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을 개시한다"... '간첩' 몰렸던 당사자는 이미 떠나버렸다

변상철 2026. 5. 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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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정의, 고 서병호씨 사건 재심개시결정... 망자에게 배달된 지각 판결문과 국가 폭력의 민낯

[변상철 기자]

당사자가 사라진 재심개시결정문

봄바람에 꽃가루가 심하게 날리던 4월 29일, 고 서병호씨의 재심이 결정되었다는 서울고등법원의 결정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원곡 사무실로 이 결정문이 등기로 도착했다. 서류 봉투 안에 담긴 문건은 단 8장짜리 '결정문'. 그 문서의 주문(主文)에는 수십 년을 기다려온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원심결정을 취소한다. 재심대상판결에 대한 재심을 개시한다."

1971년 10월 23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되어 이듬해 징역 12년, 자격정지 1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던 고 서병호씨. 무려 55년 만에 국가가 스스로의 치부를 인정하고 다시 재판을 열겠다고 선언한 의미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판결문을 가장 먼저 받아보아야 할 당사자 고 서병호씨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앗다. 그는 사법부의 기나긴 침묵과 정의를 지연시킨 갖은 핑계 속에 지난 2021년 9월 15일, 눈을 감았다. 망자(亡者)가 되어서야 도착한 지각 결정문. 과연 우리는 이것을 '정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피눈물 나는 55년의 투쟁 속에서 사법부와 검찰은 철저히 가해자의 편에 섰거나, 최소한 그들의 범죄를 방조했다.

서류 하단에 박힌 '육군인쇄공창'

이 사건의 핵심 쟁점 중 가장 팽팽했던 쟁점은, '수사권이 없는 기관에 의한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 여부였다. 구 군형법상 군인이나 군속이 아니었던 민간인 고 서병호씨를 체포하고 조사할 권한은 육군 보안사령부(보안사)에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복잡한 법리 해석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라, 법치주의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다. 이 법리적 판단은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이미 판단하여 보안사의 수사를 불법수사로 규정해 왔다.
 고 서병호 씨의 재심개시결정문. 이 결정문에 '육군인쇄'라는 기록물의 인쇄를 근거로 수사권 없는 보안사의 불법수사를 인정했다.
ⓒ 변상철
고 서병호 사건의 경우에도 1971년 5월, 일본 유학 중이던 그를 연행해 '역용공작(간첩을 역으로 이용하는 공작)'의 도구로 철저히 이용했다. 이후 고 서병호씨의 쓸모가 다했다고 판단해 같은 해 9월 간첩으로 조작해 구속한 주체는 다름 아닌 보안사임이 확실했다.

딸 서아무개씨와 기자가 수년 전 일본까지 직접 건너가 과거의 흔적을 쫓고 진실의 조각들을 맞춰나갈 때부터, 그리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문을 두드릴 때부터 이러한 보안사의 불법수사와 불법감금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유족 측의 주장은 단 한 번도 변함이 없었다. "군 수사기관에 의해 불법 구금된 채 가혹행위를 받으며 조사받았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할 물증은 어렵게 찾아야 찾을 수 있거나, 전혀 새로운 곳에 숨겨져 있거나 하지 않았다. 검찰이 공소를 유지하기 위해 제출했던, 그리고 1심 법원이 뻔히 들여다보았던 바로 그 1971년 수사 기록에 답이 있었다. 이번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재심 개시의 결정적 근거로 삼은 기록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 조서 용지의 출처: 피고인이 1971년 9월 23일과 25일에 받았던 피의자신문조서와 진술서 하단에는 부동문자로 '육군양식', '육군인쇄공창'이라고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 인지동행보고: 1971년 9월 23일 오전 8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소재 자택에서 서병호씨를 수사관서로 임의동행했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곳 역시 '육군 보안사령부'였다.

- 구속 장소의 명시: 1971년 9월 24일 발부되어 25일 집행된 구속영장 상의 피고인 구속 장소는 버젓이 '육군 보안사령부'로 기재되어 있었다.

누가 보아도 중앙정보부나 경찰이 아닌, 수사권이 없는 군 보안사가 민간인을 잡아다 군부대 양식의 종이에 조서를 꾸몄다는 명백한 물증이다.

