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커피 한 잔 위한 여권번호…편리했고 무서웠다

안혜리 2026. 5. 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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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도로 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떄마다 건너편에서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CCTV 시선이 서늘했다. CCTV가 촘촘한 서울보다 상하이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감시하는 느낌을 준다. 안혜리 기자

" 기대와 불안. " 10여 년 만에 다시 가는 상하이행 비행기 탑승구 앞에서 상반된 감정이 몰려왔다. 자율주행 택시·드론·휴머노이드…. 이런 용어가 이미 일상에 들어온 최첨단 미래도시를 경험할 거라는 기대 한편으로 구글맵과 넷플릭스가 차단된 통제도시, CCTV가 24시간 어디서든 나를 지켜보는 감시도시로 들어간다는 불안도 상당했다. 평소 하던 대로 이번 상하이행의 주목적인 푸단대(复旦大)·최종현학술원 공동 주최 '상하이 포럼 2026' 관련 사전자료 역시 전부 구글의 AI 서비스인 노트북LM에 넣어뒀는데, 정작 현지에서 못 쓸까 봐 서둘러 VPN 앱을 깔았다. 또 커피라도 한잔 사 마시려면 필수라는 알리바바의 슈퍼 앱(올인원 플랫폼) 알리페이에 여권 정보와 신용카드 번호까지 입력한 후 비행기를 탔다. 지난달 23일부터 3박 4일 머문 상하이는 상상했던 그대로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 "모든 인류 위한 거버넌스 만들자
혁신은 브레이크 아닌 가드레일"
저만치 앞서가는 중국의 자신감
우린 미래 위해 잘 준비하고 있나

상하이 포럼 2026 개막 만찬장에서 공중제비 등 다양한 동작을 선보인 휴머노이드. 안혜리 기자

내 키만 한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참석자 사이를 걸어 다니는 상하이 북(北) 와이탄의 대형 국제회의장 '그랜드 홀(世界会客厅)'에서 지난달 24일 개막한 상하이 포럼 기조연설자로 나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 질서가 조화보다 분열로 이어지는 재구성의 시대(age of reconfiguration) 속에서 AI는 희망뿐 아니라 위험도 동반한다"며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 필요성을 제안했다. 최태원 SK 회장도 영상 환영사에서 "단순한 성장을 넘어 '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AI 대전환(Great AI Transition) 시대를 맞아 국경을 초월한 거버넌스" 얘기를 꺼냈다. 아마 상하이가 아닌 서울이나 다른 도시였다면 명망가들의 'AI 거버넌스' 주장이 뜬구름 잡는 수사로만 다가왔을 거 같다. 하지만 여기선 체감이 확 되는 주제였다. 그 경험을 공유한다. 상하이=안혜리 논설위원


"선두엔 미국과 중국 기업"


상하이에선 내 휴대전화도 수시로 과거와 현재를 오갔다. 로밍 데이터로는 VPN 필요 없이 서울에서와 똑같이 온갖 구글 앱이며 퍼플렉시티 같은 AI를 다 쓸 수 있었지만 와이파이로는 모든 게 먹통이라 마치 그런 서비스가 없던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알리페이는 어떤 환경에서든 작동했는데, 구동 방식 관련 사전지식이 있었는데도 막상 써보니 놀라웠다. 왜 슈퍼 앱인지, 빅 테크 최고 부자 일론 머스크가 지난 2022년 트위터(현 X) 인수 직후부터 "위챗(알리페이와 유사한 슈퍼 앱)처럼 결제·쇼핑·차량 호출을 한 앱에 통합한 슈퍼 앱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반복한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잠깐의 경험만으로도 '일상을 지배하는 앱'이라는 수식어를 실감할 수 있었다. 계기는 자율주행 택시처럼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 고작 커피였다. 바로 루이싱커피(Luckin Coffee).

포럼 첫날 그랜드 홀 인근 북 와이탄백옥란광장은 물론 다음날 행사가 이어진 푸단대 캠퍼스 등 가는 곳마다, 아니 눈 돌리는 곳마다 루이싱커피가 보였다. 2018년 베이징·상하이에 첫 매장을 낸 후 디지털 효율에 올인한 중국식 비즈니스 모델로 무섭게 성장해 2019년 미 나스닥에 초고속 상장했으나, 2020년 회계부정으로 퇴출당한 그 루이싱 말이다. 지난해 7월 맨해튼 첫 매장에 이어 지난 3월엔 스페셜티 커피 최고 브랜드인 미국 블루보틀을 인수해 또 한 번 주목받았다.

상하이 홍커우 북 와이탄 황푸강변에 있는 루이싱커피. 매장 안 결제는 안 되고, 미리 앱을 통해 주문과 결제를 해야 한다. 별도 앱은 필요 없고 알리페이 등 슈퍼 앱 하나면 된다. 안혜리 기자

불명예 상장 폐지당한 초저가 중국 브랜드가 불과 6년 만에 글로벌한 명성의 초고가 블루보틀을 인수할 정도로 반전을 이룬 건, 잘 알려진 대로 새 주인인 사모펀드가 부정에 얽힌 CEO를 쫓아낸 후 모든 재무 데이터를 블록체인 기술로 실시간 투명하게 공유하는 시스템을 갖추면서부터다. 스타벅스가 공간을 판다면 여긴 효율을 판다. 듣던 대로 매장에선 현금 사용은커녕 아예 결제가 불가능하고 앱으로 미리 주문한 음료를 픽업만 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은 임대료와 인건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시간 데이터 분석을 통해 메뉴 구성과 신제품 출시 시기까지 앞당긴다. 재밌는 건, 앱으로만 주문해야 하는데 정작 앱은 깔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알리페이를 열어 루이싱을 검색하면 뜨는 미니 프로그램으로 메뉴 보고 주문해서 결제하면 끝이었다.


