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하면 짝’ 익숙한 말을 시로...김복희의 『생 마음』

" 기자님, 요정을 믿으세요? 없다고 말하면 안 돼요. 요정이 진짜 사라진대요. "
21세기 한국에서 이토록 능청스럽게 요정의 존재를 들이미는 사람이 있다. 요정뿐만 아니라 귀신, 영혼, 새, 벌레, 나무…. 시로 온갖 비(非)인간 존재를 호명하는 김복희(40) 시인이다. 다섯 번째 시집 『생 마음』(현대문학)을 낸 그를 최근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보통 사람들은 자라나면서 잊어버리는 존재를, 저는 계속 데리고 살아온 것 같아요.”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말마따나 그의 시를 읽으면 심심할 틈 없고, 외로울 일 없다. 시인이 현실에 있다고 믿는 여러 존재가 자꾸만 고개를 내밀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 『생 마음』(현대문학)에선 도깨비와 호랑이 등 전통 설화 속 존재가 등장한다. 4부는 아예 요정 얘기만 한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희망은 사랑을 한다』(2020, 문학동네)의 해설을 쓴 김영임 문학평론가는 이들을 ‘낯선 주체’라고 명명했다. 애초에 첫 시집 제목이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2018, 민음사)이었다. 이때의 ‘새 인간’은 새로 들인 인간이거나, 새(鳥) 인간이다.

“새 인간을 하나 사 왔다 동묘앞 새 시장에서 새 인간을 판다는 소문을 들었다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새처럼 우는 법을 배운 새 인간이”(‘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읽다 보면 인칭과 표현이 뒤섞여 주체의 형상이 모호해지지만, 시인은 그 점을 즐긴다. “(낯선 주체들을) 그림으로는 안 그려봤어요. 사람마다 상상하는 형태가 다 다를 거니까. 정해두지 않으면 더 많이,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마음은 시 쓰기에도 적용된다. “(해석·쓰기의 과정에서) 촘촘하지 않고 자유로운 면이 좋아서 시를 쓰는 것 같아요.”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시인은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희망은 사랑을 한다』, 『스미기에 좋지』(2022, 봄날의책), 『보조 영혼』(2025, 문학과지성사) 등을 냈다. 성실히 시를 발표했지만 이렇게 빠른 주기로 새 시집을 발표한 건 처음이다. 시인은 “2024년 현대문학상을 받으면서 시집을 계약했다. 『보조 영혼』 이후 바로 시집을 내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시인은 “기존에 발표한 시들 중에 더 깊이 파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생 마음』을 기획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전 시집에서도 ‘착하게 살자’라는 구호를 모티브로 쓴 시(『내가 사랑하는…』)와 동요 ‘섬집 아기’, 속담 ‘밥 먹고 누우면 소 된다’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문장을 변주한 시(『희망은 사랑을 한다』)를 썼다.

‘도깨비는 쳐다볼수록 커 보인다’ ‘가을바람의 새털’ ‘목마른 송아지 우물 들여다보듯’ ‘춘향이 집 가리키기’ 등 이번 시집에 실린 서른 여섯편의 시 중 열 편의 제목이 속담이다. ‘가죽을 남김’ ‘쿵 하면 짝’ 등 한국인이라면 관용어로 들어봤을 표현을 제목으로 삼은 시도 있다. “속담은 많은 사람이 동의해서 만들어진, 개성 없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말이 처음 시작됐을 땐 누군가의 욕망이나 강렬한 생각이 있어서 만들어졌을 거예요. 그 욕망이 저와 만나 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포착한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질 때, 시인은 ‘아, 이 마음’하고 감탄한다. “나 지금 오해받은 채 찬물 들어가/긴 장화 신고/고무장갑 끼고/미나리 낫으로 벤다/그런 기분이야/온몸이 차갑고 무거워 끝이 안 나//이런 뜻이 그림자를 지고 따라온다//아 이 마음” (‘하려던 말의 반만 하는 모임’)
『생 마음』에서 눈에 띄는 글은 2부의 시 ‘환절, 호랑이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기록’이다. 4600자에 달하는 이 글은 장시라고도, 산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호한 장르의 글이다. 시인은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라고 시작하는 구전을 곱씹다 이 글을 떠올렸다고 했다. 효심이 지극한 사람이 한 스님에게 호랑이 되는 법을 배워 어머니를 위한 음식을 구해 바치다가, 갑자기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이야기다.
“짐승이 되는 설화에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나타나 매력적으로 느낍니다. 짐승됨과 인간됨이 같이 있는 모순된 주인공의 마음이, 보통 인간들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호랑이가 고갯마루에 엎드려서 기다리듯, 이 글이 시집의 중간에 있길 바랐어요.”
“익숙함 속 낯선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 제일 재밌다”는 시인은 앞으로도 계속 ‘한눈을 팔’ 예정이다. “붕 떠 있는 추상의 것들 말고, 우리 삶과 연결되어있으면서도 미처 몰랐던 걸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요. 늘 반쯤 한눈팔며 살아가면 안 될까요? 한눈팔기도 되게 속담같은 관용어네요. (웃음)”
최혜리 기자 choi.hye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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