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의 시선] 트럼프의 구두선물, ‘룩스맥싱’에 빠진 정치

지난 3월 초, 미국 워싱턴 의사당에서 의원들과 담소를 나누는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시선은 그의 입이 아닌 발끝으로 향했다. 검은색 가죽 구두 뒤꿈치에는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갈 만큼의 틈이 벌어져 있었다. 세계 외교수장의 위엄과는 어딘가 어긋난 장면이었다.
이 장면의 배경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루비오 장관과 JD 밴스 부통령의 신발을 보고 “엉망(shitty)”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즉석에서 자신의 단골 브랜드인 ‘플로샤임’ 옥스퍼드화를 주문해 선물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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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의 취향에 복종하는 참모들
연대로 포장된 한국 운동화 정치
이미지 정치가 가린 지방 소멸
」

문제는 그다음이다. 루비오 장관은 자신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교환하지 않고, 굳이 대통령이 골라준 큰 신발을 신고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구두 뒤축의 빈틈은 “내 발의 편안함보다 리더의 안목이 우선한다”는 시각적 복종의 증거이자, 충성 맹세의 퍼포먼스로도 읽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광경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수염과 복장을 엄격히 규제하는 ‘외모 통제’를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가 측근들을 자신의 ‘자산(assets)’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이미지가 자신의 브랜드와 부합하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NYT는 이러한 행태가 최근 영미권 Z세대 남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룩스맥싱(Looksmaxxing)’ 열풍과 궤를 같이한다고 분석했다.
룩스맥싱은 성형, 식단, 운동을 통해 외모를 극한까지 관리하고 이를 일종의 스펙처럼 수치화하는 흐름이다. 이는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 ‘신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정치권력의 세계에서도 유사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차이가 있다면 기준이 ‘자기 최적화’가 아니라 ‘보스의 취향’이라는 점이다. 결국 복잡한 소신이나 정책 역량 대신, 승인된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는 방식으로 충성과 유능함을 증명하려 한다. 이른바 ‘정치적 룩스맥싱’이다.
이미지를 통해 연대감을 형성하는 풍경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다만 우리는 권위의 상징인 구두 대신 실용의 ‘운동화’를 활용한다. 202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가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를 선언하며 신었던 빨간 운동화는 정치적 결단을 시각적으로 압축한 장면이었다. 서로 다른 노선을 걷던 정치인이 상대 진영의 색을 발끝에 수용하는 순간, 정책적 간극은 ‘원팀’이라는 이미지로 빠르게 대체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박찬대 전 민주당 원내대표의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민주당 대표 출마 선언 당시, 이 대통령이 대선 기간 신었던 파란 운동화를 신고 등장했다. ‘현장에서 뛰는 정치’를 강조하는 메시지였지만, 대중은 리더와 함께 가겠다는 상징적 장치로 인식했다. 트럼프의 구두가 위계적 통제를 드러낸다면, 한국의 운동화는 연대와 일체감을 강조한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정치인의 이미지 선택이 스스로가 아니라 권력을 좇아간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이제 본격적인 6·3 지방선거 국면이다. 이번에도 정당 색깔이 선명한 운동화와 점퍼가 유세 현장을 채울 것이다. 후보들은 신발 끈을 동여매고 ‘현장’을 강조할 것이다. 그러나 그 운동화가 선거에 임하는 결의를 넘어, 정치적 충성과 진영의 표식으로만 소비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한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청년 체감실업률이 20%대를 상회하고, 주거비 부담은 가계의 생존을 압박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지방선거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 격차가 사상 최대인 104만 명을 넘어선 시점에서 치러진다. 지방대 학생들의 지방 이탈, 청년층의 지속적인 수도권으로의 유출, 그리고 전국 다수 지역이 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한 현실은 더는 방치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치적 룩스맥싱’의 위험성이 드러난다. 리더가 승인한 이미지에만 몰두한 정치는 결코 지금 우리가 처한 복합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본래 지방선거는 권력자의 대리인이 아닌 우리 동네의 살림꾼, 국민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땀 흘릴 일꾼을 뽑는 무대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누구의 사람인가’를 운동화와 점퍼 색깔로 확인하려 한다. 보스가 고른 신발을 신는 정치가 아닌, 유권자의 삶에 맞는 정책을 스스로 설계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후보의 시선이 권력자의 표정이 아닌 민생 현장을 향할 때 비로소 정치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운동화 끈을 조여 매는 장면이 더는 충성의 상징이 아니라, 지역을 바꾸기 위한 출발선이 되길 기대한다.
박소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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