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장학금 대신 이걸 준다...지원금 절반은 안 갚아도 돼 [소셜 코리아]

한미순 2026. 5. 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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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한국형 저출생 대책이 독일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한미순]

 독일 청년들은 성적과 무관하게 생활비를 지원받는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업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 셔터스톡
"학점이 얼마나 높아야 장학금을 받나요?"

필자가 베를린 현지에서 만난 한국 유학생들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독일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장학금은 사실상 없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저출생 대책으로 '이공계 장학금 대폭 확대'나 '다자녀 가구 등록금 전액 지원' 카드를 꺼내 들었다. R&D 예산을 복원하고 우수 인재에게 돈을 더 주겠다는 것이 '인구 정책'으로 포장되는 현실을 보며, 한국 사회가 독일 모델의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생각했다.

장학금인가, 생존권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독일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개념의 '장학금(Scholarship)'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장학금은 '상(Prize)'이다. 공부를 잘해서, 재능이 뛰어나서, 혹은 남들보다 더 노력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능력주의의 전리품이다. 그러니 장학금을 늘리겠다는 말은 결국 "더 치열하게 경쟁하라. 이기는 사람에게만 아이 키울 돈을 보태주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독일 대학생들이 받는 생활지원금인 ‘바푁 (BAfoG)’ 기준표
ⓒ 독일 연방연구·기술·우주부
독일의 접근은 정반대다. 독일 대학생들이 받는 생활지원금인 '바푁(BAföG)'은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상금이 아니다. 이것은 독일 헌법(기본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와 교육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업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합의 위에서 독일 청년들은 성적과 무관하게 생활비를 지원받는다. 지원금의 절반은 갚지 않아도 되고, 나머지 절반도 무이자 대출이다.

현지에서 만난 독일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공부하는 동안 국가가 생계를 책임지는 건 당연해. 부모의 지갑 두께가 내 미래를 결정해서는 안 되니까. 대신 나중에 세금을 성실히 내서 다음 세대를 지원하면 되는 거야."

이것이 독일 사회를 지탱하는 '세대 간 연대(Solidarität)'의 핵심이다. 한국이 벤치마킹해야 할 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그 돈을 지급하는 철학이다. 한국의 저출생 대책은 여전히 아이를 미래의 산업 역군이나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아이를 낳으면 장학금을 주겠다"는 말은 곧 "너의 아이가 경쟁에서 이기면 지원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 무한 경쟁의 공포야말로 한국 청년들이 출산을 거부하는 근본 원인이다.

'사람'을 수입하려는 한국, '이웃'을 만드는 독일

최근 경상북도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가 이민청과 비자 제도를 벤치마킹하겠다며 독일을 찾았다고 한다. 인구가 줄어드니 외국인 노동력을 '수입'해 공백을 메우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독일의 겉모습만 본 것이다.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한 독일의 이주민 고용 성공 사례 모음집
ⓒ 동뷔르템베르크 상공회의소 홈페이지 갈무리
독일은 수십 년에 걸친 '손님 노동자(Gastarbeiter)' 정책의 실패를 통해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노동력만 빌려 쓰고 돌려보내려 했지만, 결국 사람이 왔다"는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쉬(Max Frisch)의 말처럼, 이주민들은 독일인의 이웃이 되었다. 현재 독일의 인구 정책은 단순한 머릿수 채우기가 아니라, 이주민이 독일 사회의 일원으로 융화되도록 돕는 통합에 방점을 둔다.

자국민에게는 경쟁하라고 채찍질하고 이주민에게는 일만 하다 가라고 문을 여는 한국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로는 어떤 저출생 대책도 뿌리내릴 수 없다.

각자도생을 넘어 보편적 삶의 보장으로

우리는 왜 독일을 부러워하는가. 라인강의 기적 때문이 아니다. 실직을 해도, 아파도, 나이가 들어도 삶이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받쳐주는 촘촘한 사회안전망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선별적인 지원금 몇 푼이 아니다. "네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너의 삶을 지켜주겠다"는 신뢰다. R&D 예산을 늘리는 것이 인구 정책이 아니다. 실패한 연구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짜 인구 정책이다. 아이를 낳는 것이 부모의 모험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독일 복지 사회가 한국의 부동산 공화국과 능력주의 사회에 던지는 진짜 질문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 할 일은 '투자'가 아니라 '보장'이다. '장학금'이라는 이름의 낡은 경쟁 유도책을 걷어치우고,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둔 '권리'의 언어로 인구 문제를 다시 써야 할 때다.
 한미순 독일사회복지연구소 대표
ⓒ 본인
필자 소개 :한미순은 이론과 실무, 행정과 학문을 두루 경험한 독일 사회복지 전문가입니다. 한국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도독하여 독일에서 사회복지학 디플롬(Diplom)과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뮌스터와 베를린 주정부에서 공무원 및 현장 실무자로 활동하며 독일 행정 시스템을 직접 경험했으며, 이후 베를린 기독교대학(EHB) 강단을 거쳐 마부르크 타보르(TABOR) 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현재는 '독일사회복지연구소' 대표이자 유튜브 채널 〈독일의 복지사회〉운영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독일의 '인간 존엄' 철학을 한국 사회의 구체적 대안으로 접목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사회정책, 이민·난민 사회사업, 시민사회론 등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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