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헌법 79년, 일본은 왜 지금 브레이크를 풀려 하나

김영근 2026. 5. 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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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보통국가'의 계산 속에서 개헌의 시간표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바로 절차다

[김영근 기자]

▲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평화헌법 9조 개헌 의지 천명 2026년 4월 12일, 자민당 창당 70주년 당대회에서 연설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때가 왔다'며 헌법 개정 의지를 천명했으며, 가수 세라 마사노리 씨가 게스트로 등장해 '불태워라, 사나에!'를 외쳤다.
ⓒ 후지뉴스네트워크(FNN)
헌법의 생일에 던진 말, '때가 왔다'는 속내는...

5월 3일은 일본 헌법기념일이다. 1947년 시행된 일본국헌법이 2026년으로 79년을 맞은 날, 도쿄에서는 개헌파와 호헌파가 각각 집회를 열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개헌파 집회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논의를 위한 논의'가 아니라 '국회가 판단하기 위한 논의'를 하자고 했다. 앞서 4월 12일 자민당 창당 70주년 당대회에서는 더 선명했다. '헌법 개정은 당의 기본방침이고, 때가 왔다.' 그는 내년 당대회까지 개헌안 발의의 전망이 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말은 짧았지만 정치적 무게는 가볍지 않다. 2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465석 중 316석을 얻었다. 단독으로 개헌 발의선 310석을 넘긴 것이다. 물론 헌법 개정은 중의원과 참의원 각각 3분의 2 이상 찬성 그리고 국민투표 과반 찬성이 필요하다. 아직 완성된 길은 아니다. 그러나 길의 입구는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2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자민당 단독 3분의 2 의석이 '백지위임장'은 아니라고 했다. 여러 목소리를 겸허하게 듣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헌법기념일의 메시지는 그 겸허함보다 시간표를 먼저 들고 나왔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지금 일본 정치에서 정말 '때가 온 것'은 무엇인가. 헌법을 바꿀 때인가 아니면 권력이 헌법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점검할 때인가(관련기사: 일본 평화헌법 9조의 정치경제학: 세계유산으로 남겨야… https://omn.kr/2hjw9).

민심은 '찬성'보다 '서두르지 말라'에 가깝다

일본 여론은 단순하지 않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다카이치 정권 아래 개헌 실현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47%로 반대 43%를 앞섰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부터 이어진 같은 질문에서 찬성이 반대를 넘은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요미우리신문 우편 여론조사에서도 '헌법 개정 찬성'은 57%로, 반대 40%를 앞섰다. 표면만 보면 '개헌의 봄'처럼 보인다.

그러나 숫자의 속을 들여다 보면 다른 결이 보인다. 같은 아사히 조사에서 '개헌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62%였다. 헌법 9조에 대해서는 '변경하지 않는 게 좋다'가 63%로 '변경하는 게 좋다' 30%를 크게 웃돌았다. 교도통신 조사에서도 개헌은 폭넓은 정당 간 합의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70%를 넘었다. 민심은 개헌 자체를 금기시하지 않지만, 승자의 속도에 헌법을 맡기지는 않겠다는 쪽에 더 가깝다.

개헌의 시간표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 일본 실패학이 말하는 안전사회와 제도전환의 조건

거리의 민심은 더 분명했다. 헌법기념일인 5월 3일 전국 220곳에서 '헌법을 살려 평화로운 세계를!'이라는 구호 아래 7만 4000여 명이 모였다. 이미 4월 8일 도쿄 국회의사당 앞 집회에 3만 명이 운집했고, 4월 19일 'NO WAR! 헌법을 바꾸지 마라!' 집회에도 3만 6000명이 참가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참가자의 절반이 20·30대이며 여성이 60%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촛불·응원봉 집회 문화를 본뜬 젊은 세대의 참가가 늘며 개헌 반대 운동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 대목에서 일본 신문 사설들의 온도 차도 중요하다. 아사히신문은 5월 3일 사설 제목으로 '개헌 우선주의(개헌ありき)를 반복하는가'라고 물었다. 고베신문은 '그때가 왔다'는 총리의 말을 받아, 다수의 힘으로 헌법을 바꾸려는 움직임은 멈춰야 한다고 썼다. 보수와 진보의 견해 차를 떠나, 일본 사회 내부에 흐르는 핵심 질문은 하나다. 헌법은 국가가 원하는 이야기인가, 시민이 국가를 묶는 장치인가.

