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닮은 '전하 이동 계단'…태양빛만으로 과산화수소 만든다[과학을읽다]
식물 광합성 원리 모사해 전하 손실 최소화…세계 최고 수준 효율 기록
식물 잎 속 광합성 원리를 모방해 태양빛만으로 고부가가치 화학물질인 과산화수소를 생산하는 인공광합성 전극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전하가 '계단식'으로 이동하는 구조를 구현해 기존 기술의 고질적 문제였던 에너지 손실과 낮은 내구성을 동시에 해결했다는 평가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권태혁 화학과 교수와 장지욱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전하 전달 손실을 줄이고 내구성을 높인 염료감응 인공광합성 전극을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인공광합성 전극은 햇빛을 이용해 물에서 수소나 과산화수소 같은 연료·화학물질을 생산하는 핵심 부품이다. 이번 기술은 식물의 엽록소처럼 빛을 흡수하는 유기 염료를 이용하면서도 납 같은 유해 물질을 쓰지 않는 친환경 시스템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연구팀은 염료층과 '레독스 매개체'를 니켈 포일 안에 매립한 새로운 구조를 설계했다. 이 구조에서는 빛을 받은 염료에서 생성된 전하가 염료→레독스 매개체→니켈 포일→촉매 순으로 단계적으로 이동한다.
마치 계단을 한 칸씩 내려오듯 전하가 차례대로 이동하면서 에너지 손실과 역반응을 최소화하는 원리다. 이는 식물 잎 속에서 전하가 여러 전자전달 단백질을 거쳐 안정적으로 이동하는 광합성 메커니즘을 모방한 것이다.
"전하 손실 줄였다"…세계 최고 수준 효율 기록
기존 염료감응 광전극은 염료가 액체 전해질과 직접 닿아 쉽게 분해되거나 전하가 중간에 사라지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니켈 포일 구조로 염료와 전해질 접촉을 차단해 내구성도 크게 높였다.
개발된 전극은 물 분해 반응에서 98%의 패러데이 효율을 기록했다. 염료가 만든 전하 100개 중 약 98개가 실제 화학 반응에 사용됐다는 의미다.

특히 과산화수소 생산 시스템에 적용했을 때는 외부 전압 없이 태양광만으로 4.15%의 태양광-연료 변환 효율(STF)을 달성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는 세계 최고 수준 기록이다. 150시간 이상 성능 저하 없이 안정적으로 작동한 점도 확인됐다.
과산화수소는 반도체·의료·살균·친환경 화학 공정 등에 폭넓게 사용되는 고부가가치 화학물질이다. 연구팀은 특히 과산화수소의 경제적 가치가 수소보다 약 20배 높다는 점에서 산업적 활용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박준혁 UNIST 박사는 "식물이 전하를 거의 잃지 않고 전달하는 방식을 인공 소자 설계에 적용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권태혁 교수는 "계면 설계를 통해 염료감응형 시스템의 효율과 수명 문제를 동시에 보완한 사례"라며 "유해 물질 없는 친환경 시스템으로 고부가가치 화학 원료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재료 분야 국제학술지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지난 4월 13일 게재됐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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