를 뽑아 주었다. 손으로 주변 흙을 긁어 모아 북주기 하여 줄기를 단단하게 받쳐 주었다. 순 자르기 하며 뽑아낸 어떤 줄기에서는 조그맣고 하얀 감자알이 달려 나왔다. 연노랑 보드라운 얼굴이 참으로 귀여웠다. 시간이 흐르고 감자꽃이 피고 여름 초입 어느 날, 감자라는 선물을 안을 수 있겠지. 그 기쁨은 또 어떤 모양이려나.

장갑 낀 손이지만 흙을 만지는 느낌이 좋았다. 등 뒤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과 보슬보슬 흙의 감촉을 느끼는 이 순간, '치유'라는 언어가 떠올랐다.
 감자 알이 굵어질 수 있도록 순 자르기와 북주기를 해 주었다.
ⓒ 이정미
과실 수 돌보기

올해는 복숭아 열매가 지난 해에 비해 많이 열렸다. 배는 영 신통찮다. 열매와 잎이 싱싱한 복숭아 나무를 보니 잘 키워서 열매를 따 먹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복숭아 키우기 영상을 찾아 보았다. 나뭇가지에 종종종 매달린 열매를 솎아 주어야 열매가 굵어진다고 했다.

열매 솎기를 하다가 까맣고 날개 달린 벌레를 발견했다.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벌레의 이름과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짐작건대 복숭아 잎 뒷면에 하얀 알을 낳은 장본인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추측을 하며 복숭아 나무에 해를 끼칠 것 같아 잡아 주기로 했다. 나는 장갑 낀 손으로 그 놈들을 샅샅이 뒤져 잡았다. 오로지 복숭아 나무를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벌레를 손으로 잡으며 한편으로 이런 내 모습에 스스로 놀라고 웃음이 났다. 벌레라면 '꽥꽥' 소리지르고 기겁 하던 나였건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니 재미있다. 감나무 아래 풀 정리 작업 중이던 남편을 큰 소리로 불렀다.

"여기 복숭아 나무에 벌레 있어. 얼른 와 봐. 이렇게 눌러서 잡는 거야. 높은 데는 내 손이 안 닿으니까. 당신이 잡아야 해."
"복숭아가 잘 열렸으니 이번에 잘 키워서 따 먹어 보자고."

전문가처럼 관리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싶다. 지금껏 살충제에 길들여진 과실수라 자생력을 키우기 까지는 몇 년 걸릴 테다. 복숭아 나무 1 그루, 사과 나무 1 그루 뿐이니 벌레들은 손으로 직접 잡아주고 싶다.
 복숭아 나무 벌레를 잡아주고 서양 자두 열매를 솎아 주었다.
ⓒ 이정미
사과나무는 이제 막 꽃이 진 후라 아직은 열매 맺힘 상황을 알 수 없다. 잘 살피고 돌보아 사과도 따 먹을 수 있도록 해 봐야지 하는 마음이 생긴다. 울퉁불퉁 못생기고 벌레가 먹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과실이 덩치를 키우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신기하고 기쁜 일임에는 틀림없다.

지난 3월 하순 경이었다. 구지뽕 옆 제멋대로 자란 나무에 매화를 닮은 꽃이 피었다. 정체를 알 수 없어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매실도 아니고 복숭아도 아닌, 과육이 단단한 초록 열매가 맺혔다. 사진을 찍어 검색해 보니 '서양 자두'란다. 시중에서 사 먹었던 '푸룬'이 이 '서양자두'를 말려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푸룬'은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 해소와 장 건강에 좋다고 하여 가끔 사 먹곤 했다. 비타민 K가 풍부하여 골다공증 예방에 좋고 비타민 A와 안토시아닌이 시력을 보호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니 여러 모로 귀한 열매이다. 서양자두도 난생 처음 본다. 알이 굵은 것을 남기고 작고 반 쯤 섞은 열매들을 솎아 주었다. 운이 좋아 한 바구니 가득 수확하게 되면 영양 간식 '푸룬'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
 채소 종류별로 두둑을 작게 하여 만든 느루뜰 모습
ⓒ 이정미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