긴급사태 조항, 가장 조용한 위험

다카이치 총리는 헌법기념일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자민당의 4대 개헌 항목 중 선거구 합구 해소와 긴급사태조항을 먼저 논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위대 명기는 민감하다. 반면 대규모 재해, 테러, 감염병 대응을 내세운 긴급사태조항은 훨씬 쉽게 다가온다. 누구도 재난 앞에서 느린 정부를 바라지 않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신속한 대응이라는 말이 국회의 감시를 우회하는 통로가 되는 순간, 안전은 시민을 지키는 이름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를 잠시 접어두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재난 현장에서 속도는 생명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속도는 언제나 통제 장치와 함께 가야 한다. 긴급명령의 범위, 기간, 사후 승인, 사법심사, 정보공개, 피해구제 절차가 촘촘하지 않으면 긴급권력은 임시 조치가 아니라 상시 지름길이 된다. 안전사회는 강한 명령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가, 언제, 어떤 근거로 권한을 쓰고, 어떻게 책임지는지 보이는 사회가 안전하다.

그래서 긴급사태조항은 겉으로 가장 무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할 조항이다. 헌법의 이름으로 정부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일은 쉽다. 어려운 일은 빠른 정부가 스스로 멈출 수 있는 장치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다. 미래 리스크 관리는 '빨리 움직이는 국가'가 아니라 '위험할 때도 법의 선을 넘지 않는 국가'를 목표로 해야 한다.

이미 바뀐 안보국가, 이제 헌법이 따라가려 한다
 제2차 내각 발족 당일 2026년 2월 18일 총리 관저에서, 일본 다카이치 총리대신과 내각 구성원 등이 촬영한 기념사진
ⓒ 일본 내각(관방)홍보실

일본의 안보 노선은 이미 헌법 밖에서 여러 차례 바뀌었다. 2014년 아베 내각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해석 변경을 단행했고, 2015년 안보법제가 뒤따랐다. 2022년 기시다 내각은 반격 능력 보유와 방위비 증액을 국가안보전략에 담았다. 2026년 4월 다카이치 내각은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의 운용 지침을 고쳐 살상 능력이 있는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길을 열었다. 헌법 조문은 그대로였지만, 국가의 행동 반경은 계속 넓어졌다. 요컨대 일본은 먼저 움직였고, 이제 헌법이 뒤따라오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 외교협회의 셰일라 스미스 선임연구원은 일본 안보정책에서 '논쟁의 부재'가 오히려 두드러진다고 지적한다. 중국과 대만해협 긴장, 북핵과 미사일, 미일동맹의 요구가 겹치면서 방위력 강화가 일본 정치권에서 점점 덜 다투는 의제가 됐다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일본이 오른쪽으로 갔다'는 말로만 설명하면 부족하다. 안보 환경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절차의 질문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현실주의는 헌법의 브레이크를 불편해 하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위험이 커질수록 브레이크의 성능을 점검하는 태도다.

자민당의 개헌 논의는 실제로 70년에 걸쳐 반복된 '프로세스'였다. 필자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자민당은 개헌 의제를 '즐기는' 방식으로 정치적 동력을 유지해 왔다. 개헌 발의에 필요한 합의는 늘 멀었고, 그 거리가 오히려 당의 결속과 지지층 결집에 기여했다. 다카이치의 '때가 왔다'는 선언도 이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과연 이번에는 그 '때'가 실제로 완성될 것인가.

일본 실패학의 교훈: 안전은 속도가 아니라 제어다

일본 실패학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차가운 문장은 이것이다. 큰 실패는 대개 한 번의 실수로 오지 않는다. 불편한 질문을 밀어내고, 내부의 확신을 반복하고, 반대 의견을 '발목 잡기'로 취급할 때 시스템은 조용히 취약해진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조사한 일본 국회사고조사위원회는 이 사고를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예견하고 막을 수 있었던 인재로 규정했다. '안전하다는 믿음'이 안전장치보다 강해질 때, 위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커진다.

