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만든 숲에서 새가 울었다... 인간이 놓친 생태의 진실

이경호 2026. 5. 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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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백로와 공존을 위한 비행] 전쟁으로 사라진 숲과 서식지 잃은 백로, 파괴의 원인은 결국 인간

[글쓴이 :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기자말
대전환경운동연합과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전북환경운동연합은 백로 집단번식지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도심 속 백로 번식지는 악취와 소음, 배설물 민원으로 '쫓아내야 한다'는 극단적인 목소리로 이어지곤 합니다. 그러나 백로는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가 아닙니다. 세 단체는 사람과 백로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번식하는 백로는 중국과 베트남을 지나며 아시아 생태계의 실핏줄을 연결합니다. 백로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지난 4월 18일부터 23일까지 베트남 현장을 찾았습니다. 베트남에서 백로가 머무는 습지와 그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현장의 기록을 하나씩 써 내려가려 합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따끔하면서도 소중한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프로젝트는 환경재단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와 사랑의열매가 지원하며, 세 환경운동연합이 공동 주관합니다.
호치민과 가까운 구찌터널을 찾았다. 백로와 공존을 위한 여정은 아니었다. 전쟁에 대한 단상을 마주하는 문화적 체험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결국 생명과 자연의 문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파괴한 현장과, 야자농장과 벌목으로 이어지는 개발의 흐름은 백로에게는 또 다른 전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구찌터널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울창한 숲이었다. 지금의 풍경만 보면 이곳이 한때 전쟁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 숲은 엄연하게는 두 번째 숲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고엽제 살포와 폭격으로 이 일대는 거의 폐허에 가까운 상태였다고 한다.
 구찌터널 위 다시 복원된 숲의 모습
ⓒ 이경호
사라진 생명과 전쟁이 남긴 흔적

숲은 다시 자라났지만, 그것이 곧 온전한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라진 생명과 무너진 생태계는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전쟁은 인간의 삶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 자체를 끊어내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백로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는 인간의 삶 역시 평화로워야 한다. 생명은 곧 평화다. 평화가 없다면 어떤 보전도 성립할 수 없다. 전쟁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서식지든 가리지 않는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력 충돌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 이란 지역의 전쟁 상황 속에서 희생되는 것은 군인만이 아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던 시민들, 그리고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는 수많은 생명이 함께 사라지고 있다.

전쟁은 언제나 모두의 손실로 끝난다. 구찌터널에서 만난 한 새의 이야기는 그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현지에서는 '숲속의 수다쟁이'라 불리는 흰머리웃음지빠귀였다. 사람을 잘 따르고 경계심이 적은 이 새는 전쟁 당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비극의 중심에 서게 된다.
 흰머리웃음지빠귀의 모습
ⓒ 이경호
정글 속에 숨어 있던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주변으로 이 새가 날아들어 크게 울어댔고, 그 소리는 곧 위치 노출로 이어졌다. 결국 그 울음은 폭격을 부르는 신호가 되었다. 인간에게 호기심을 보이던 행동이 전쟁 속에서는 '위치를 드러내는 소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새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은 그 새를 위험한 존재로 만들었다.
 구찌터널의 입구의 모습
ⓒ 이경호
현장에서 만난 흰머리웃음지빠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왔고, 맑은소리로 울었다. 그 모습은 평화로운 자연 그 자체였지만, 동시에 전쟁이 어떻게 생명의 의미를 뒤틀어 놓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이 장면은 한국에서 겪고 있는 백로 갈등과도 겹쳐 보였다. 고결한 새에서 오의 대상이 된 백로의 모습과 흰머리웃음지빠귀는 다르지 않다. 집단 번식으로 인한 불편을 이유로 백로는 때로 문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 불편은 인간의 공간 확장 속에서 밀려난 결과일 뿐이다. 전쟁과 개발은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가. 대부분의 경우 원인은 인간에게 있고, 피해는 다른 생명에게 돌아간다. 서식지를 빼앗고, 피해를 말하며, 결국 제거를 선택하는 것도 인간이다. 백로의 서식처를 빼앗고 피해를 이야기하며 제거하는 일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구찌터널 일대는 지금 다시 숲이 되었다. 일부 야생동물도 돌아오고 있다. 이는 자연의 회복력과 희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그 회복은 완전할 수 없다. 고엽제가 남긴 토양 오염, 사라진 종, 단절된 생태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자연의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한 번 사라진 생명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자연은 복원될 수 있지만 되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평화는 단순한 정치적 상태가 아니라 생태계의 전제 조건이다. 생명을 지키는 것 자체가 평화다. 백로의 서식지를 보전하고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도, 습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 위해서도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총성이 멈추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 안에서 사라지는 생명들은 기록되지 않는다. 이란 지역의 전쟁이 없었다면 우리는 구찌터널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참상에 더 오래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전쟁은 과거를 헌재로 끌어온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전쟁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평화를 더 절실하게 만든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백로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순히 한 종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결국 인간이 어떤 세계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악순환의 고기는 자연을 지속적으로 파괴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위에 가깝다. 전쟁은 그 정점에 있는 파괴의 방식이다.

전쟁과 파괴, 공존과 회복 어떤 것이 필요한지는 더 명확해졌다. 구찌터널의 회복력이 명확한 증거다. 백로와 서식처도 다시 복원의 증거가 되기를 바란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자연은 다시 자라난다. 그러나 그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단 하나다. 다시는 같은 파괴가 반복되지 않는 것이다. 백로 서식지든, 전쟁이든, 특정 산업을 위한 파괴든, 멈춰야 할 것은 분명하다.
 구찌터널 영상을 보는 모습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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