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유채꽃 바다가 일렁일렁, 구리에 있습니다

김홍의 2026. 5. 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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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려도 괜찮아" 둔치에서 피어난 위로... 5월의 구리한강시민공원을 다녀와서

[김홍의 기자]

 연약하지만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유채꽃. 봄은 우리에게 중심을 잡는 법을 건넨다.
ⓒ 김홍의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한강 둔치. 봄이 깊어진 지난 5일 방문한 이곳은 한강을 따라 노란 유채꽃이 장관을 이루는 명소로 다시 태어난다.

이곳은 본래 '토막 나루'라 불리던 작은 마을이었다. 1980년대까지 열 남짓한 가구가 터를 잡고 살았지만 거듭되는 수해와 홍수는 결국 사람들을 떠나게 했다. 한때 소먹이 작물을 재배하던 거친 들판은 1998년 IMF 외환위기 시절, 실직자 구제를 위한 공공근로사업을 통해 지금의 공원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위기를 견뎌낸 사람들의 시간과 손길이 켜켜이 쌓여 이곳은 오늘 우리가 걷는 쉼터가 되었다.

특히, 다가오는 5월 8일부터 10일까지 이곳에서는 유채꽃 축제가 열려 더 많은 이들에게 노란 위로를 건넬 예정이다.

수해 빈번한 나루터에서 시민의 쉼터로
 유채꽃 군락지로 이어지는 길.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여행은 시작된다.
ⓒ 김홍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꽃밭까지는 천천히 걸어 성인 보폭으로 약 3천 보, 대략 2km 남짓의 거리다.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거리지만 그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중간중간 작은 공원과 쉼터가 이어지고 강변을 스치는 바람이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춘다. 걷다 보면 중간에 작은 유채꽃 군락지가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발걸음을 붙잡지만, 이곳은 시작에 가깝다. 현수막이 걸린 지점을 지나야 비로소 진짜 풍경이 펼쳐진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이곳의 여행은 시작되고 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길이다. 그 자체로 충분하다.
 한강 둔치를 따라 펼쳐진 유채꽃 군락지. 서로 다른 생명력이 만나 만들어낸 봄의 풍경.
ⓒ 김홍의
 노랗게 펼쳐진 유채꽃 군락지. 흔들리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며 화사한 봄을 채운다.
ⓒ 김홍의
유채는 태생부터 남다르다. 배추와 양배추가 자연 상태에서 만나 탄생한 '자연 교잡종'이다. 이는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가 '종의 합성'이론을 통해 세계 최초로 증명한 사실이기도 하다.

유채는 배추의 부드러운 수분기와 양배추의 단단하고 질긴 성질을 동시에 물려받았다. 비바람에 유연하게 몸을 내맡기는 배추의 성질과 세찬 폭풍에도 꺾이지 않고 버티는 양배추의 단단한 심지가 한 몸에 섞인 셈이다. 이렇듯 서로 다른 두 생존 전략이 자연 속에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결과, 유채는 가냘퍼 보이면서도 결코 쉽게 쓰러지지 않는 이중적인 매력을 갖게 되었다.

이 노란 물결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유채는 매해 씨를 뿌리고 정성껏 가꾸어야만 이듬해 다시 얼굴을 보여주는 식물이다. 누군가의 반복되는 수고와 정성이 더해져 완성된 계절의 결과물이기에 이 풍경은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유채꽃이 건네는 메시지
 노랗게 번지는 유채꽃 사이로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봄의 순간이 스며든다.
ⓒ 김홍의
꽃밭에 가까워질수록 노란빛은 점점 짙어진다. 유채꽃의 공식적인 꽃말은 '명랑'과 '희망'이다. 하지만 이 눈부신 꽃물결을 마주하고 있으면 누군가 남긴 "사랑한다면 지금 말하라"는 문장이 새삼스레 마음 한구석에 내려앉기도 한다.

여기에는 미루지 못한 고백에 대한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사랑을 전하지 못한 채 떠나간 연인을 기리며 피어난 꽃이라는 전설. 유채는 우리에게 '내일'이라는 불확실함 대신 '지금'이라는 확실한 순간을 붙잡으라고 조용히 일깨운다.

이 메시지는 비단 타인을 향한 고백에 그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아끼고 삶을 긍정하는 일 또한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조용한 권고다. 찰나의 봄을 온 힘을 다해 노랗게 태우는 유채꽃의 치열한 생애는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의 흔들림조차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풍경임을 웅변 하고 있다.

마침내 마주한 유채꽃은 생각보다 훨씬 가냘프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꽃대는 속절 없이 휘어지고 흔들린다. 수만 송이의 꽃이 동시에 몸을 눕혔다가 다시 일어나는 모습은 마치 노란 바다가 파도처럼 일렁이는 장면과 닮아 있다. 그 풍경 앞에 서 있으면 알게 된다. 이 꽃은 흔들리지 않기 위해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피어 있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흙을 붙잡는 단단한 뿌리
 유채꽃이 건네는 말. "흔들려도 괜찮아. 내 안에서 중심만 잡고 있다면."
ⓒ 김홍의
중요한 것은 흔들림의 유무가 아니었다. 바람에 휘어지면서도 유채꽃이 끝내 빛을 잃지 않는 이유는 땅 아래, 흙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뿌리에 있었다. 겉으로는 끝없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도 중심이 무너지지 않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유채꽃은 그 사실을 아무 말 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 삶도 다르지 않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세차게 흔들릴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내 안의 뿌리, 즉 스스로의 중심이 바로 서 있다면 그 흔들림은 무너짐이 아니라 더 깊은 생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다.

수해의 땅에서 사람들의 쉼터로, 그리고 해마다 다시 피어나는 꽃의 자리로. 구리한강시민공원의 유채꽃은 오늘도 바람 속에 서 있다. 흔들리는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흔들려도 괜찮아. 내 안에서 중심만 잡고 있다면."

[여행 정보]

- 구리 유채꽃 축제 : 2026년 5월 8일(금) ~ 5월 10일(일) / 3일간(입장료 무료)
- 위치 :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한강 둔치(구리한강시민공원)
- 주차 : 가능 (초기 10분 무료, 최초 30분 1,000원, 30분 초과 10분당 200원, 1일주차 10,000원)
- 관람 팁 : 주차장에서 유채꽃밭까지 도보로 20~30분 소요. 편한 신발을 권장한다. 산책로 중간중간 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어 걷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 좋다.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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