미래가 이미 일상인 도시


비단 루이싱 뿐만 아니라 적잖은 식음료 매장은 물론 택시 호출에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까지 별도 앱 없이 전부 해결된다. 카카오톡으로 대화 주고받다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 주소 확인하러 카카오지도로 갔다가, 택시 부르러 다시 카카오T를 여는 수고가 필요 없다는 말이다. 외국인이 서울지하철 한번 타자고 일회용 이용권 사느라 역에서 긴 줄 서는 것과도 딴판이다.

편리함에 감탄하면서도, 이 모든 내 행동 하나하나가 중국 정부든 기업이든 누군가의 데이터로 차곡차곡 쌓여 나를 통제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 섬뜩했다. 또 거리를 걷다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문득문득 감시당하는 것 같은 서늘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서울 역시 CCTV가 촘촘하지만 상하이 도로에선 횡단보도마다 CCTV가 그야말로 사람 눈높이에서 사방을 향해 있기에, 언제든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탓이다.

지난달 24일 열린 상하이 포럼 2026 개막식에서 쉬원웨이 전 화웨이 이사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상하이 포럼 사무국]

화웨이가 스타트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전 이사회 멤버인 쉬원웨이(徐文伟) 푸단대 교수는 이번 포럼 기조연설에서 AI 발전 단계를 이렇게 나눴다. 지식을 재현하는 도구였던 AI가 지난해 자율적으로 작업을 실행하는 에이전트 원년에 접어들었고, 올해 이후 AI가 자율 진화해 지능 한계를 돌파하는 AGI(범용 인공지능)이나 ASI(초지능) 단계에 도달할 거라고 말이다. 이른바 지능체 경제(intelligent agent economy)의 등장이다. 하나의 AI 슈퍼 비서가 모든 사용자에게 초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할 거라고도 했다.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으며 자랑하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AI 발전은 이렇게 빠른 데 비해 규제는 나라마다 파편화돼 있어 위험과 불신이 커지고 있다"며 "단계별 유연한 규제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거버넌스는 혁신 속도를 늦추는 브레이크가 아니라 혁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돕는 가드레일"이라는 인식 아래 "정부 규제에만 의존할 수는 없고 인류를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찾자"고 했다.

이런 발언은 역설적으로 중국 AI 발전에 대한 자신감으로 비쳤다.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규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니 말이다. 우리에겐 영상 AI인 Hailuo로 익숙한 상하이 기반 멀티모달 AI 스타트업이자 홍콩 증시에 상장된 미니맥스(MiniMax) 쉐쯔자오(薛子钊) 부사장 겸 자본시장 부문 총괄의 기조연설에서도 이런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AI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지만 이를 따라잡는 기업 수는 줄고 있다"며 "그 선두엔 미국과 중국 기업이 집중돼 있다"고 했다. 돈 많이 쓰는 기업이 이기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구조 혁신이 AI 경쟁의 핵심, 다시 말해 진입 장벽인데 코딩과 에이전트·멀티모달 분야에서 미니맥스를 비롯한 중국 기업은 미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는 것이다.


"두렵기에 AI와 함께한다"


지난달 23일 알리바바 클라우드 연구 캠퍼스 인근 SAIS에서 만난 이곳 연구원들. 안혜리 기자
빈말이 아니라는 건 포럼 개막 전날 알리바바 클라우드 연구 캠퍼스에 앞서 찾은 상하이과학지능연구원(SAIS·Shanghai Academy of AI for Science)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SAIS는 2023년 상하이시와 푸단대가 함께 설립한 곳으로, AI로 기후는 물론 인문학 등 모든 분야 연구(R&D)를 하고 그 연구 성과의 사업화(벤처 인큐베이터)까지 하는 기초과학·응용과학 특화 플랫폼 구축을 핵심으로 한다. 세계 최고 수준 대학과 AI 연구소, 빅 테크 출신 등 다학제 연구원들의 평균 연령이 33세라더니, 과연 한국에서 온 포럼 참석자를 맞은 7명의 연구자 모두 앳된 얼굴이었다. 이중 쉬리청(徐丽成) 연구 결과가 지난해 9월 네이처 계열 '네이처 머신 인텔리전스'에 실리는 등 주목받고 있다. 동료들은 그를 두고 "8층에서 제일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고, 퇴근할 때도 항상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다들 "AI가 미래"라며 "AI를 쓸수록 대체될까 두렵지만,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AI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니맥스 쉐쯔자오(薛子钊) 부사장이 지난달 24일 상하이 포럼 기조연설에서 보여준 슬라이드. AI라는 파고가 몰려오는데 많은 이들은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료 미니맥스]
비단 SAIS 연구원들뿐만 아니라 푸단대나 미니맥스·알리바바의 연구자들은 모두 이런 자세로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저만치 앞서 나가는데도 더 열심히 진보하려는 중국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한국엔 이런 곳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어디쯤 있나.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기술 발전의 흐름 속에 우린 어떤 현명한 거버넌스에 협력할 수 있나. 이재명 정부 초대 AI 수석은 지역구 출마로 10개월 만에 공직을 버리고, AI 급부상이라는 글로벌 트렌드 덕분에 반도체로 좀 살만해진 삼성전자 노조는 수십 조 손실 운운하며 파업 협박을 하는 우울한 소식 말고 다른 얘기를 듣고 싶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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