헌법 논쟁도 다르지 않다. '안보환경이 변했다'는 말이 모든 질문을 덮어버리면 제도는 실패의 길로 들어선다. 긴급사태를 대비하자면서 긴급권력의 남용 가능성을 묻지 않는 것, 자위대를 명기하자면서 해외 군사행동의 책임 구조를 묻지 않는 것, 무기 수출을 열면서 그 산업적 이해관계가 정책 판단을 어떻게 흔들지 묻지 않는 것. 이것이 실패의 전조다.

안전혁명은 더 강한 구호가 아니라 더 정교한 제어의 언어다. 전쟁, 재난, 감염병, 에너지, 금융, 인공지능은 따로 오지 않는다. 서로 연결되어 시민의 일상을 흔든다. 그래서 미래리스크 관리는 '국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국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누가, 어떻게 막는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헌법은 국가의 엔진이 아니다. 국가가 과속할 때 작동해야 하는 브레이크다.

한국이 읽어야 할 것은 감정이 아니라 미래리스크다

한국에서 일본 개헌을 말하면 감정이 앞서기 쉽다. 식민지배의 기억, 독도 문제, 역사 부정의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만으로는 오늘의 위험을 읽을 수 없다. 일본의 방위력 강화가 모든 경우에 동북아 불안을 키운다고 단정해도 안 되고, 중국이 반대하니 일본의 선택이 곧 옳다고 말해도 안 된다. 둘 다 게으른 판단이다.

한국이 봐야 할 것은 일본 정치의 제도 전환이 어떤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는가다. 개헌 논의가 국회 다수파의 축제가 되는가, 시민사회와 야당의 질문을 포함하는가. 긴급사태조항이 재난 대응을 돕는가, 아니면 권력 집중의 통로가 되는가. 자위대 명기가 존재 확인에 그치는가, 아니면 해외에서 무력을 쓰는 기준을 느슨하게 하는가. 무기 수출 확대가 동맹 협력인가, 방산 이익의 정치화인가. 이 질문들이야말로 한국의 안전사회와도 연결된다.

한국의 외교도 이 지점에서 더 성숙해야 한다. 반일 구호만으로는 일본 사회 내부의 신중론과 손잡을 수 없다. 반대로 무조건적 한미일 협력만으로는 동북아 시민의 불안을 설명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안전혁명의 관점이다. 군사, 경제, 재난, 정보, 산업을 한 묶음의 미래리스크로 보고, 의회와 시민사회, 국제규범이 함께 감시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일본 헌법기념일에 '때가 왔다'고 외친 다카이치, 정치는 어디로

다카이치 총리의 말처럼 어떤 '때'는 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개헌 발의의 때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개헌에 찬성하는 여론조사 수치가 높아졌다고 해서, 그것이 지금 당장 헌법을 바꿔달라는 위임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찬성의 이면에는 여전히 서두르지 말라는 62%의 목소리가 있고, 전국 220곳에서 7만 명 넘는 시민이 거리로 나온 현실이 있다. 개헌의 길은 좁다. 중의원 316석은 얻었지만 참의원의 3분의 2, 그리고 국민투표의 과반은 또 다른 산이다.

헌법기념일은 헌법을 장식장에 넣어두는 날이 아니다. 국가가 다시 커지려 할 때, 시민이 헌법의 의미를 꺼내 확인하는 날이다. 일본의 평화헌법 9조는 완전한 답안이 아니었다. 현실의 위협을 모두 해결해 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조항은 적어도 국가가 전쟁을 말할 때 한 번 더 멈추게 하는 문턱이었다. 그 문턱을 낮추려 한다면, 먼저 왜 낮춰야 하는지, 낮춘 뒤 누가 멈출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자민당 다카이치 정치가 원하는 '때가 왔다'면, 더 넓게 물을 시간이다

안전한 국가는 강한 국가와 같은 말이 아니다. 진짜 강한 국가는 위기 앞에서 시민의 권리를 쉽게 접지 않고, 전쟁의 언어 앞에서 절차를 포기하지 않으며, 다수의 승리 앞에서 소수의 질문을 지우지 않는다. 헌법은 권력자의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시민이 권력에 내미는 조건문이다.

다카이치의 '때가 왔다'는 말이 위험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 말이 개헌의 문을 여는 신호라면, 시민은 더 큰 목소리로 물어야 한다. 누구의 시간인가. 누구의 안전인가. 그리고 그 권력은 스스로 멈출 수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에도 실립니다.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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