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포 '김일성 별장'의 원래 주인에 관한 슬픈 이야기

정태윤 2026. 5. 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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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의료와 결핵 퇴치의 선구자, 로제타와 셔우드 홀이 남긴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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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윤 기자]

 강원도 고성군 김일성별장.
ⓒ 권우성
강원도 고성에 가면 '김일성 별장'으로 알려진 '화진포의 성'이 있습니다. 원래 이름보다 김일성 일가가 사용했다는 상징성 때문에 별칭이 더 많이 알려졌으나, 1945년 분단 당시 고성이 북한 지역이 되면서 잠깐 동안 그들의 여름 휴양지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원래 이 성의 주인은 캐나다 출신의 의료 선교사 셔우드 홀(Sherwood Hall)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하며 결핵 퇴치에 앞장선 인물입니다. 고된 의료 활동 중 휴식을 위해 1938년 유럽 성곽 형태의 별장을 지었으나, 일제는 이를 '해안 요새 관찰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라며 간첩 혐의를 씌웠고, 결국 그는 1940년 강제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2대에 걸쳐 한국과 정을 나눈 푸른 눈의 의사들

여기를 방문한다면 별장 바로 옆자리에 2025년 새롭게 개관한 '화진포 셔우드 홀 문화공간'에 가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곳에는 2대에 걸쳐 한국과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함께 생활한 외국인 의사 가문이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셔우드 홀과 그의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미국),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캐나다)이 그들입니다. 로제타는 '보구녀관(여성 전용 의료기관)'의 세 번째 원장으로 1890년에 조선으로 와서 1만 4000여 명을 진료했고, 윌리엄은 1891년 조선으로 와서 평양에 한국 군인들과 주민들을 돌보았습니다. 둘은 1892년 결혼해서 이듬해 셔우드 홀을 낳았습니다.

불행히도 윌리엄은 수많은 전쟁 부상자를 돌보다 발진티푸스에 걸려 1894년 사망했습니다. 임신한 채 홀로 남은 로제타는 미국으로 돌아가 1895년 둘째 딸을 낳습니다. 이때 로제타의 미국행에 동행한 사람이 있는데, 그녀가 바로 '박에스더'입니다. 박에스더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의사이자 서재필 다음으로 두 번째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입니다.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던 그녀는 통역을 하면서 로제타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로제타의 추천을 받아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해 1900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10년 동안 여성 환자들을 진료하였습니다.
▲ 박에스더 부부와 셔우드 가족 화진포 셔우드 홀 문화공간에서 촬영한 박에스더와 그녀의 남편 박유산(뒤쪽), 로제타 셔우드 홀, 셔우드 홀, 에디스 마가렛 홀(아랫쪽)이 함께 찍은 사진과 설명
ⓒ 정태윤
그러나 불행은 계속되었습니다. 박에스더는 진료 중 결핵에 걸려 35세의 나이에 요절하게 됩니다. 그녀의 죽음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면서 가족과 다름없던 셔우드 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시 조선 사람들은 질병에 무지해 뱀탕을 결핵의 특효약으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이상, 김유정, 이효석 등 젊은이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병이 결핵이고, 1920년대까지 사망률이 40%에 육박했습니다.

박에스더가 죽은 다음 해 셔우드 홀은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며 뉴욕 롱아일랜드의 홀츠빌 서퍼크 결핵요양소에서 경험을 쌓고, 1926년 다시 한국으로 와서 결핵 퇴치를 위한 '해주구세요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1932년 결핵 퇴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리스마스실을 한국에서 처음 발행하였습니다. 그가 시작한 크리스마스실은 단순한 기부 수단 이상의 의미로 일제 시대에는 민족적 자긍심을 표현하는 방법이었고, 보건 의료가 근대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에는 문화적 기록이라는 깊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양의 오마니' 로제타 홀이 남긴 위대한 유산

로제타는 189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1933년까지 머물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첫째, 광혜여원에 소아과 병동(에디스 마거릿 어린이 병동)을 지었습니다. 귀환 후 한달 만에 죽은 어린 딸의 이름을 내건 우리나라 최초의 소아과 병동입니다. 둘째, 처음으로 한글 점자를 만들고, 평양여자맹학교를 개교해 최초의 특수교육기관을 설립했습니다. 여기서 공부한 오봉래는 특수교육자로 성장해 '조선의 헬렌켈러'로 불리며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인을 가르쳤습니다. 셋째, 여성에게 의료를 가르치는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만들어, 오늘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평안도 사람들은 로제타를 '평양의 오마니'로 불렀습니다. 그녀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가장 높은 곳의 사람에게 하듯 최선의 예의를 다해 치료하고 싶다"라고 하면서 인간으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존중했습니다. 그녀의 삶의 철학은 자식인 셔우드까지 이어져 2대에 걸쳐 60여 년간 한국과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셔우드 가문이 잠들어 있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가보려 합니다. 오랜 시간 우리 곁을 지켜준 그들에게 이제야 뒤늦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 한복을 입은 로제타 홀과 셔우드 홀 화진포 셔우드 홀 문화공간에서 촬영한 로제타 홀과 셔우드 홀이 한복 입은 사진
ⓒ 정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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