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이 추월 당한다…‘세계 최대 車 운반선’ 광저우서 뜬 사연

지난달 28일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운반선(PCTC) ‘글로비스 리더’ 호의 선박 명명식이 열렸다. 1만대가 넘는 소형차를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배는 이 배가 최초다. 선주는 국내 해운사 HMM이고 현대글로비스가 장기 용선해 운항할 배인데, 이를 바라보는 국내 조선업계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배를 만든 곳이 다름아닌 중국국가조선공사(CSSC) 산하 광저우 조선국제유한공사(GSI)이기 때문이다.
5일 해운·조선업계에 따르면 자동차운반선은 중국과 경쟁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가장 큰 요인은 단연 ‘가격’이다. 자동차운반선은 조선업 중에서도 인력 투입이 많은 노동집약적 선종으로 꼽힌다. 배 내부에 층층이 ‘카 데크’를 만들어 차를 싣는데, 얇은 판으로 데크를 평평하게 만드는 공정 특성상 인건비 부담이 큰 구조다. 지금까지는 13층짜리 데크가 많았는데, 글로비스 리더호 데크는 14층 규모로 축구장 28개 면적이다.

자동차운반선은 액화천연가스(LNG),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만큼 기술 난도가 높은 고수익 선박은 아니다. 이에 따라 최근엔 중국 조선사들이 기본적인 기술력에 유럽연합(EU) 환경 규제 기준을 충족시켜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있다.
한 선사 관계자는 “근래에 들여온 배 대부분은 중국에서 지었다. 가격 메리트가 있는 데다 국내 조선사들은 더 비싼 고수익 선종을 우선하기 때문에 납기 등을 고려하면 중국 조선사에게 맡기는 게 빠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동차운반선은 단순 상선이 아니라 비상시 전차, 장갑차 등을 실어 나르는 군용 선박으로 전환하는 전략 선종이다. 한 조선소 관계자는 “돈이 안 되는 배이긴 하지만 국내 건조가 끊겨선 안 될 선종”이라고 말했다.
중국 조선은 자동차운반선 뿐 아니라 벌크선, 컨테이너선 등 범용 선종에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표준선환산톤수(CGT)기준 중국의 점유율은 63%, 한국은 20%로 집계됐다. 2024년 중국 71%, 한국 14%에서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큰 격차다. 양종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객원교수는 “5~6년 전만 해도 한국이 앞섰던 대형 유조선·컨테이너선도 지금은 중국에 밀렸고, 중형 탱커 시장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중국이 벌크선, 컨테이너선 등 범용 선박 시장을 장악하는 가운데 K조선은 LNG·LPG운반선 등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고부가 선종 선별 수주’로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특정 선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시황이 바뀔 때 타격이 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소수 선종에 집중하면서 조선업의 근간이 되는 범용 기자재 산업이 흔들린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세계 선박 발주량은 5643만CGT인데, 발주량의 절대 다수는 여전히 컨테이너선(2313만CGT), 벌크선(934만CGT) 등 범용 선박이다. LNG·LPG선은 10%도 되지 않는다. 기자재 업계는 건조 선박 수가 많아야 시장이 커지는데, K조선이 범용 선박에서 손을 놓으면서 불황을 맞은 것이다.
실제로 국내 조선업계는 2020년 코로나19로 수주 절벽을 겪은 뒤 2022년부터 호황 사이클을 맞았지만, 선박 기자재 업계엔 온기가 충분히 전해지지 못했다. 한국조선해양기자재협동조합에 따르면 회원사 매출액은 2020년 12억300만 달러에서 2024년 13억3700만 달러로 증가했는데, 주로 엔진·기계나 전장(電裝)부문 성장에 따른 결과였다. 범용 기자재 분야는 오히려 감소하거나 정체했다.
밸브나 파이프, 앵커링 장비 등 의장 부문 매출은 3억2000만 달러에서 3억900만달러로 감소했고, 선체 구조물, 용접 장비 등의 선체 부문 매출도 1억5100만 달러에서 1억800만 달러로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경쟁력이 중국보다 떨어지는데 규모의 경제에서도 밀리니 가격을 더 낮출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종서 교수는 “미국의 중국산 선박 입항 수수료 논의 등으로 K조선이 반사이익을 본 부분도 있지만 이는 K조선의 자체 경쟁력이 아닌 외부 요인에 따른 인위적 경쟁력”이라며 “조선업 규모 확보와 기자재 산업 부양은 안보 관점에서도 끌고 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수정·남윤서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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