그저 눈이 있다면 보이는 이 뻔한 글자들을, 왜 그동안 똑똑하다는 판사들과 검사들만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무슨 이유에서인가 보지 '않았던' 것일까.

진실화해위의 결정마저 묵살한 1심 법원과 검찰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재심 청구 과정은 끝없는 절벽을 맨손으로 오르는 처절한 사투와 같다.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 오직 본인의 의지와 힘만으로 올라야 하는 처절한 절벽이다.

다행히 2024년 1월 23일, 2기 진실화해위는 마침내 이 사건에 대해 인권침해 등을 확인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민간인 수사권이 없는 육군 보안사 수사관들이 1971년 5월 1일 피고인을 검거해 역용공작에 활용했고, 불법 구금과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기관의 공식적인 과거사 반성 앞에서도 검찰과 법원의 태도는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고 여길 여지가 눈꼽 만큼도 없는 냉소적 반응이었다. 검찰은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수용하기는커녕, 과거 독재 정권 시절의 조작된 기소를 정당화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듯했다. '당시 조서 작성에 문제가 없었다', '불법 구금의 증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펴며 끝까지 공소를 유지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 권력의 폭력성은 시대가 지나도 끈질기게 피해자의 목을 조른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법원의 태도였다. 1심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방법원(제2024재고합11)은 2025년 7월 10일, 상식 밖의 재심 기각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1971년 5월경 19일간 불법체포 및 감금되어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며 유족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진실화해위의 방대한 조사 결과는 물론, 조서 하단에 선명하게 찍힌 '육군양식'이라는 활자 앞에서도 사법부는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이것은 단순한 증거 판단의 오류가 아니다. 국가폭력에 면죄부를 발행해 준 사법부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뒤늦게 적용된 '타인의 권리행사방해죄', 55년이 걸린 상식
 2019년 고 서병호(가운데)씨는 일본에서의 진실을 찾아 직접 일본을 찾았었다.
ⓒ 변상철
수차례의 기각 결정과 절망. 그 사이 2021년 9월, 재심 청구인이었던 고 서병호씨는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대법원에서는 '소송종료선언'이라는 통보가 내려지기도 했다. 딸 서아무개씨가 아버지를 대신해 고통스러운 소송을 이어간 끝에, 서울고등법원 제20형사부는 비로소 기록에 기재된 불법의 기록을 인정하고 말았다.
서울고등법원 결정문 핵심 법리 (2025로91)

피고인은 군인·군속 등에 해당하지 않아 보안사 수사관들에게는 수사 권한이 없었다.

권한 없는 자들이 피고인을 임의동행하여 수사한 행위는 형법 제123조 '타인의 권리행사방해죄'를 구성한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서 정한 사법경찰관의 직무에 관한 죄에 해당하므로 재심 사유가 충분하다.

수사권이 없는 기관의 수사는 불법이라는 너무나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사실 하나를 인정받기 위해 55년의 세월과 피해자의 목숨 건 절박함이 필요했다. 국가는, 그리고 사법부 엘리트들은 정말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그들의 비겁함과 오만함이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한 것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딸 서씨는 안산 원곡의 변호사 사무실로 날아든 이 결정문을 품고 어떤 눈물을 흘렸을까. 2019년 1월,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 단서를 찾기 위해 일본의 낯선 겨울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헤맸던 날들. 국가 기관의 벽 앞에서 절망해야 했던 시간들. 아버지가 눈을 감던 날, 홀로 느꼈을 뼈저린 무력감까지.

이번 재심 개시 결정은 그저 기뻐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다. 진작에, 고 서병호씨가 두 발로 법정에 서서 자신의 무죄를 항변할 수 있을 때 시작했어야 할 재판이다. 망자에게 배달된 이 기쁜 소식은 우리 사법 체계가 얼마나 약자에게 가혹하고 국가 권력에 관대한지를 보여주는 가장 슬픈 우편물이다.

재판은 이제 다시 시작된다. 고 서병호씨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간첩'이라는 지독한 굴레를 완전히 벗어던지는 완벽한 무죄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진실의 싸움과 기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눈이 있어도 보지 않았던 자들,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자들의 민낯을 역사에 남기는 것. 그것만이 국가폭력에 스러져간 수많은 '서병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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