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왜 다니냐"라는 후배 남편, 말문이 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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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림 기자]
"제가 전세 기간이 끝났는데요, 친정이 가까워서 이리로 이사 온 거긴 한데 월세로 나가는 돈이랑 친정엄마한테 드리는 돈 합치면 꽤 되거든요. 근데 본래 집으로 들어가면 제가 출퇴근하면서 아이를 돌봐줄 물리적 시간이 안 돼요. 남편은 깔고 앉아있는 돈보다 진짜 회사 다니는 게 이득인지 생각해보라는데... 참."
후배에게서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후배는 본래 집을 두고 친정 근처로 반월세 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 본래 집에서 회사까지 출퇴근만 족히 2시간 이상 걸리는 데다, 복직 당시 아이는 겨우 두 살이었다.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친정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굴러가지 않는 일상이었다.
그 일상을 유지하는 데엔 당연히 비용이 따랐다. 매달 나가는 월세와 친정어머니께 드리는 '월급'을 합산하면, 후배의 월급과 거의 맞먹었다. 그렇다고 후배가 편안하게 일과 육아를 병행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출장이 잦은 직군 특성상 체력은 늘 한계 근처였고,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를 원망하는 눈빛을 보냈다.
지쳐서 남편에게 하소연이라도 할라치면, 돌아오는 반응은 늘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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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배는 본래 집을 두고 친정 근처로 반월세 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 |
| ⓒ unplash |
그러나 후배 입장은 다르다. 겨우겨우 붙들어온 커리어와 날마다 무거워지는 육아의 책무, 그 사이에서 남편의 저 말 한마디는 위로가 아니라 압박으로 들린다. '네가 포기하면 해결된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급기야 남편은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한다.
"소탐대실하지 마."
머릿속이 하얘졌다는 후배
후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했다. 나도 처음엔 그 말의 무게를 가늠하느라 잠시 멈췄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편이 말하는 '소(小)'는 무엇이고, '대(大)'는 무엇일까.
남편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대략 이렇다. 후배의 월급은 '소'다. 월세와 친정어머니 월급을 제하면 실질적으로 남는 게 없으니 그 자체로 이미 작다. 반면 '대'는 여럿이다. 본래 집을 비워두는 기회비용, 월세로 허공에 뿌리는 돈, 그리고 하나뿐인 아이와 쌓아야 할 애착관계. 자산을 굴리는 관점에서 보면, 일정 부분 수긍이 가는 계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생긴다. 이것이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소탐대실'일까.
남편의 계산에는 빠진 항목들이 있다. 후배가 직장을 그만둔 이후 노동시장에서 감수해야 할 경력단절의 불이익, 재취업의 현실적 장벽, 그리고 독립적인 소득이 사라진 뒤 가정 안에서 달라지는 협상력. 국민연금 가입 이력도 마찬가지다. 노후의 연금 수령액은 지금 이 순간의 근속 기간과 직결된다. 이 모든 것을 금액으로 환산한다면, 과연 후배의 월급이 '소'로만 남을까.
무엇보다 '대'로 꼽힌 아이와의 애착관계는, 엄마가 집에 있어야만 채워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그 자리는 아빠가 아닌 엄마의 몫으로 상정되는가. 소탐대실의 프레임 안에서, 포기를 권유 받는 쪽은 언제나 후배였다.
결국 후배는 반월세 계약 4년이 끝나는 시점에 또 한 번 고민하다 계약을 연장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육아휴직을 쓰고 본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계획만 세워둔 채. 복직 이후의 그림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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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맞벌이 부부를 구성하는 워킹맘과 워킹대디는 표면적으로는 동등한 경제활동 참여자이지만, '최후의 순간' 선택권은 대개 같은 방향으로 쏠린다. |
| ⓒ unplash |
첫째, 연봉이다. 남녀 임금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가정 경제의 논리는 연봉이 낮은 쪽의 노동을 먼저 의심하게 만든다. 여성가족부의 '2025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 따르면 2024년 여성의 시간당 임금 수준은 남성의 70.9%에 불과하다. 수치가 직접 선택지를 좁히는 셈이다.
둘째, 아이의 애착이다. 어릴수록 아이들은 엄마를 찾는다. 이것이 생물학적 자연이든 사회적 학습이든, 결과는 같다. 심리적 책무는 워킹맘 쪽에 더 무겁게 얹힌다.
셋째, '선택을 고민하는 노동' 그 자체다. 매일 아침, 이 상황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는 사람은 대개 워킹맘이다. 그 인지적 노동에는 이름도, 임금도 없다.
통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성가족부 '2025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 따르면, 2004년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시간(가사관리·가족돌봄 포함 기준)은 아내 2시간 51분, 남편 59분이다(2019년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시간이 아내 2시간 51분, 남성 59분이었다). 통계청 '2024년 생활시간조사'는 가사관리 항목을 더 넓게 집계하는데, 18세 미만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구 기준으로 아내 3시간 32분, 남편 1시간 24분으로 나타났다.
조사 범위와 기준이 달라 수치에 차이가 있지만, 두 자료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5년 전보다 격차가 20여 분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두 시간 이상의 차이가 남아 있다(통계청 '2024년 생활시간조사' 기준). 미취학 자녀가 있는 가구는 그렇지 않은 가구보다 가사노동 시간이 하루 2시간 8분 더 많다. 그리고 그 시간의 대부분은 워킹맘의 몫이다. OECD 30개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남녀 무급노동 시간 격차는 5위 안에 든다.
퇴근 후 가사노동과 육아를 수행하는 워킹맘의 노동에는 근로소득이 붙지 않는다. 전업주부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 단순한 사실이, 우리 가정 안의 의사결정권을 구조적으로 결정짓는다. 연봉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은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오지 못한다.
후배 남편의 말은 어쩌면 악의 없는 경제적 계산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계산이 포함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커리어를 잃은 여성이 이후 노동시장에서 감수해야 할 불이익, 노후의 국민연금 가입 이력, 경력단절 이후 재취업의 현실적 장벽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이 모든 것을 혼자 저울질해야 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
워킹맘의 남편이 진정 아내 편이 되려면, 그 저울 위에 함께 올라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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